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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Mar 28. 2024

71. 있음은 이롭고 없음은 쓸모 있다

도덕경 제11장

서른 개의 바큇살이 바퀴통과 함께하고,

없음이 역할을 맡으니 수레가 쓸모 있다.


덩이진 흙을 으깨고 개어 그릇을 만들고,

없음이 역할을 맡으니 그릇이 쓸모 있다.


지게문과 들창을 뚫어 집을 만들고,

없음이 역할을 맡으니 집이 쓸모 있다.


그래서

있음은 이롭다고 생각을 하고,

없음은 쓸모 있다고 생각한다.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삼십폭공일곡, 당기무, 유차지용.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연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착호상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고유지이위이, 무지이위용.


노자는 발상의 전환을 유도한다. 그릇은 음식이나 물건을 담는 기구다. 그릇의 빈 공간이 본질인지, 빈 공간을 싸고 있는 놋쇠, 사기, 유리, 플라스틱이 본질인지 묻고 있다. 같은 의미로 그릇을 그릴 때 빈 공간을 그리는지, 그릇의 빈 공간을 싸고 있는 놋쇠, 사기, 유리, 플라스틱을 그리는지 불분명하다. 있음은 있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없음과 관계 속에서 기능을 발휘하며 존재한다. 자아도 자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관계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 노자는 특히 대접을 해 주지 않는 무나 환경 등 있음을 감싸고 있는 빈 공간(無)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없음은 사고하여 직접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있음의 움직임, 작용, 도구로써 기능을 통해 없음을 파악할 수 있다. 노자는 드러나지 않아 없는 것 같은 도가 어떻게 세상을 운영하는지 설명한다. 있음은 없음과 공존하며, 없음이 작용해야 있음이 기능을 한다고 말한다. 있음은 이롭고 없음은 쓸모 있다.


'없음으로 있음이 작용하는 사례'

바큇살을 빈 바퀴통(보통 굴통이라 함)에 모아야 바퀴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릇에 빈 공간을 내야 담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집에 빈 공간을 만들어야 집으로써 기능을 한다.


'있음은 이롭고, 없음은 쓸모 있다.'

있음이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없음이 작용하여 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있음의 존재감은 있음 스스로 드러낼 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없음이 작용할 때 나타난다. 세상의 운영원리인 도는 없음 형태로 작용하므로 만물에게 이롭고, 만물은 자율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한다.


있음과 없음 중 어떤 것이 더 근원적인가? 노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했다. 물고기는 연못에서 벗어날 수 없고(제36장),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삼으며,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삼는다고 했다(제39장). 이런 문구들에 비추어 보아 없음이 더 근원적이라는 주장이다.


인간에 대입해 보면 자아와 환경 중 환경이, 몸과 마음 중 마음이, 의식과 무의식 중 무의식이 더 근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이해할 때 안 보이는 환경, 마음, 무의식에 관심을 가지면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있음과 없음이 다 필요해서 어떤 것이 본질이고 어떤 것이 현상인지 따져봐야 큰 실익은 없다.


있음과 없음은 공존하며,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 있음은 없음이 작용하여 기능을 할 때 비로소 이로워진다. 얼핏 봐서 아무 소용도 없을 것 같은 존재가 있어 다른 존재가 빛난다.


인간은 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언젠가 없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다. 언젠가 가야 하므로 살아 있는 현재와 현재의 자신이 무척 소중하다. 계획한 것을 다 못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삶의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현재, 나, 처한 환경에서 행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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