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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Nov 03. 2023

4. 자율: 1차 싸움

제5장 기타 개념에 대하여

2.5 백만 조회수를 자랑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유한 여자와 한판 큰 싸움을 벌였다. 태권도로 단련되어 육체의 힘이 굉장히 셌다. 그녀는 말발이 세고 논리력이 뛰어나 자기주장을 잘했다. 어릴 적 철학을 주어 들었고 글쓰기 학원 다녔으며, 독서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주요 기념일에 PPT 자료를 만들어 발표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여유가 있고 자신만만하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그녀와 한판 대전을 치를 경우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우리 부부가 전략 없이 덤볐다간 무참히 깨질 것 같았다. 수비 전략을 세웠다. 신중한 첫 대응, 해야 하는 주체 결정, 여유 있는 시간 관리, 부부의 양동작전, 샛길 막기, 향후 예상되는 결과 추측, 그녀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 남 탓할지 여부 등에 대해 계획을 세웠다.


그녀가 공격을 개시했다. 7월 29일 아침 9시 40분이었다. 기온이 30도를 넘었다. 아내에게 차가 약속을 안 지켰다고 짜증을 냈다. 아내는 수비했다. 목적지에 연락해 보니 차는 이미 갔다고 했다. 그녀에게 전화로 그 사실을 알렸다.


그녀는 2차 공격을 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를 목적지까지 태워주라고 강요했다. 아내는 2차 공격도 잘 막아냈다. 차는 제시간에 왔는데 약속 시간에 여유 없이 간 그녀 잘못이었다. 아내는 짜증 난 그녀를 태우고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왜 안되냐고 아내를 다그쳤다. 아내는 사전 작전 계획대로 남편에게 전화를 바꿔 주었다.


남편은 아내가 한 말을 재차 강조했다. “네가 인근 지하철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약속시간에 조금 늦더라도 가는 것이 나을 거야. 약속을 안 지키면 약속한 상대가 열받아. 네 기분도 하루 종일 안 좋고, 너 있을 때 에어컨을 안 켜는 거처보다 그곳이 시원해.”라고 말했다. 남편은 이런 말로 그녀가 빠져나갈 수 있는 샛길을 막았다. 남편은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끈질겼다. 3차 공격을 했다.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 어려우니 늦는다고 전화 달라고 했다. 아내는 그건 받아들였다. 약속자에게 차 놓쳐서 조금 늦을 거라고 전화해 주었다.


그녀는 결국 목적지 근처 지하철역에 내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갔다. 약속시간은 이미 지났다. 약속한 분은 강의하느라 바빠서 약속시간을 어긴 것에 대해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중1 둘째, 목적지는 수학학원, 차는 수학학원 셔틀버스였다.


우리 부부는 애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연습을 시키고 싶었다. 차 타는 시간이 9시 30분인데 늘 늦게 나갔다. 아내는 9시 10분부터 빨리 나가라고 재촉했다. 애는 시간 여유 충분하다고 9시 25분쯤 나갔다. 방심하다가 셔틀버스를 종종 놓쳤다. 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간절함이 없는 것 같았다. 놓치면 더 편안하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들게 지하철을 타고 가는 연습을 시키고 싶었다. 이번에 애의 의견을 들어주면 시간을 딱 맞춰서 나가는 버릇을 계속 봐야 하고 늦을 때마다 태워서 학원에 가는 상황으로 흘러갈 게 뻔했다. 이번 기회에 끊고 싶었다. 


약속시간까지 갈 책임은 애에게 있고, 늦은 원인은 자기에게 있으므로 남 탓할 수 없음알려주고 싶었다. 또한, 선생님과 한 약속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심어주고, 약속을 어기는 경우 돌아오는 후환을 몸으로 느끼고, 스스로 책임지게 하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학원에 애를 태우고 가지 않아 부모가 한 일이 없고, 그녀 스스로 목적지에 갔다. 부부 관점에서 바라보고 놔두고 조언만 했으므로 하는 게 없는 무위 행위다. 애 관점에서는 조언을 받고 스스로 갔으므로 유위 행위고 스스로 그리함의 뜻인 자연이다. 무위자연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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