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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Mar 11. 2024

54. 나누지 않아야 훌륭한 다스림이다

도덕경 제28장

기량이 출중한 수컷 성질을 알지만,

드러내지 않는 암컷 성질을 지키면,

강과 바다가 아닌 세상의 개울이다.

강과 바다가 아닌 세상의 개울이니,

덕이 곁에 있고 늘 덕이 떠나지 않아,

유약하나 조화로운 영아로 돌아간다.


밝은 지식을 지닌 하얀 것을 알지만,

드러내지 아니하는 검은 것을 지키면,

출중한 작품이 아닌 세상의 표준이다.

출중한 작품이 아닌 세상의 표준이니,

잘 맞물려 맞고 늘 덕이 어긋나지 않아,

음양이 뒤섞인 태초 상태로 복귀한다.


귀하고 빛나는 존재의 영광을 알지만,

궂은일마저 마다 않는 굴욕을 지키면,

중심이 아닌 후미진 세상의 골짜기다.

중심이 아닌 후미진 세상의 골짜기니,

비어 넓고 창조하므로 늘 덕이 넉넉해,

티 내지 않고 두터운 옥돌로 돌아간다.


옥돌을 쪼개면 잘해야 그릇이고,

성인을 잘게 쓰면 고을 원님이다.

그래서

훌륭한 다스림은 나누지 않는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故大制不割.

고대제불할.


사장이 노자에게 어떻게 하면 훌륭한 사장이 될 수 있는지 물었다. 노자는 훌륭한 사장이 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노자에게 그런 말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훌륭한 사장이 되려고 의식적으로 하면 망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열심히 화장실 청소하고 휴지를 줍는 사장이 저절로 훌륭한 사장이 된다고 말한다. 노자의 말 따라 하면 폼이 나는 사장이 되는 게 아니다. 수더분하게 휴지를 치우고 다니고, 직원들 어디 불편한 곳이 없는지 살펴보는 사장이다. 순진하고 참된 태초, 본디, 본성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노자는 양을 알지만 음을 지켜 저절로 양을 추구하라고 한다. 양은 직접 추구하여 이룰 수 없으므로 양을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직접 지향하지 마라고 한다. 사람들은 음을 지키는 일을 대단하지 않고, 꾸준하게 따라 한들 대단한 사람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말들을 한다.


노자는 드러내지 않아야 저절로 드러나므로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 양을 수컷(雄, 강견, 기량을 뽐냄), 백(白, 지혜, 분별), 영광(榮, 귀함, 유명함)이며, 지켜야 할 음을 암컷(雌, 유약, 자신을 낮춤), 흑(黑, 무지, 분별하지 않음), 굴욕(辱, 천함, 무명임)이라고 말했다.


도를 열심히 닦아 음을 지켜 살면 강과 바다가 아닌 세상의 개울(谿, 명성 없음, 곁에 있음, 포용), 멋진 작품이 아니라 세상의 표준(式, 흑백의 균형), 심이 아니라 세상의 골짜기(谷, 후미져 존재감이 없으나, 비어 넓은 창조의 여신)가 된다. 폼이 나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늘 덕이 곁에 있고, 잘 맞물려 딱 맞으며, 비어 넓고 만물을 창조하는 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노자는 어른이 아닌 영아(嬰兒, 유약, 조화), 만물이 아닌 태초(無極, 흑백, 음양이 조화를 이룬 근원), 옥이 아닌 옥돌(樸, 가려져 존재감 없는 무명, 소박함, 넉넉함, 두터운 근원)이 싫은 마음 없이 지켜야 할 도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말한다. 


영아는 나와 남을 구분 못하고 조화롭게 포용하는 모습, 태초는 음양이 구분 안  정도로 잘 뒤섞인 모습, 옥돌은 옥과 돌이 섞여 존재감 없으나 드러내지 않아 덕이 넉넉한 모습의 상징이다.


이미 음양의 조화가 완벽한데 음이 드러났다고 세상의 눈에 어설퍼 보여 쪼개는 경우 잘잘해진다. 이미 참되어 훌륭하므로 쪼개지 라고 다.


'기량이 출중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낮춘다(知其雄, 守其雌).'

기량이 출중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자기를 낮춘다. 사람들은 강하고 기량을 뽐내는 수컷 성질만좋아하고, 유약하고 낮추는 암컷 성질을 싫어한다. 기량이 빼어나더라도 낮추는 암컷의 성질을 지키면 이름나지 않지만 물이 모여드는 개울처럼 사람이 모인다. 낮추고 포용하는 덕이 늘 곁에 있어 유약하나 조화로운 영아 같은 본성으로 돌아간다.


'밝은 지식을 지녔지만 드러내지 않고 어리석음을 지킨다(知其白, 守其黑).'

밝은 지혜를 지녔지만, 그것을 드러내거나 쓰지 않고 크게 어리석음을 지킨다. 사람들은 흑백으로 나누어 밝은 백만을 원하고, 어두운 흑을 꺼려한다. 밝은 지혜가 있더라도 슬쩍 눈과 귀를 가린다. 남을 비방하지 않고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리는 흑의 성질을 지키면 흑백의 균형이 잘 잡힌 세상의 표준이다. 흑백의 덕이 한치의 어긋남 없이 뒤섞여 태초의 무극 같은 상태를 회복한다.


'영광을 알지만 드러내지 않고 굴욕을 지킨다(知其榮, 守其辱).'

귀하고 빛나는 존재지만, 드러내지 않고 자기를 천하게 여겨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굴욕을 지킨다. 사람들은 리더가 되어 귀하고 빛나는 존재만을 바라고, 봉사하는 것을 싫어한다. 귀하고 빛나는 존재더라도 자기를 낮추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음의 성질을 지키면 귀함 등이 비어 넓으며 창조의 여신인 세상의 골짜기 같은 존재다. 큰 공헌을 하지만 티 내지 않아 덕이 충만하여 옥돌 같은 두터움을 회복한다.


골짜기는 ‘후미져 존재감이 없다’는 뜻과 ‘비어 넓고 만물을 창조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상은 후미져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존재감이 비어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허의 여신 이미지가 골짜기다. 골짜기 같은 도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생멸을 주관하는 큰 역할을 한다.


옥돌은 겉보기에 잘 드러나지 않아 소박하고 존재감이 없는 무명이지만, 사실은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두터운 존재다. 옥돌은 덕이 넉넉한 존재, 옥기를 만드는데 바탕이 되는 근원 상징한다.


'훌륭한 다스림은 나누지 않는다(大制不割).'

훌륭한 다스림이나 제도 등은 이해, 시비, 선악 등으로 나누어 차별하지 않는다. 내 편, 네 편이 따로 없다.


최고의 상태인 ‘돌과 섞여 빛이 가려진 옥돌’을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가르면 잘해야 그릇밖에 안 된다. 최고의 리더인 ‘무위로 다스리는 성인’을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부려 쓰면 잘해야 고을 원님(官長, 관장은 백성이 고을 원님을 높여 부르는 말)밖에 안 된다. 큰 인재는 대립하는 양면을 포용하므로 모호하고, 소박한 본성을 지니고 있어 초라해 보인다. 이런 큰 인재를 잘게 쓰면 큰 인물이 되레 잘잘해진다.


대제불할(大制不割)은 극히 크게 자르면 마치 나누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제(制)를 제도, 다스림, 만듦으로 그 의미를 새길 수 있다. 무한대 길이의 끈을 무한대 직전에서 자르는 경우 자르지 않은 것과 같다. 무한대는 계속 멀어지고 있어 그 직전이 어딘지 알 수 없어 자른 것인지조차 알  없다. 비슷한 의미로 극히 큰 그릇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너무 크게 만들어 보는 사람은 다 그릇 같지 않아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또한, 극히 큰 소리는 원래 지구 돌아가는 소리처럼 인식할 수 없으므로 소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아란?


일반적으로 영아는 몸과 마음이 더 커야 하는 존재고, 나와 남을 구분하는 자의식을 키우고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교에서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할 수 있는 어른을 지향한다. 학문을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여 욕심을 제어할 수 있어야 올바른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자는 영아라는 존재를 유교나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게 본다. 노자가 지향하는 인간은 어른이 아니라 영아다. 유가가 맞는지 노자가 맞는지 따지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그 문제는 제쳐놓고 노자의 견해를 이해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노자의 영아에 대해 역발상이 기가 막힌다. 영아는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성을 가지고 있다. 자의식이나 지식이 없고 끊임없이 도에 따라 변하며 사는 주체적 존재다. 영아는 본성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도를 품은 성인(聖人)의 모습이다.


영유아기는 음기와 양기가 하나로 모여 있다. 도덕이나 윤리 등 고정관념에 얽매지 않고 생각하는 데로 행동한다. 똥 싸지르고 비비고, 벗고 다녀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무의식의 극치다. 나와 남의 구분이 생기기 이전이므로 남과 경쟁하지도 않는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욕구도 없다. 영유아기는 도에 따라 사는 기간이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면서 본성에 먼지가 묻어 제 색깔과 빛을 잃는다. 따라서 노자는 성장하면서 쌓은 자의식, 학문이나 기교 같은 것에 집착하지 말고 소박한 본성을 회복하여 본성대로 살라고 강조한다. 자꾸 비우라고 하는 이유다.




옥돌(樸)이란?


'박(樸)은 통나무인가? 옥돌인가?'

도덕경 번역책들은 박(樸)을 대부분 통나무로 해석한다. 박(樸)이 통나무인지 옥돌인지 살펴본다.

① 글씨의 변천

박(樸) 자는 전국시대 이전에는 옥돌의 의미로 썼다. 그 이후 옥돌 박(璞) 자가 만들어졌다. 도덕경에서 박(樸) 자를 통나무가 아닌 옥돌(璞)로 해석해야 한다(자료원: 새로 읽는 노자도덕경, 문성재 옮김).


② 도덕경에서 박(樸) 자의 쓰임

도덕경에서 박(樸) 자는 8번 나온다. 용례를 살펴보면 박(樸) 자를 두터움(敦)(15장), 꾸밈없는 바탕(素)(19장), 덕의 넉넉함(足)(28장), 옥그릇(器)이 되는 존재감 없는 근원(28장), 작지만 작용하고 세상은 신하로 삼을 수 없는 독립적 존재(32장), 무명의 존재감 없는 물건(無名之樸)(37장)의 뜻으로 사용했다.


두터움, 바탕, 작음, 존재감 없는 물건, 소박함 등의 의미를 상징하는 대상은 도(또는 없음)다. 작고 무명이며 바탕의 이미지에 통나무보다 옥돌이 더 적합하다. 이번 장의 박산즉위기(樸散則爲器)를 통나무를 쪼개 도구를 만든다는 번역보다 옥으로 옥그릇을 만든다는 번역이 자연스럽다. 참고로 바이두 백과사전에서 무명지박(無名之樸)을 ‘흔하여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쪼거나 갈지 아니한 천연 그대로의 옥덩어리’로 설명했다(未出名的璞玉).


'박(樸, 옥석)은 무엇에 대한 비유적 표현인가?'

옥은 크게 경옥과 연옥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경옥은 반투명체로 된 짙은 푸른색 윤이 나는 비취옥을 말한다. 연옥은 백색과 암녹색을 띠고 있는 투각섬석의 일종이다.                    


유가에서 군자의 덕을 옥에 비유한다. 옥의 단단함, 온화함, 광택 등의 특성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절차탁마(切磋琢磨: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한 옥기를 이상적인 도덕의 경지나 성인의 경지에 비유한다. 옥은 높은 권위를 나타내는 물건이었으며 옥으로 만든 도장을 옥새, 왕이 사용하는 의자를 옥좌, 왕의 허리띠를 옥대라 했다


도가도 옥을 칭송한다. 그러나 유가와 다르다. 유가는 가공된 옥기를 예찬하나, 도가는 가공되지 않은 옥돌을 칭송한다. 유가는 갈고닦아 빛나는 상태를 높게 평가하나, 도가는 갈고닦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빛이 가려진 상태를 중시한다. 도가는 가공하지 않은 옥돌에서 인간 본성의 순박함을 찾는다. 옥돌을 괜히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는 가공을 해봐야 원석 본래의 가치를 훼손시킨다고 생각한다. 가공이 필요하다면 모나지 않아 다른 사물이 다치지 않는 둥글둥글함 정도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옥돌을 다음과 같은 상징어로 사용하고 있다.

'꾸미지 않은 순수한 근원, 이름 없는 근원'

옥돌은 가공하지 않은 돌로 자연에서 채취한 그대로의 순수한 원석이다. 가공하기 이전에 소박한 근원으로써 옥돌은 무(無)에 대한 상징이다. 무는 만물의 생기기 이전에 존재했던 근원이다.


옥돌은 세상 사람들이 귀하게 생각하는 옥그릇을 만드는 근원이지만 무명의 상태로 존재감 없이 존재한다. 무(無)도 마찬가지다.


‘덕의 넉넉함’

노자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빛을 가리라고 말한다. 빛을 가린 모습이 옥돌이다. 옥돌은 옥을 충분히 함유하고 있어 옥만 모으면 빛이 나지만 옥돌은 돌과 섞여 빛나지 않는다. 빛이 가려져 알아보기 힘들지만 티 내지 않아야 덕이 있는데, 그런 덕을 넉넉히 품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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