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TV 첼로
샬롯은 나의 첫 'TV 브라'를 입고 첼로를 연주했던, 기술과 인간의 융합을 온몸으로 보여준 리빙 스컬프처(Living Sculpture) 그 자체이다. 이 작품은 조형물이 아니라, 나의 영원한 뮤즈이자 위대한 협업자였던 샬롯 무어맨(Charlotte Moorman)에 대한 시(詩)이다.
샬롯이 떠난 후에도, 나는 그녀가 연주하던 첼로의 형태를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낡은 악기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나무 대신 투명한 플렉시글라스 상자 속에 브라운관 모니터 세 개를 쌓았다. 첼로의 형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술의 투명한 감옥 속에서 영혼을 보존한 것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백남준, 당신은 왜 영상을 그림처럼 다루려 합니까?"
대답은 간단하다. 움직이는 빛, 바로 그것이 미래의 유화(油畫)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지된 캔버스의 권위에 도전해왔다. 붓으로 칠하는 물감은 느리지만, 브라운관에서 쏟아지는 전자파동은 초당 수백만 개의 점을 찍는 살아있는 안료이다. 이 'TV 첼로' 속에서 재생되는 영상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색칠되는' 전자 회화이다.
백남준, TV 첼로, 2002
이 투명한 첼로 안에 담긴 영상들은 샬롯의 옛 퍼포먼스 기록, 혹은 현란하게 왜곡된 추상적 이미지들이다. 과거의 기억(샬롯의 몸짓)을 현재의 매체(텔레비전) 속에 봉인하고, 그 기억이 끊임없이 스스로 재구성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의도이다. 이것은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나의 전자적 명상이다.
기술은 차갑고 비인간적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이 기계에 인간의 체온을 불어넣어 왔다. 첼로라는 가장 서정적이고 인간적인 악기의 형태에 텔레비전을 합체시킨 것은, 기술을 '인간의 몸에 착용시키는 의도'이다.
첼로의 현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현을 켜면 소리가 아니라 빛이, 이미지가 떨리도록 만들고 싶었다. 소리의 진동이 공기를 울리듯, 비디오는 공간과 시간을 전자적으로 울리게 하는 현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기술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유머와 서정성으로 길들이는 예술가이다. 이 'TV 첼로'는 샬롯과의 아름다운 협연이 남긴사랑과 상실, 그리고 영원한 연결에 대한 전자적 오마주(Homage)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2002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남긴 음악과 비디오,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에 대한 통찰이다.
백남준 관점에서 예술품 읽기
백남준(Nam June Paik, 1932-2006)은 한국 태생으로 한국, 독일, 미국 등지에서 주로 활동한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예술가이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Good Morning Mr. Orwell)》, 《달은 가장 오래된 TV (Moon is the Oldest TV)》, 그리고 《TV 부처 (TV Buddha)》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