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완벽 추구와 부모 포용
제4장 관계에 대하여
아버지가 완벽을 추구하고, 아들이 이를 못 이겨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경우 비극이 발생한다. 우리 역사에 이런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였다. <사도>라는 영화에서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를 원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완벽을 추구하는 아버지는 기대가 높아 힘이 들고, 자녀는 더 힘들다. 행복이 줄어든다.
아버지는 큰 의무를 지고 있다. 할아버지의 대를 잇고, 처자식을 잘 부양해야 하므로 압박감이 심하다. 아버지가 이런 의무를 잘 수행하도록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며, 집안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가장이라고 부른다. 아버지가 무너지면 가정도 무너진다.
과거 우리 아버지들은 애들이 반항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였다. 특히 엄격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아버지라면 애들이 대하기 더 어려웠다. 완벽을 지향하는 부모는 자녀에게 긍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완벽을 지향할수록 자녀와 관계는 더 꼬인다. 애들은 아버지와 같이 있기가 두렵고 긴장된다. 대화다운 대화나 농담도 할 수 없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애들은 거꾸로 갈수록 움츠러든다. 아버지와 같이 있기가 두렵고 긴장된다. 대화다운 대화나 농담도 할 수 없다. 잘하면 아버지께 잘 보이기 위해 실수하지 않고 계속 잘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에 자꾸 긴장하고 힘이 들어가 괴롭다. 못하면 자주 혼나 못난 자신을 탓하며 열등감에 빠진다. 혼난 사건과 관련된 매개체를 피하는 강박증도 생긴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엄격하고 완벽을 지향하는 아버지를 둔 애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아버지를 이해한다.’ 완벽을 추구하는 아버지를 탓하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아버지도 과거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도 열등감이 있거나,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애들이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버지가 자란 시대나 환경 등의 이유로 완벽을 지향하는 성격을 가졌고,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아버지로서 옳은지 그른지는 둘째치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애들에게 말해준다. 다만, 아버지의 마음만 받고 나에 맞는지 받아들일지는 애들 스스로 판단한다.
‘아버지 시선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다.’ 이미 어른인 아버지 성격은 갑자기 바뀌지 않고 자녀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아버지의 시선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시선으로 평가한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 아버지가 잘못 생각해 억울하게 혼났더라도 큰일 아니면 못 이기는 척 그냥 아버지의 말씀을 따를 수 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면 먼저 부드럽게 “네”라고 대답하고, 그것은 아버지 생각이라고 이해한다. 내 행동을 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일단 “죄송합니다.”라고 부드럽게 말한다. 잘못해서 죄송한 게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죄송하다는 표현이다. 그다음에 받아들일지는 스스로 판단한다.
‘아버지께 욕먹을수록 리더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녀에 대해 기대가 높으며, 과대한 요구를 하기에 자녀는 마음 단단히 붙들어 매야한다. 자녀는 아버지의 기대만큼 완벽하지 못할 수 있으며,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수해도 고치면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버지께 욕먹으면 진정한 리더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리더는 원래 욕 많이 먹는 사람이다. 뭐라고 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포용한다.’ 자녀는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세월이 흐르면 엄격하고 완벽했던 아버지도 약해진다. 심하면 아버지가 옛날에 저질렀던 일 때문에 어머니나 애들에게 무시당하기도 한다. 이런 아버지가 초라하고 안쓰럽다.
자녀는 엄격한 아버지를 탓하지 않고 정신 수양의 기회로 삼는다.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살면 자기만 손해고, 희한하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의 모습을 닮는다. 아버지를 마음으로 보듬는다. 시간이 지난 후 마음이 예전보다 크고 여유로워져 아버지를 포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