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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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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Feb 20. 2024

33. 차별하지 않고 세상과 혼연일체가 된다

도덕경 제49장

성인은 일정하게 고정된 마음이 없으니,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도에 맞는 사람을 나는 선하게 대하고,

도에 맞지 않아도 나는 선하게 대하니,

베푼 덕은 선하고,


참된 사람들을 나는 참되게 대하고,

참되지 않아도 나는 참되게 대하니,

베푼 덕은 참되다.


성인은 세상에 몸담으며,

자의식을 줄이고 줄여서

세상과 혼연일체가 된다.


백성 모두 조심하고 경계하지만,

성인 모두 처럼 방긋이 웃는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

聖人在天下, 歙歙爲天下渾其心.

성인재천하, 흡흡위천하혼기심.

百姓皆注其耳目, 聖人皆孩之.

백성개주기이목, 성인개해지.


성인의 마음은 자식을 바라보는 어미 같다. 성인은 고집하는 자기 마음이 없기에 백성을 차별하지 않고, 그 빈 마음을 백성의 마음으로 채운다. 선하든 선하지 않든 참되든 참되지 않든 선하고 참되게 대한다. 백성은 성인이 자기한테 왜 이러나 하고 경계한다.


성인의 마음어미를 바라보는 갓난애 같다. 성인은 분별하지 않고 백성을 보며 해맑게 웃는다. 백성은 그 웃음을 보며 감동하고 삶의 고달픔을 잊는다.


'성인은 고정된 마음이 없다.'

리더는 백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백성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백성의 뜻에 따라 다스리는 존재다. 따라서 백성의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하는 리더에게는 고집해야 할 자신의 마음이 없으며 백성의 마음이 곧 자신의 마음이다. 백성의 마음으로 백성을 이해하지 않는 경우 백성을 공감할 수 없다. 자신의 마음을 두고 관찰자로서 백성을 이해하는 경우 자꾸 자기 기준으로 백성을 재단하려고 한다. 리더와 백성의 생각이 다른 경우 당연히 백성의 뜻을 따라야 한다. 본인의 의사를 저버리는 대리인은 해임되거나 파면된다.


또한 리더는 자연의 대리인이다. 만물 모두에 도가 있으므로 리더는 만물을 따르고,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


'성인은 별하지 않는다.'

부도덕하고 참되지 않은 백성도 권한을 리더에게 위임한다. 한 국가의 리더라면 선한 자든 선하지 않은 자든, 지지자든 반대자든 모두리더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전체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망각하고 자기편 이익만 챙기는 리더는 반대파의 이익을 훔치는 도둑의 우두머리와 다를 바 없다. 또한, 파벌을 나누어 전체 화합을 방해하고, 내분을 촉발시키는 분열주의자다.


부도덕하고 참되지 않은 사람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지 왜 선하게 대하는지 의아하다. 그럼 현재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과거에 악했다고 강하게 처벌할 경우를 떠올려 본다. 작용 반작용 법칙이 적용되어 강한 반응을 불러온다. 내가 악하게 대하면 상대도 악에 받쳐 더 세게 대응한다. 싸움이 나 서로 손해 보며 억울한 사람은 더 막 나갈 수 있다.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절대적인 선과 악이 있는지 모르겠다. 선과 악은 비교하거나 자기 생각에 따라 생긴다. 상대적이며 절대적 우열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사물에 투영하여 선악, 미추, 대소로 나눈다. 쪼개 나누지 않고 통합적으로 바라보면 있는 그대로 보이며 고정된 마음이 없어 차별하지도 집착하지도 않는다. 성인은 무심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성인은 자의식을 비운다.'

성인은 혼자 고고한 척 세상을 등지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몸담고 세상을 따른다. 성인은 자의식을 줄이고 줄여 세상과 혼연일체가 된다. 채우지 않음이나 비움은 자기 생각으로만 채우지 않고 그 자리에 나를 포함한 우주로 꽉 채워진 상태와 동일하다. 성인은 반은 세상의 뜻을 따르고 반은 증득證得(깨달아 얻음)한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


'성인은 애처럼 해맑게 대한다.'

성인이 영아처럼 해맑게 웃는 모습인지, 성인이 백성을 어린애 달래듯이 하는 모습인지 헤갈릴 수 있다. 문맥으로 보아 선하지 않아도, 참되지 않아도 똑같이 대하는 영아 같은 모습을 말한다. 또한 제28장에서 암컷 성질을 지키면 늘 덕이 떠나지 않아, 영아로 되돌아간다고 했다. 영아는 순진하고 분별하지 않는 도나 성인을 상징한다. 성인이 영아처럼 활짝 웃는다는 의미로 번역한다.


백성들은 왕에게 밉보이거나 말실수하여 처벌을 받을까 조심하고 경계한다. 그러나 성인들 모두 갓난애처럼 분별하지 않고 백성을 보며 해맑게 웃는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없다. 잘난 백성, 못난 백성 등 구별도 없다. 백성들은 이런 리더를 보며 감동하며, 백성들이 살면서 느낀 고통은 눈 녹듯이 녹는다.


성인의 이런 행동은 영아가 엄마를 보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다. 엄마는 애의 미소를 보고 환희에 차 감동한다. 애 키우느라 힘든 엄마는 영아의 미소를 보는 순간 스트레스가 싹 날아간다. 사실 갓 태어난 애가 엄마를 알아보고 웃는 게 아니다. 생후 3개월쯤 되어야 자기 이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엄마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생후 2개월 이전 영아는 자기 이외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몰라 따로 나와 남이 없으며 무의식적으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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