르네 마그리트, ‘겨울비 (Golconde)‘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빗줄기같이
비집고 나오는 뜻밖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자 했다. 이 그림, ‘겨울비‘를 완성했을 때 묘하게 차분하면서도 시니컬한 유머로 가득한 기분이다.
이 그림의 핵심 '익명성'에 대한 씁쓸한 사색이다.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중절모를 푹 눌러 쓰고, 비슷한 아파트를 오르내리는 도시의 군중이다. 그 수많은 개인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사회, 집합체'가 되었을 때, 개개인의 존재가 얼마나 희미하게 사라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는 내내 이 신사들을 빗방울처럼, 혹은 콩알처럼 빽빽하게 그려 넣으면서 히죽 웃었다. 이 신사들의 표정은 무표정하고 단정하다. 어디로 향하는지, 왜 그곳에 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정지된 부유(浮游)는 현대인의 고립감과 목적 없는 삶을 잔뜩 비웃는 나의 유머 방식인 것이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톡톡 건드리는 유쾌한 아이러니이다.
이 그림의 구도는 평면적 배치와 깊이감의 충돌에서 비로소 힘을 얻는 것이다.
캔버스의 하단은 질서정연한 도시의 풍경이다. 붉은 기와지붕이 가지런히 놓인 건물들은 묵묵히 현실의 단단한 배경이 되어준다. 몇몇 신사들은 이 건물들의 벽면에 딱 붙어 있거나, 지붕 위, 혹은 창문에 간신히 발을 디디고 서 있다. 이들은 분명히 중력의 영향을 받는 현실 세계의 존재들이다.
르네 마그리트, ‘겨울비 (Golconde)‘, 1953
하지만 나의 시선은 그 너머, 하늘로 쏜살같이 향한다. 파란 하늘에는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 촘촘하게 가득 메우고 있다. 그들은 똑같은 레인코트와 모자 차림으로,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뚝뚝 떨어져서 정지된 채 둥실둥실 떠 있는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우수수 내리는 인간비처럼 보인다.
이 신사들을 세 개의 층으로 나누어 배치했다. 건물 지붕 가까이, 중간 공중, 그리고 하늘 높이에. 이 배치는 하나의 통일된 패턴을 지루하게 반복하면서도, 가까이 있는 인물은 큼직하게, 멀리 있는 인물은 자그맣게 그려 원근법을 섬세하게 활용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신사가 앞뒤로 뒤섞이며, 화면은 무한히 깊어지는 환상적인 공간감을 얻는 것이다.
비현실적 상황을 가장 현실적인 기법으로 그려, 평범함 속에 숨겨진 비범함을 톡톡히 드러내고자 한다. 이 수많은 복제된 듯한 신사들은 하나이면서 전부이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에 어디든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골콘다(부와 경이의 도시)가 주는 덧없는 풍요의 기묘한 모습인 것이다.
내 그림은 모호함과 정확함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장소이다. 이 수많은 인간의 복제는 개인의 존재가 전체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지면서도, 동시에 그 익명성 속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현대인의 두 얼굴을 냉철하게 보여주는 시각적 패러독스인 것이다.
이 그림에서'터널링 효과(Quantum Tunneling)'를 슬쩍 끌어들이는 것이다. 현실에서 단단하게 막혀있는 벽이나 지붕이, 내 그림에서는 장벽 역할을 톡톡히 해내지 못한다. 저 신사들은 확률적으로 벽을 스르륵 통과하여 내부와 외부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존재들이다. 지붕에 딱 서 있는 신사들의 모습은 분명하게 관측된 상태이지만, 이들의 파동 함수는 여전히 건물 내부에 미세하게 번져 있을 것이다. 이처럼 거시적 세계에서도 양자적 현상이 슬쩍 엿보이는 틈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창인 것이다.
마그리트 관점에서 그림 읽기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는 벨기에 출신의 저명한 초현실주의 화가로, 일상적인 사물을 낯선 방식으로 결합하여 현실과 이미지의 경계를 탐구했으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이미지의 배반 (The Treachery of Images)》(Ceci n'est pas une pipe)와 《인간의 아들 (The Son of Man)》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