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 자율: 1차 대전

by 누룽지조아

2.5 백만 조회수를 자랑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보유한 여자와 한판 큰 싸움을 벌였다. 그녀는 말발이 세고 논리력이 뛰어나다. 태권도로 단련되어 육체의 힘도 굉장히 세다. 그녀는 자기주장도 잘한다. 논리력은 어릴 적 철학을 주어 들었고 글쓰기 학원 다녔으며, 독서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주요 기념일에 발표 자료를 PPT로 만들어 발표하고 질문에 대답하는 훈련을 자주 했다. 그녀는 여유가 있고 자신만만하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우리 부부는 그녀와 한판 대전을 치를 경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부부는 전략을 고심했다. 전략 없이 덤볐다간 무참히 깨진다. 수비 전략을 세웠다. 신중한 첫 대응, 누가 해야 하는 일인지 주체 결정, 여유 있는 시간 관리 요령, 부부의 양동작전, 샛길 막기, 향후 예상되는 결과 추측, 그녀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 남 탓할지 여부 등에 대해 계획을 세웠다.


그녀가 공격을 개시했다. 7월 29일 아침 9시 40분이다. 실외 기온이 30도를 넘었다. 그녀는 차가 약속을 안 지켰다고 아내에게 짜증을 냈다. 아내는 수비했다. 아내가 목적지에 연락해 보니 차는 이미 갔다고 했다. 아내는 그녀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녀는 2차 공격을 했다. 자기를 목적지까지 태워주라고 강요했다. 아내는 2차 공격도 잘 막아냈다. 차는 제시간에 왔는데 약속 시간에 여유 없이 간 그녀 잘못이었다. 아내는 짜증 난 그녀를 태우고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왜 안되냐고 아내를 다그쳤다. 아내는 사전 작전 계획대로 남편에게 전화를 바꿔 주었다.


남편은 아내가 한 말을 재차 강조했다. “아내가 같이 갈 수 없으므로 네가 인근 지하철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약속시간에 조금 늦더라도 가는 것이 나을 걸. 약속을 안 지키면 약속한 상대가 열받아. 네 기분도 하루 종일 안 좋을 거고, 너 있을 때 에어컨을 안 켜는 거처보다 그곳이 시원해.”라고 말했다. 남편은 이런 말로 그녀가 빠져나갈 수 있는 샛길을 막았다. 남편은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생각했다. 이번에 늦었다고 그녀를 태우고 목적지까지 가는 경우 차를 놓칠 수도 있는데도 시간에 딱 맞춰가고, 태우고 가라고 태연히 그 이후에도 말할 것 같았다. 또한, 약속시간까지 갈 책임은 그녀에게 있었다. 남 탓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벌인 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게 하고 싶었다.


그녀는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3차 공격을 했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 어려우므로 약속자에게 늦는다고 전화해 달라고 했다. 아내는 그건 받아들였다. 아내는 약속자에게 차 놓쳐서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을 거라고 전화해 주었다.


그녀는 결국 목적지 근처 지하철역에 내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갔다. 약속시간은 이미 지났다. 약속한 분은 강의하느라 바빠서 약속시간 어긴 것에 대해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중1 둘째, 목적지는 수학학원, 차는 수학학원 셔틀버스였다.


우리 부부는 애를 바라보고 놔두고 애가 스스로 하는 연습을 시키고 싶었다. 차 타는 시간이 9시 30분인데 늘 늦게 나간다. 아내는 9시 10분부터 빨리 나가라고 재촉한다. 애는 시간 여유 충분하다고 9시 25분쯤 나간다. 조금 방심하면 셔틀버스 놓친다. 이번에 애의 의견을 들어주면 늦을 때마다 태워서 학원에 가는 상황으로 흘러갈 게 뻔하다. 뻔히 예측되는 결과는 이번 기회에 끊을 필요가 있었다. 셔틀버스를 놓치면 그리 멀지 않아 지하철 타고 가는 연습도 시키고 싶었다. 늦으면 선생님께 혼나 약속시간을 제 때 맞춰야 한다는 책임감을 심어주고, 남 탓하지 않고 내 탓하는 훈련이 필요했다.

우리 부부는 학원에 애를 태우고 같이 가지 않아 부모 스스로 한 일이 없고, 그녀 스스로 목적지에 갔다. 부부 관점에서 바라보고 놔두고 조언만 했으므로 하는 게 없는 무위 행위다. 애 관점에서는 조언을 받고 스스로 갔으므로 유위 행위이고 스스로 그리함의 뜻인 자연이다. 무위자연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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