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다다익선 (The More the Better)
이 거대한 '다다익선'을 완성하고 나니, 내 예술적 여정의 정점을 찍은 듯한 기분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여 국립현대미술관의 중앙 램프 공간에 우뚝 세운 이 작품은 종래 조형물이 아니라, 내가 평생을 걸고 추구해 온 미디어아트의 철학, 동양과 서양, 전통과 미래를 엮어낸 거대한 텔레비전 탑이다.
미디어의 선언: '브라운관은 캔버스를 대체한다'
내가 처음 텔레비전을 예술의 재료로 끌어들였을 때,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20세기 후반, 가장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매체는 바로 브라운관, 이 '바보상자'라고 불리던 텔레비전이라는 것을.
"콜라주 기법이 유화를 대체했듯, 브라운관은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다."
이 다다익선은 그 선언의 기념비적 증거다.
1003대의 모니터, 그 의미의 증폭
1988년 10월 3일, 개천절에 맞춰 모니터 1003대를 쌓아 올린 이 탑의 이름은 건축가 김원 선생과의 대화에서 탄생했다. 내가 "많을수록 좋지"라고 던진 말에서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을수록 좋다는 의미가 결정되었다. 이 숫자는 양의 과시가 아니다. 그것은 정보의 홍수, 미디어의 폭발적인 증가를 상징한다.
백남준, 다다익선, 1988
이 탑은 한국 전통의 석탑(石塔)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높이 쌓여서 긴 탑이 수천 년간 믿음을 지켜왔듯, 이 비디오 탑은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신앙, 테크놀로지 문명의 기념비로 자리 잡았다. 수직으로 쌓아 올린 구조는 전통 건축의 웅장함을 따르지만, 그 표면은 빛을 발하는 1003개의 텔레비전 스크린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통적인 조형미를 최첨단 기술로 감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디지털 샤머니즘'이다.
시간과 공간의 교향곡
나의 작품은 정지된 그림이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시간 예술(Time Art)이지. 램프를 따라 위로 오르내리며 관람객들은 수많은 화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다채로운 영상들을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추상적 패턴이, 때로는 한국 전통 무용이, 때로는 내 얼굴이, 예측할 수 없는 리듬으로 춤춘다.
'다다익선'의 본질은 축제(祭). 정보와 문화가 뒤섞이고, 동양과 서양이 충돌하며 화합하는 장소. 텔레비전은 이제 더 이상 일방적인 정보 전달 매체가 아니라, 우주와 인간, 과거와 현재가 엮이는 '소통의 창'이다. 모니터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눈(Eyes)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또 관람객을 바라본다.
보존과 운명,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훗날, 이 브라운관들이 고장 나고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들이 많았다. 그럴 때 나는 말했어.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내 작품도 결국은 시간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운명마저도 작품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기술이 바뀌어도, 이 '다다익선'이 담고 있는 통합과 소통, 그리고 전통의 현대적 승화라는 정신은 영원히 남을 테니.
이 탑은 내 고국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도약하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기술 발전과 인간 정신의 조화, 바로 그것이 내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이자, 내가 평생을 걸어온 예술의 기원이다.
다다익선은 양자역학의 중첩성과 관측자 효과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예술적 표현이다. 수백 대의 CRT 모니터가 각기 다른 영상을 동시에 송출하는 구조는 양자 상태의 중첩처럼 하나의 시스템 안에 무수한 가능성이 공존함을 암시한다. 관람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위치와 시점에 따라 인식되는 영상이 달라지는 현상은 관측 행위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양자역학의 관측자 효과와 유사하다. 또한,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설치물은 물질과 에너지의 이중성을 탐구하는 양자역학의 본질을 반영한 매체적 실험이다. 결과적으로 다다익선은 양자적 사고를 예술로 번역한 시공간적 상징체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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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관점에서 예술품 읽기
백남준(Nam June Paik, 1932-2006)은 한국 태생으로 한국, 독일, 미국 등지에서 주로 활동한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예술가이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Good Morning Mr. Orwell)》, 《달은 가장 오래된 TV (Moon is the Oldest TV)》, 그리고 《TV 부처 (TV Buddha)》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