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건이 있었다. 남자 중학생이 여학생에게 만나자고 했는데 여학생은 만나기 싫다고 했다. 남자 중학생은 며칠 후 쉬는 시간에 여학생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인근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
자유와 권리 측면에서 살펴본다. 여학생은 남학생의 생각과 상관없이 거절할 자유가 있다. 여학생이 거절할 경우 남학생은 받아들여야 한다. 남학생은 남을 해치기 위해 흉기로 폭력을 행사할 권리나 자유가 없다. 또한, 자살에 대해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노자는 생살여탈권을 맡은 신만이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 딱지 맞는 일은 늘 있는 일이다. 딱지 맞은 일 때문에 자살했다면 그 사유는 소중한 생명과 바꾸기에는 가벼워 보이고, 주변의 상심이 너무 크다.
그 남자 중학생의 행동이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일까? 확대하면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는 것일까?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경우 자유의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죽는 사람이 있고 죽지 않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자유의지는 있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는 나 이외의 외부 법칙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의사결정과 행동을 한 자유의지는 아니다. 부모의 유전적 요소, 집안 분위기, 주변 지역의 문화, 남의 시선, 사회환경 등 외부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나와 환경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인간은 완전히 독립적인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니며, 어쩔 수 없는 외부 환경이 원인이 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피동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 남자 중학생이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했다면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온전한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므로 그 남자 중학생에게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렇게 행동하는데 영향을 미친 여러 요소들도 책임이 있다.
자유라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남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가 자유의 한계다. 나는 이익인데 남이 해롭거나, 나는 해로운데 남이 이로운 경우 온전한 자유가 아니다. 착취다. 이런 자유는 계속 유지될 수 없다. 남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가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한계다. 나와 남은 신성을 지닌 평등한 존재이고, 똑같이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를 얻는데 고통이 따른다.
‘구속은 힘이 세 저항하기 고통스럽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 내 양심에 찔리는 일은 차마 할 수 없다. 구속에 저항한다. 구속은 내 안에 있고, 내 밖에도 있다. 분별 습관, 감정 집착, 물려받은 성향, 부모, 가정 문화, 상사, 남, 기대, 문화, 관습, 법, 윤리, 권력, 자본 등이 때때로 나를 구속한다. 괴물 같은 구속은 나와 체급이 달라 맞서기 고통스럽다.
‘나만의 내가 아니어서 더 고통스럽다.’ 나는 자유로워 좋은데 그 자유로 인해 아내, 자식, 동료, 주변 사람이 자유를 해치면 내가 찾는 자유가 아니다. 우리는 자기만의 고유한 매력을 지닌 매력 덩어리이다. 나는 우리를 끔찍하게 아낀다. 자유를 찾는 나는 나만의 내가 아니어서 더 고통스럽다.
‘구속당하여 받는 달콤한 대가를 포기하기 고통스럽다.’ 구속으로부터 탈피할 때 달콤한 구속의 대가를 버려야 한다. 탈피는 고통이 따른다.
주는 밥을 포기하고, 정신적 가해, 물리적 압박, 멸시와 조롱을 견뎌야 한다. 자유를 얻으려는 사람은 그 무게와 날카로움에 고통스럽다. 고통 없이 얻은 것은 자유가 아니다.
구속으로부터 탈피할 때의 고통을 견디고 넘어간다. 사람들은 비로소 고통이 없는 자유를 얻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