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 피어나는 진정성

안토니 타피에스, 전시회 포스터

by Quantum 김남효


《벽과 붓 사이》


타피에스의 손끝에서 태어난 우연의 진실


그날도 캔버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손끝이 떨렸다. 두려움이었다. 아무리 수십 년을 그려왔어도, 새로운 벽 앞에 서면 늘 낯선 방문객처럼 주춤거렸다. 흙, 모래, 시멘트 가루— 나는 이 거칠고 무거운 물질들을 앞에 두고, 마치 처음 붓을 쥐는 아이처럼 숨을 삼켰다.


“이건 그림이 아니야,” 중얼거렸다.

“이건 존재의 흔적이야.”


첫 붓질은 언제나 실패였다. 물감은 의도한 대로 퍼지지 않았고, 시멘트는 캔버스 위에서 뭉치며 저항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실패 속에서 무언가가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손을 다시 움직이게 했다. 마치 오래된 건물의 벽을 복원하듯, 나는 캔버스를 다듬고 긁고 덧칠했다. 붓은 섬세한 도구가 아니라, 벽돌을 다지는 망치처럼 무겁고 단단했다.


캔버스를 때렸다. 긁었다. 물질은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는 곧 이야기로 바뀌었다. 탁한 브라운 톤의 바탕은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오히려 삶의 고독과 무게를 담아내는 무덤처럼 깊어졌다.


안토니 타피에스, 전시회 포스터, 1977


붓이 물질 위를 미끄러질 때, 더 이상 나 자신이 붓을 쥐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정신이 직접 움직이는 듯한 감각이었다.

‘A’, ‘Z’, ‘1947-1976’—

이 기호들을 단숨에 그렸다. 그것은 계획된 언어가 아니었다. 무의식의 심연에서 솟구친 외침, 억눌린 존재의 흔적이었다.


때로는 붓이 미끄러져 엉뚱한 자국을 남겼다. 때로는 물감이 번지고, 콜라주 조각이 비틀어졌다. 하지만 그것을 고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우주의 뜻’이라 불렀다. 실수는 나에게 있어 결함이 아니라, 작품이 숨 쉬는 방식이었다.


완벽을 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균열과 얼룩, 실패와 우연 속에서 진실을 찾았다. 그것이야말로 작가의 길이라 믿었다. 예술은 계획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삶처럼 예측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 피어나는 진정성이었다.


그날 밤, 캔버스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아직도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이야말로 다시 붓 앞으로 이끌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리고 우연은, 내가장 신뢰하는 동료였다.


이 작품은 마치 입자와 파동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성처럼, 물질의 거친 표면과 정신의 붓질이 공존하는 예술적 간섭 현상이다. 붓의 흔들림과 물감의 번짐은 양자적 불확정성처럼 예측 불가능하며, 실수와 우연은 마치 관측자가 개입함으로써 상태가 결정되는 양자 측정의 순간처럼 작품의 본질을 바꾼다. 나는 완벽한 구도를 거부하고, 오히려 우주의 뜻이라 불리는 우연을 받아들이며, 예술을 하나의 확률적 사건으로 만든다. 캔버스는 고정된 의미가 아닌,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양자적 중첩 상태이며, 그 안에서 존재의 흔적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붕괴된다.


타피에스 작가 관점에서 그림 읽어 가기

—-

스페인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안토니 타피에스(Antoni Tàpies, 1923-2012)는 주로 스페인(카탈루냐)에서 활동했으며, 흙, 모래, 대리석 가루 등 비전통적인 재료를 캔버스에 사용하여 거칠고 질감 있는 표면을 특징으로 하는 '물질 회화(Matter Painting)'를 개척했고, 그의 대표작으로는 십자가나 문자 형태를 자주 사용하는 《화이트와 오렌지 바탕의 회색(Gray with White and Orange)》 등이 있다. 포스터에 적힌 '1947-1976'은 전시된 작품들의 제작 연도를 나타내며, 'collagen'(콜라주), 'Zeichnungen'(드로잉), 'gouachen'(과슈), 'aquarelle'(수채화) 등 다양한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