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은기 Jun 19. 2016

나의 위장병 이야기

약먹고 나을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우리 집안에 특별히 위장에 관련한 병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시긴 했지만 위암은 유전적 요인 보다는 식생활의 영향이 크다고 하니 더더욱 그렇다.


그런 나에게 지독한 위장병의 고통이 찾아온 것은 내가 스물아홉살때 쯤인것 같다. 난 그때 이미 결혼하여 큰아이가 5살 작은아이가 3살이었다.


어느날 명치끝이 찌르듯이 아파 이게 무슨 병인가 하여 병원에 가게 되었다. 가벼운 위염이라면서 약 한달간 약을 먹었고 그럭저럭 낫는 것 같았는데 몇개월 후  다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위액이 역류하고 물이나 침만 삼켜도 멀건 위액을 토하곤 했는데 밤에는 특히 증상이 심해졌다. 며칠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베개에 머리를 쳐박고 뒹굴기를 반복하였고, 밀려 올라오는 위액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문제는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분명히 가벼운 위염이라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이러한 증상은 약 일주일씩 계속되었고, 어찌어찌 다스리고 나도 몇달씩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통증이 찾아왔다. 그당시 나는 마른 체형이라 50kg 정도의 몸무게를 유지하는 수준이었는데, 몇달 사이 몸무게는 45kg까지 줄어들었고,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무슨 일이 있느냐며 측은한 눈으로 걱정하였다.


동네병원을 전전하다 대학병원까지 가게 되었으나  듣게된 병명은 '역류성 식도염', '위염', '신경성 위염'이란다 단지. 난 죽을것 같은데 약만 지어주고 대수롭지 않다고, 이런 신경성 질환은 약에대한 반응이 좋지 않다고 하였다.


나는 현대의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 대체의학, 식이요법 등으로 병을 고치겠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현대의학을 맹신까지는 하지 않아도 일단 큰병이 나면 병원에서 지시하는대로 치료와 투약을 하고 필요하면 외과적 수술을 하는게 우선이며 그 후에 식이요법을 병행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난 죽을만큼 우울하였다. 신체적 고통때문에 우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약을 먹어도 고통이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울했다. 이러다가는 나중에 암이라도 걸리면 암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약을 거부하는 내 위장때문에 고통에 시달리다 죽을 것이라는 우울한 생각에 한없이 빠져들었다. 주기는 점점 길어졌지만 그 이후 오랬동안, 거의 10년동안은 위장에 거의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약들, 소화제나 소염제, 가벼운 감기약 등 모든 약을 한알이라도 삼키면 나의 위장은 이것들을 거부하고 요동치며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그 주기가 길어지기도 했지만 위장이 약을 거부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일들과 변화가 있었다.


그 당시 난 많이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 생각하니 난 내가가진 그릇보다 커져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었던 것 같다.


외아들인 남편과 5명의 손윗 시누이, 함께사는 시부모님, 올망졸망한 두 아이들... 난 어렸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다른 가정에 나를 맞춰 나가야 하고, 아무도 육아를 도와주지 않았으며, 많은 가족들의 명절치례, 지나치게 과묵하고 방관적인 남편, 아버지의 죽음, 같은해 시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그 뒤에 갑자기 찾아온 시어머님의 치매... 모든 것이 나에게는 버거웠다. 그런데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잘해야만 한다고 나를 다그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잘 되지 않아 속상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이 야속했다.


바둑이라는 둥글고 작은 원판을 가지고 두드려서 늘리고 오목하게 만든 그릇이 방짜유기다.

그러나 이 그릇을 너무 두드리고 크게 만들다보면 그릇이 얇아져 구멍이 나게되고, 구멍나지 않더라도 얇은 두께 때문에 음식의 온도를  유지할 수 없게된다.


나는 한정된 양의 재료밖에 없는 자신을 계속 두드리고 늘려서 얇지만 크게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생각을 버리기 시작했을때 내 위장은 약을 받아들이고 뒤틀리기를 중단했을 것이리라.


남들이 나를 욕하는게 싫어서, 남들에게 잘보이고 싶은데 보여줄게 없어서, 나보다 큰 그릇을 가진 사람들이 잘하는 만큼 나도 따라가려고 애를 쓰다보니 내 위장이 고생했다.


요즘 나는 무서울게 없는 아줌마가 되었다. 가끔씩, 어쩌다 정말 가끔씩은 지나온 세월에 대한 분노와  회한이 나를 삼킬 것처럼 밀려올라오는 것을 어쩔수 없지만 금방 삭힐수 있게 되었다. 남들이 나를 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면 됐지, 또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면 어떤가, 어떻게 항상 최선을 다하고만 사나. 이런 생각으로 나를 위로하게 되자 나의 위장이 잠잠해졌다.


작가의 이전글 편의점 앞에서의 잠깐의 여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