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은기 Jun 15. 2016

편의점 앞에서의 잠깐의 여유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은 작은 4층짜리 건물 2층에 있다.


처음 이곳에 사무실을 옮겼을 때에는 우리 사무실 아래층에  감자탕과 뼈해장국을 하는 식당이 있었다.  당연히 식사시간이 되면 음식냄새가 계단과 건물 틈새를 타고 올라와 비위를 상하게 하곤 했는데 얼마 지나지않아 식당이 문을 닫고 거기에 편의점이 들어섰다.


식당이 있을 때보다 훨씬 환경이 좋아졌다.


일단 음식냄새가 올라오지 않아서 좋은것도 있지만 일상의 작은 재미가 하나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직원들이 식사를 끝내고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아래 편의점에서 디저트 내기 가위바위보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법무법인의 분사무소에서 근무하는데, 직원은 모두 8명이고 함께 식사를 하게되는 직원은 변호사님을 포함해 5명이다.


처음 편의점 내기를 제안했던 사람은 변호사님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사람 하나가 두당 1000원 정도의 선에서 그날 간식비를 부담한다.


묘하게도 이 작은 내기에서 은근히 승부욕이 불타오른다. 

우리 변호사님은 며칠간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그 패턴을 분석 및 연구하기까지 하고  어떤때는 누군가가 한두명을 왕따(?)시키고 담합을 하기도 한다. 엄실장님은 "꼭 지갑 안가져온 날에 진단말이야" 하면서 투덜거린다. "요 며칠 계속 가위낸 사람이 지는 것 같아요"라고 변호사님이 소곤거린다. 이걸 엿들은 내가 신기하게도 그날 바위를 내고 이기면,  '변호사님은 이런 분석과 통찰력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나보다'라고 근거가 부족한 감탄까지 한다.


대여섯번을 반복하여도 승부가 나지 않는 날이 있는가 하면  단 한번으로 허무하게 패자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한번으로 승부가 나서 내가 져도 허무하기 짝이 없지만, 손에 땀을 쥐게하는 극적인 승부가 이어지는 날 내가 지면 너무나 아쉬워 내일의 필승을 다짐하기도 한다.


승부 앞에서는 오너와 직원의 구분이 없다. 봐주기도 통하지 않는다. 

며칠동안 이기기를 반복하면 밀려 올라오는 쾌감이란!


종종 별로 간식이 내키지 않아서 오늘은 넘어가자고 해도 직원들은 내기를 고수한다. 이젠 모두 당연한 듯 내기에 임한다. 



승부가 판가름 나면 진사람이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간식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르기가 시작된다.


요즘같은 여름엔 얼음컵에 담아 마실 수 있는 팩에 든 음료가 인기상품이다. 가격도 딱 1000원, 제격이다. 찬바람 부는 계절엔 고가의 커피머신(편의점의 주장)으로 바로 원두를 갈아서 내려먹는 커피가 인기메뉴다. 커피를 별로 즐기지 않는 어린 여직원 이주임은 초콜렛이나 우유를 자주 고른다. 난 한동안 장난감이 든 달걀모양의 초콜렛을 모으기도 했다. 편의점에 생각보다 맛있는 간식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간식을 고른 다음에는 잠깐 햇빛을 쬐면서 간식을 즐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다  큰 어른들이  편의점 앞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지면 억울해하고 이기면 환호성을 지르는 광경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의아한 듯 쳐다본다. 아무렴 어떠랴.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어쨌든 우리 사무실 1층의 편의점 덕분에 우리는 점심식사 후의 작은 재미를 누리고 있다. 안그래도 각박하고 힘든세상에 이런 소소한 재미라도 있는 것이 어디인가.


오늘도 우리 사무실의 편의점 앞 가위바위보는 계속된다. "저녁에 야근을 하게되면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워보면 어떨까요?"라고 말하면서 즐겁게.



작가의 이전글 코리아 빈티지 페이퍼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