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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Jan 11. 2024

34. 머무르지 않고 빨리 지나간다

11.3. 구지 편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처한 상황을 손자병법 구지 편의 지형으로 따지면 산지나 경지다. 도망치고 싶고 적지에 낮게 침투하여 산만한 상태다. 싸우지 않고 빨리 지나가야 할 자리다. 잡생각을 접고 마음을 하나에 집중시켜야 한다. 아빠의 임무는 군사를 이끌고 가는 장군의 임무와 유사하다. 마음을 고요해 깊고 바르게 했다. 딸의 사기를 높이고 힘을 한 군데로 집중시키자퇴 소동을 되도록 빨리  끝내고 지나가야 할 땅이었다.


2023년 11월에 큰애는 자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이 걸으며 사회생활, 공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잠잠한가 싶더니 2023년 11월 24일 금요일 아침 자퇴하고 싶다고 엄마에게 절실히 말했다. 큰일이다. 자퇴 결심을 번복하게 하는 일은 퇴사하겠다고 결심한 직원의 마음을 돌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딸을 잘 헤아려 대응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2023년 11월 24일 금요일에 학교에 가지 않고 엄마와 우면산에 갔다. 아빠는 그날 외부출장이 있어 지하철역으로 갔다. 지하철 플랫폼 의자에 쭈그려 앉아 큰애에게 편지를 쓰고 카톡으로 보낸 후 산 정상에서 읽어보라고 했다. 엄마는 학교 상담을 받았다. 큰애 친구 엄마의 허락을 받고 친구들을 불렀다. 먹을거리를 주고 큰애 방으로 들어갔다. 큰애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지 친구들은 한 30분 머무르다 갔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큰애에게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가자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엄마의 동네 친구였다. 이공계 졸업하고 수능 다시 봐 의사가 되신 분이었다. 오후 2시에 병원에 가기로 했는데 큰 딸은 마음이 바뀌어 안 가겠다고 했다. 밤에 의사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딸의 심정을 잘 받아줬고 딸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짚어 주었다.


딸은 2023년 11월 27일 월요일 학교에 갔으나 설렁설렁 다녔다. 2주 뒤에 기말고사를 본다. 딸에게 지하철을 타자고 제안했다. 2호선을 타는 목적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2호선이 계속 순환하므로 다른 곳으로 못 도망가 잡념 줄이고 시험 보는 과목에 집중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딸은 "고등학교 졸업하지 않아도 검정고시 볼 수 있어. 더 열심히 할 자신이 있고."라고 했다. 아빠도 조건부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하지 못하는 경우 능력이 있더라도 증명하려면 10배 이상 힘들다. 큰딸은 편의점 아르바이트해도 행복하고 공부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낭만적인 사고다. 남 탓 안 하고 책임질 각오를 먼저 해야 한다. 돈은 별로 없고 근무 여건 취약하며 일하다 너무 피곤해 지쳐 떨어져 자는 사람, 그렇게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이 얼마 없는 사람의 고충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또한 경쟁이 치열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비교, 경쟁, 이념 대결 등으로 구정물에 사는 느낌이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구정물을 탓하며 자기 성질머리대로 해야 자기만 손해다. 어쩌면 개인이 자유, 평등, 평화, 제도 등 환경에 대해 개선을 외치는 일이 구정물을 정화시키는 작업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한다. 입시 경쟁 등으로 행복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친구와 우정을 나누기 어려운 환경이다. 부모도 뒷바라지하느라 힘들다. 점수 잘 나왔는지 묻지 않지만 공부하지 말라는 말도 안 한다. 애들이 구정물속의 물고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구정물을 떠날 수는 없다. 떠나면 숨을 못 쉬고 죽는다. 딸은 지기 싫어한다. 반항하는데 합리적 이유가 있었. 자유, 평등, 제도 등 환경에 대해 평생 고민할 문제고 자기도 함께 변해야 한다.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다. 급한 일 팽개치고 지금 고민해야 답을 구하기 어렵고 더 꼬일 수 있다.


부모 된 입장에서 딸이 자기를 해치는 행위로 반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정물에서 나와 죽음을 선택하든지 구정물에서도 신나게 살고 오염물질이 가라앉아 맑아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구정물에서 나오더라도 안 죽을 수 있으나 행복하기 위해서 지금보다 비교, 경쟁, 기대하는 마음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지난날을 후회하거나 남 탓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책임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딸에게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결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포기나 회피를 막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기말고사가 다음 주로 다가왔다. 지금과 같은 마음이나 방식으로 시험을 면 결과는 안 좋을  같았다.


시간이 별로 없고 이렇게 된 마당에 새로운 방식의 공부법, 벼락치기 경험을 시키고 싶었다. 딸의 기존 공부 방식은 노트 정리, 학교에서 나눠준 프린트물 읽고 외기, 기출문제 풀기였다. 지금까지 시간 없어 문제집을 안 풀고 시험을 보았다. 쉬운 문제를 틀리고 어려운 문제도 틀렸다. 노력에 비해 점수 잘 나올 턱이 없었다. 벼락치기라는 새로운 방법을 다. 노트 정리 생략, 프린트물 3번 읽기, 답 달아 문제집 기, 프린트물 다시 읽기, 문제 다시 읽는 방법이었다.


마지막 사회 과목 시험 보기 전까지 그럭저럭 본 과목도, 망친 과목도 있었다. 2023년 12월 18일 월요일 마지막 사회 과목을 다. 마지막 시험을 못 보는 경우 반응을 예측할 수 있었다. 딸 성격상 기분이 안 좋고, 시험 끝나고 친구와 놀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그 기분이 가고 그 이후 더 크게 자퇴 소동을 벌일 수도 있었다. 자퇴 소동을 단기간에 진압하지 못하는 경우 연장전으로 가고 피해가 커진다. 마지막 시험에 집중하기, 결과에 무관심하고 과정에 충실하기, 변경한  방법 실천을 시도했다. 시험기간에 딴생각하면서 자퇴 소동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남은 기간에 교과서 잘 읽고 문제집 잘 풀어야 회피와 좌절감이 줄어든다. 마지막 시험에 집중하는 것만이 엄마가 행복하고 아이를 수렁에서 건지는 이었다.


아빠가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하다가 2023년 12월 15일 금요일 저녁부터 승부수를 던졌다. 동기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동기 모임을 포기하고 일찍 집에 들어갔다. 2호선을 같이 탈 요량이었다. 마지막 시험 준비의 몸 풀기였다. 2호선을 타고 한 바퀴 돌았다. 2시간 걸리고 어디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었다. 마음을 한 곳에 모으기 적합한 수단이었다.


2023년 12월 16일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하고, 적당한 시간을 큰애를 깨웠어요. 안 일어났다. 2차 공격했다. 엄마가 준비한 아침을 같이 먹자고 다그쳤다. 눈 뜨고 거울 보고 뭐 먹어서 힘이 조금 나는 것 같았다. 아빠는 3차 공격을 했다. 2호선 타러 가자고 했다. 가방에 손자병법 한자 해석을 넣고 큰애는 사회 요약본을 들었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에 아빠는 딸에게 말했다. “교과서를 외운 후 문제집을 풀어 봐. 문제집을 푼 후 교과서를 보면 더 잘 이해돼.” 큰딸은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노트 정리하고 요약본을 달달 외우는 방법을 썼으나 시간이 부족해 문제집을 풀지 못했다. 시간은 많이 투입하는데 효율이 안 좋았다.


아빠와 딸은 2호선을 탔다. 아빠는 한 바퀴 돌고 큰딸은 아직 못한 게 있다고 반 바퀴 더 돌았다. 늦은 점심을 먹고 딸은 기출문제를 풀고 아빠는 빵집에 글 쓰러 갔다. 저녁 먹고 4차 공격을 했다. 아빠는 손자병법 글을 다 쓰고 들어가 2호선 한 번 더 타자고 제안했다. 딸은 푼 문제집을 가지고 탔다. 한 바퀴 돈 후 딸이 집중 잘 돼 좋았, 지하철 의자가 딱딱해 엉덩이와 어깨 주위가 아프다고 했다.


2023년 12월 17일 일요일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딸을 깨웠다. 아점을 먹고 2호선을 탔다. 큰딸은 타자 마자 졸기 시작했다. 아빠가 팔꿈치로 치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편안하게 잤다. 지하철에 여관비도 내야 정상인 상황이었다. 아무 말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머핀과 빵을 사서 맛있게 먹었다. 집에 걸어가는데 귀가 떨어질 정도로 추웠다. 딸의 표정은 밝았다. 집에 도착하여  푼 문제에 집중했다. 저녁 9시 지나서 딸은 지하철을 타자고 했다. 나는 졸리고 많이 걸어 딸에게 그러라고 했다. 아내가 나섰다. 이 늦은 시간에 여학생만 보낼 수 있냐고 했다. 반강제적으로 같이 갔다. 싫지는 않았다. 큰딸은 자발적으로 2호선을 타서인지 집중했다. 그날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했다.


2023년 12월 18일 월요일 대망의 사회시험 보는 날이었다. 전에 시험 끝난 후 유선으로 시험에 대해 총평하는 전화를 했다. 그날따라 친구하고 놀기 바쁜지 전화가 없었다. 어쨌든 딸이 시험을 망치고 좌절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아빠의 길고 기나긴 투쟁의 여정은 끝났다. 시험 본 후 큰딸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인생살이에 주어진 과제가 너무 많아 버겁다. 하나하나 잘하려는 사람은 에너지가 바닥나 퍼진다. 힘 빼고 끝까지 하는 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학창생활이 그렇고 사회생활이 그렇다. 딸은 사는데 힘을 너무 많이 다. 잘하려다 보니 숙제 안 한 날은 학원 가기 싫어했다. 힘들 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잘하는 것보다 빠른 시간에 끝까지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벼락치기 연습 끝까지 하는 습관을 들이는데 좋은 방법이다. 지하철에서는 노트 필기나 문제를 풀지 못한다. 힘을 빼고 설렁설렁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딸은 할 얘기가 있으면 아빠와 같이 걷고 시험 끝난 후에도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을 타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상한 지하철 애용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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