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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기 Jun 26. 2016

재취업 성공기

# 내가 하고싶었던 것


난 어렸을때부터 미술을 잘했다. 특히 포스터나 그래픽디자인, 공예쪽에 재능이 있어서 어렸을적 한때는 산업디자이너나 의상디자이너, 인테리어디자이너가 되고싶었다. 그러나 집안형편이 어려워 미술을 전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과학자나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기도 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 후 성적이 많이 떨어지고 나니 현실적으로도 그렇고, 집안형편을 생각해도 그래서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난 결국 위에 열거한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고 전산과를 졸업하고 컴퓨터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취직해서 난 '여자라서 일을 못한다', '가방끈이 짧아서 일을 못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회사에서 개발 중이던 금융시스템 프로그램 메뉴얼을 영어사전, 컴퓨터용어사전을 들고다니며 해석해가며 열심히 일했다. 아마 학교다닐 때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던 때는 여직원이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공무원이나 대기업들은 그런 현상이 조금 개선되어가던 과도기였던것 같기도 하다.


난 같은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고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퇴직 후 다니던 회사에 잠시 계약직으로 일하기도 하였으나 임신 후 회사에서는 정식으로 출산후 휴가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출산 후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없어 망설임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는 내손으로 키우고 싶다는 맘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어릴적 일하러 나가시는 엄마의 빈자리가 나에게는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일찍 결혼하고 바로 아이 둘을 출산한 탓에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고부터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그 시간의 여유를 채우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는 돈을 쓰는 방법, 둘째는 돈을 버는 방법.


여유로운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려면 수영이나 골프 등의 운동을 배우거나 취미생활을 하면된다. 그리고 돈이 든다. 나는 어릴때와는 달리 그리 궁핍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의 교육비 등으로 여유롭지는 못했다. 그래서 돈을 버는 쪽을 택했다.


# 신문에 딸려 들어온 전단지


재취업에 대한 생각을 막연히 하던 어느날 신문에 딸려들어온 것은 수원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하는 여성 재취업 프로그램 전단지였다.


나는 법무사무원 교육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그런데 거기에 수강신청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수강신청을 하는데 면접을 본다. 많은 예산을 지원받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므로 꼭 취업해야 할 사람만을 뽑아 교육해야 하고 교육 후 취업실적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사실 나는 꼭 취업해야할 처지도 아니었지만 은근 승부욕이 발동하여 나름 열심히 면접도 준비하여 최종 20명에 선정되었다.


내가 컴퓨터를 전공하긴 했지만 사실 그때 나는 컴맹이나 다름었었다. 내가 아는 컴퓨터는 이미 구닥다리가 되어버린지 오래였고, 난 워드프로세서, 엑셀 등을 새로 익혀야 했으며, 생전 처음 접하는 등기, 가압류, 가처분 등에 대해 실무자교육을 받게 되었다.


3개월 동안 일주일에 5일 하루 3시간씩 생각보다 타이트한 교육이 시작되었고, 수료를 일주일 남겨두고 취업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 나의 이력서가 번번히 퇴짜맞다


문제는 내 나이였다.


사실 마흔살 먹은, 그것도 오랫동안 경력이 단절되어 있었던 여직원을 어디서 반기겠는가... 특히 법무사사무실이나 변호사사무실은 의뢰인들을 응대해야하는 일인데 어리고 똘똘하고 능력있는 여직원을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면접은 꿈도 못꾸고 번번히 이력서를 퇴짜맞았다. 기분이 나빴다. 오기가 생긴다. 그렇다고 별다른 수는 없었다. 오너가 나를 뽑아주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수 밖에.


우여곡절 끝에 나는 함께 교육을 받았던, 나보다 어리고 8년정도 법무법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친구가 반려한 변호사사무실에 대신 취직하게 되었다. 아마 이 프로그램 수료자를 고용하면 3개월동안 월 50만원씩 지원되는 고용장려금때문에 나를 고용한 것이겠지 생각하였지만 나이때문에 절망하고 있던 나는 이것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 재취업에 성공하자, 아이들의 방학이 닥치다


아이들이 다 컸다고는 하나 큰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 둘째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아직 엄마의 손길과 관심이 필요한 시기다.


18년만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니 갑자기 막막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취업한지 이틀만에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방학내내 방치되다시피 하였고, 난 새벽같이 일어나 낮에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출근하였다. 다행히 큰아이는 방학때도 보충수업이 있어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었지만 수험생을 그냥 방치하는 것 같아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침에 부랴부랴 사무실에 출근해 청소를 마치고 근무준비를 하고 앉으면 '내가 왜 지금 여기에 나와있나'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오기가 발동하여, 기왕에 어렵게 시작했는데 1년은 버텨봐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 1년이 3년이 되고 다시 5년이 되다


이번에는 '나이먹어서 일못한다', '저나이에 나와서 왠 민폐람' 이런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다. 나보다 한참어린 법원 직원에게 신나게 깨지기도 하고, '변호사사무실 직원이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해왔냐'는 소릴 들어가면서. 그래도 하루하루 나아졌다.


3개월쯤 됐을때 사무실 실장님에게 이메일이 왔다. '좋은 인재가 우리사무실에 들어와서 기쁩니다.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분이 엄청 좋다. 그래 한 3년만 더해보지 뭐.


틈틈히 책상 밑으로 엑셀, 워드 교재를 숨겨놓고 공부하고(사실 난 컴퓨터 활용 능력이 떨어졌지만 이력서에는 엑셀, 워드프로세서 가능이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돈을 아끼지 않고 실무교재를 구입하여 공부했다.


3년이 지나고 다시 나태해질 무렵 나는 다시 오기가 생겨 '5년까지만 하고 그만 둔다'라고 목표 수정. 그리고 햇수로 7년째 근무하고 있다. 변호사님이 도산업무주력으로 하고있어 나도 지금은 법인파산 실무를 공부하며 실무쪽으로 빵빵하게 변호사님을 지원해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사실 법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게 뭐가 재밌어서 공부할까?'하는 생각 뿐 아무런 흥미도 갖지 않았고, 너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취업프로그램을 선택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 나는 형사, 민사도 구별 못하는 정말 평범한, 말그대로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소시민이었으나, 직업이 된 이상 법에 대해, 소송절차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었고, 일하면서 알아가면 갈수록 정말 생활에 도움이 되고 알아둬야할 분야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어찌됐든 나의 재취업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사실 경력단절 여성이 사무직에 재취업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나는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운이 나에게 찾아왔을때 준비되어 있어야만 그것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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