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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Feb 18. 2024

32. 기나 고집이 세면 언제 어디서든 위험하다

도덕경 제50장

삶과 죽음을 넘나든다.

삶은 죽음과 같은 무리이며 언제 어디서나 있고,

죽음은 삶과 같은 무리이며 언제 어디서나 있다.


사람이 쌩쌩하면 옮겨 가는 곳은 사지고 언제 어디서나 있다.

대체 무슨 까닭인가? 힘이나 기운이 아주 왕성하기 때문이다.


생명을 잘 양생하는 사람에게 대략 들어보니,

길을 다녀도 코뿔소와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입대해도 갑옷 입은 병사에게 당하지 않는다.


코뿔소가 뿔로 들이받을 데가 없고,

호랑이가 톱으로 할퀼 데가 없고,

병사가 찔러 칼이 들어갈 데가 없다.


대체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유연해 사지가 없으며,

사지인 곳도 유연히 대응하여

사지라고 할 게 없기 때문이다.


出生入死.

출생입사.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생지도십유삼, 사지도십유삼,

人之生,動之死地,亦十有三.

인지생, 동지사지, 역십유삼.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부하고? 이기생생지후.

蓋聞善攝生者, 陸行不遇兕虎,

개문선섭생자, 육행불우시호,

入軍不被甲兵, 兕無所投其角,

입군불피갑병, 시무소투기각,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호무소조기조, 병무소용기인.

夫何故? 以其無死地.

부하고? 이기무사지.


늘 삶과 죽음이 우리 곁에 있다. 쌩쌩하면 언제 어디서나 위험이 도사린다. 반면 부드럽고 연약하면 위험한 사지도 사지가 아니다. 부드럽고 연약한 사람은 사지를 만나지 않고, 만나더라도 용하게 피해 간다.


'늘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인생'

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위험하게 넘나든다(出生入死). 삶과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있다.


살려고 집착하지 않고, 목숨을 운명에 맡긴다. 어떻게 삶에 대해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보고, 내버려 둔다. 삶과 죽음은 각자 자기의 길이 있다. 우리가 바라고 구한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목숨을 귀하게 여긴다고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마음 편하게 사는 삶이 스트레스를 적게 받아 더 오래 산다. 세상살이란 기쁨과 슬픔, 얻음과 잃음, 전쟁과 평화, 평온과 어지러움이 교차한다.


열자의 말이다. 살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는 사람이 있고, 도저히 죽을 상황이 아닌데도 죽는 사람이 있다. 하늘이 내린 운명은 인간의 힘이나 지혜로는 피할 수 없다. 우리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거스를 수 없고, 성인의 지혜로도 파악할 수 없으며, 귀신과 도깨비도 그것을 속일 수 없다. 말없이 스스로 생겨나고 안정되며, 말없이 스스로 보내기도 하고 맞이하기도 한다.


십유삼(十有三)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해석이 있다. A. 열 중에 셋이 있다. B. 열셋이 있다(시방삼세에 있다, 언제 어디서나 있다). B로 해석한다. 十有三에서 有는 ‘있다’라는 동사가 아니라 부사로써 ‘또’라는 의미의 우()의 뜻이다. 용례로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 1권, 순조대왕 천릉지문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嗚呼! 今距登遐二十有三年(오호! 금거등하, 이십유삼년의. 아! 지금으로부터 승하하신 해까지는 23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번역: 국사편찬위원회).


13은 끝없는 시간과 공간을 이른다. 끝없는 시간을 번역하면 ‘언제나’고, 끝없는 공간은 ‘어디서나’의 뜻이다. 13은 불교에서 시방삼세(十方三世)라고 한다. 시방은 10의 방위로 4방(四方 동, 서, 남, 북), 4우(四隅 동남, 동북, 서남, 서북)와 상하 2개를 말한다. 즉 공간의 의미다. 삼세(三世)는 전세, 현세, 내세를 말하며, 시간의 의미다. 즉 13이라는 숫자는 우주의 공간과 시간을 포괄하고 있는 숫자다.


'쌩쌩해 죽음으로 옮겨 가는 자'

힘과 기운만 믿고 강하기만 하면 위험하다(76장).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 부드럽고 연약해야 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어 생명력이 있다.


이기생생지후(以其生生之厚)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A. 생명을 살리려는 집착이 두텁기 때문이다. B. 힘이나 기운이 아주 왕성하기 때문이다. B로 해석한다. 生生은 ‘힘이나 기운 따위가 왕성하다’는 뜻의 관용어다. 30장에서는 壯으로, 76장에서는 强大로 표현했다. 物壯則老 是謂不道(사물은 세고 단단하면 곧 늙나니 이를 도에 어긋나 있다고 말한다. 30장). 大處下柔弱處上(강인하고 크면 아래를 차지하고, 부드럽고 약하면 위를 차지한다. 76장). 장자에도 유사한 문장이 있다. 生生者不生(기운이 왕성하면 살지 못한다).


충북 진천군 계곡에 20~ 30대 젊은 관광객들이 갑자기 불어난 하천물에 빠졌다. 소방대원이 폭우로 하천 물이 급속히 불어나 위험하다고 제지했지만 젊은이들은 무조건 건너가야 한다고 고집부리며 통제를 뿌리쳤다. 상황이 변해 위험해지는데 변화를 읽지 못하고 고집부리던 젊은이들은 결국 돌다리를 건너다 급류에 휩쓸렸다.


자의식이 강해 자기주장이 세고 고집부리며 환경 변화나 주변 관계무디다. 고집부려 봐야 실익 없고 자기만 손해다.  환경이 변하면 과거의 지식은 현재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 지식이나 경험에 집착한다. 환경 변화를 있는 그대로 못 보고 자기 편하게 해석하므로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며, 자기와 다른 의견에 강하게 반박하고, 때론 감정을 섞어 말한다. 시야가 좁다. 쌩쌩한 존재는 결국 죽은 무리고(76장), 곧 쇠락한다(30장).


'유연해 삶을 잘 누리는 자에게 위험한 것이 없다.'

물은 유연하다. 큰 바위도 물의 앞길을 막지 못한다. 바위가 막으면 돌아가거나 바위틈사이로 빠져나간다. 길이 막혀 있으면 물은 차오를 때까지 기다린 후 바위를 넘어간다. 물은 바위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세상에 맞추어 스스로 변한다. 사람들이 보기에 유연한 물에게는 위험한 것이 없다.


성인은 남을 해치거나 남과 싸울 마음이 없다. 전쟁이 날 상황도 가급적 싸우지 않기에 전쟁터에서 칼과 창에 찔릴 일도 없다. 남도 이런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다. 노자는 유연한 사람은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는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코뿔소와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갑옷 입은 병사에게 당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위험한 것도 위험하지 않다.'

설령 위험한 경우가 생기더라도 유연한 사람에게는 위험하지 않다. 변화에 항상 열려 있고, 연약한 에어백처럼 충격이 가해져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탄력성이 있다. 노자는 위험을 만나더라도 상황 변화에 적응해 위험을 잘 피해 간다는 말을 '코뿔소가 뿔로 들이받을 데가 없고, 호랑이가 발톱으로 할퀼 데가 없고, 병사가 찔러 칼이 들어갈 데가 없다.'라고 표현했다.


유연한 사람은 존재하는 것은 모두 변한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으므로 변화에 늘 집중한다. 변화에 재빠르고 부드럽게 적응한다. 위험한 것을 만나더라도 유연한 사람에게는 위험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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