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장사꾼과 유타컵밥의 좌충우돌 해외 진출기 - 1
많은 외식업 종사자들의 꿈 중 하나가 해외 진출일 것이다.
청년장사꾼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최근 미국 유타컵밥과 그 꿈을 이뤘다.
오늘은 평범하진 않지만, 청년장사꾼의 해외 진출 도전기를 다뤄보려 한다.
같은 외식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지만, 무엇보다 이 글을 읽고 많은 친구들이 더 넓은 세상에 도전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만나다
2014년 7월 KBS <다큐 공감>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청년 자력갱생 프로젝트 "열정이 힘이다"'라는 이름으로 청년장사꾼이 소개된 적이 있다. 당시 우리를 촬영해주셨던 이승한 PD님은 단순히 PD로서가 아니라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팬으로서 청년장사꾼의 이야기를 담아주시려고 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잘 돼야 청년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며 방송 후에도 자주 찾아주시고 가까이서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1년 후 어느 날,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신 PD님께 연락이 왔다.
"윤규야, 미국에 유타컵밥이라고 너희 같은 팀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지 꼭 한번 만나게 해주고 싶다"
PD님의 꼭 한번 만나게 해주겠다는 약속은 머지않아 이뤄졌다. 유타컵밥 송정훈 대표가 잠시 한국을 방문할 일이 생겼는데 그에게 조심스레 부탁한 강연을 그가 수락한 것이다. 청년장사꾼 멤버들을 위한 특별 강연을 부탁했는데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나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인 그 순간, 우리의 특별한 인연은 시작되었다.
놀라다
유타컵밥 송정훈 대표가 한국을 떠나며 내게 유타에 꼭 한번 놀러 오라고 했다. 그래서 갔다. 직항이 없어 반드시 갈아타야 하고, 20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진짜 가버렸다. ‘한번 놀러 오라’는 말을 수백 번 했던 그였지만 이렇게 실행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렇게 유타를 방문한 나는 신세계를 봤다.
유타컵밥은 미국 서부 유타 주에 사는 세 한국인(송정훈, 박지형, 김종근)이 만든 푸드트럭 팀이다. 푸드트럭의 고장인 미국에서 TOP 27에 선정될 만큼 유타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브랜드인데, 간편하고 빠른 조리가 가능한 '컵밥'을 미국에서 판매한다. 이들이 만든 ‘유타컵밥’은 남북한을 합친 크기의 유타 주를 들썩이게 하는데 스포츠 스타디움까지 입점해 있을 정도로 강력한 F&B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유타컵밥은 처음 시작한 트레일러와 푸드트럭, 케이터링 트럭까지 총 8대를 매일 움직인다. Provo, Draper 등의 오프라인 매장도 가지고 있다. Brigham Young University, The University of Utah, Utah Valley University 등 유타를 대표하는 대학에 입점해있다. 더 대단한 것은 NBA 농구 스타디움인 Utah jazz stadium (유타 재즈 스타디움)에도 입점하여 있다는 것이다. Real Salt Lake (RSL) 프로축구와 대학풋볼리그 경기장들도 입점했다. 한식 중 미국 메이저 스포츠 스타디움에 입점하여 있는 사례가 있는가? 없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공항 빼고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유타컵밥 팀. 더 놀라운 사실은 이들은 어딜 가나 매출이 1등이라는 것이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햄버거나 핫도그가 3분에 1개씩 만들어진다면 컵밥은 30초에 1개씩 만들어진다. 심지어 햄버거나 핫도그보다 훨씬 맛있다.
마케팅도 한몫한다. 컵밥은 한식이다. 밥 위에 채소가 올라가고 닭, 소고기, 돼지고기가 한국식으로 올라간다. 만약 손님이 한국말로 주문하거나, 처음 방문했다면 잡채를 얹어주거나 만두를 튀겨준다. 한국인의 '정'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마케팅을 미국에서 선보인다. 토핑 선택에 익숙한 미국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다양한 소스를 개발했고 1~10까지 맵기를 조절해 소스를 뿌려준다. 현지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사람들은 컵밥 한 그릇을 먹기 위해 매일 같이 줄을 서고 "컵밥"을 외친다.
나는 유타컵밥의 이런 모습들을 직접 지켜보면서 국가 정부가 지금껏 해온 그 어떤 '한식의 세계화' 프로젝트보다도 더 강력하다고 확신한다. 국가 브랜드와 관련해 정부 부처에 제안을 넣고 싶은데 시국이 이 모양이라 어디에 어떤 식으로 무엇을 요청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시도하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세 번 미국을 방문했고, 유타컵밥의 세 대표 역시도 한국을 서너 번 방문하며 우리는 지속해서 '함께'할 방안을 모색했다. 미국과 한국의 물리적 거리가 멀기에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았고, 어떻게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이 엄청난 두 열정 덩어리가 만나면 뭐가 되도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17시간의 시차에도 우리는 매일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새벽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진행하게 된 첫 번째 합작 프로젝트가 '인도네시아 진출'이었다. 컵밥이 인도네시아 진출을 하는데 청년장사꾼도 함께 힘을 보태기로 한 것이다. 나는 청년장사꾼 천성우 쉐프를 데리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직접 날아갔다.
미국에서 만들어 먹은 컵밥과 인도네시아에서 같은 레시피로 만든 컵밥의 맛이 너무나 달랐다. 현지 재료의 품종이나 맛이 차이가 나면서 음식의 맛이 미국에서 먹은 컵밥과 달라진 것이다. 당황한 우리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기존 컵밥과 가장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도록 그에 맞는 재료를 찾고 조리하며 메뉴를 개발했다. 애초 며칠 정도만 머무르기로 하고 떠난 인도네시아였지만, 천성우 쉐프는 한 달간 인도네시아에 머무르며 메뉴를 현지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시작한 인도네시아 컵밥 프로젝트는 1년이 안 되는 사이에 두 번째 매장을 성공적으로 오픈했다.
▶ 다음 칼럼 보기 (바보같은 두 팀의 무모한 도전 - 해외진출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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