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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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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Mar 29. 2024

72. 티 나지 않게 베풀어 안 드러나니 덕이 있다

도덕경 제10장

음양을 싣고 하나로 품되 안 떨어지게 할 수 있나요?

기를 모으고 유연하기가 애처럼 조화로울 수 있나요?

씻고 제거해 진상을 잘 알되 흉이 없이 할 수 있나요?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되 무위할 수 있나요?

대궐문을 여닫는 왕이지만 암컷처럼 낮출 수 있나요?

아주 뚜렷이 알고 사방으로 통하되 무지할 수 있나요?


만물을 낳아서 기르지만,

낳아도 소유하지 않으며,

위하지만 의지하지 않고,

기르나 주재하지 않으니,

이를 오묘하고 심원하며,

안 드러나 현덕이라 한다.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婴兒乎.

재영백포일, 능무리호. 전기치유, 능영아호.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척제현람, 능무자호. 애민치국, 능무위호.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

천문개합, 능위자호. 명백사달, 능무지호.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생지휵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是謂玄德.

시위현덕.


왕이 노자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나요? 노자는 왕에게 의문문으로 대답한다. 음양을 하나로 꼭 안아 안 떨어지게, 애처럼 조화롭게, 흉 생기지 않게, 무위로, 암컷처럼 낮추고, 알아도 무지로 할 수 있나요? 티 나지 않게 덕을 베푸세요.


말을 덧붙인다. 티 나지 않게 덕을 베풀고 생색내지 마세요. 은혜 입은 사람을 종속시키지 말고, 베풀었다는 생각이나 보답에 의지하지 마세요. 뒤에서 도와주세요. 일 처리를 앞장서 주도하지 마세요.


덕을 베풀고도 덕을 놓아주어야 덕이 있으니 오묘하고 심원한 현덕이다. 현덕은 현대적 용어로 봉사 리더십(servant leadership)과 유사하지만 한 단계 더 나간다. 리더는 봉사자, 공동체의 조율자, 환경 조성자, 자연의 이치 수용자와 유약한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리더에게 다음과 같이 다스리라고 말한다.

'하나되어 차별하지 않는다.'

성인은 음양처럼 각기 다른 것들을 아끼고 받들며, 자기 취향대로 나누어 차별하지 않고 포용한다. 그래야 그것들과 한 마음 한 뜻이 될 수 있다. 음양이 뒤섞여 하나된 도의 모습이다.


음양을 안 떨어지게 하라고 한 이유는 음과 양은 성질이 달라 흩어지고 떨어지려는 특징이 있다. 음양을 하나로 모으고 균형을 이루어 떨어지지 않게 잘 관리한다.


영백(營魄)을 보통 영백(靈魄), 혼백, 백성으로 해석하나 이 글에서는 음양으로 번역했다. 영(營)은 한의학에서 혈맥을 타고 온몸을 도는 기운으로 양의 속성이 있다. 백(魄)은 육체의 기운을 의미하며 음의 속성이 있다. 음양은 각기 개성이 다른 것들의 의미로 해석했다.


'조화롭게 대한다.'

성인은 백성이 위임한 막강한 힘을 가졌으나 부드러움을 겸비하여 영아처럼 조화롭게 백성을 대한다. 권위적인 왕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백성과 마찰을 불러일으킨다. 노자는 리더가 유연하지 못하고 혈기 왕성하면 옮겨 가는 곳이 사지고 언제 어디서나 있다고 말했다(50장).


'흉 없이 다스린다.'

성인은 편견이나 고정된 형상이 없어 사물이나 현상을 꿰뚫어 본다. 그러나 아는 정보를 이용해 백성의 단점을 비판하거나 백성을 괴롭히지 않는다. 진상을 뚜렷이 알지만 흉이 생길 정도로 너무 빡빡 닦지 않는다. 눈과 귀를 살짝 가리는 우치로 다스린다.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다(무위).'

성인은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지만 의도적이나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다. 자유를 부여하고 때가 되어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린다.


'낮춘다.'

성인은 대궐문을 여닫는 정치의 주재자이지만 암컷처럼 자신을 낮춘다. 힘이 있지만 자신을 낮추어 권력의 원천인 백성을 존중하고(28장, 61장), 자연의 이치에 순응한다.


천문개합(天門開闔)을 대궐문을 열고 닫는 ‘정치를 주재한다’는 뜻으로 번역했다. 하늘에 천문을 관리하는 천신이 있고, 궁궐에는 대궐의 문을 주재하는 통치자가 있다. 왕에게 이 단어를 쓸 경우 정치를 주재하는 통치자를 의미한다.


'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소통한다.'

성인은 아주 뚜렷하게 알고 있고 여러 정보를 듣고 있으나 때에 따라서는 모른 척 넘어간다. 지식이 많지만 지식의 한계를 알아 편을 나누거나 싸우는 짓을 하지 않는다. 무지와 진심으로 백성을 대하고 소통한다.


'도의 다스림: 현덕(玄德)'

티 나지 않아 남들 눈에는 리더십이 발휘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백성 스스로 하므로 저절로 리더십이 발휘된다. 또한 저절로 발휘되는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여 잘났다고 하지도 않는다. 도는 덕을 만물에게 베풀지만 만물을 소유하거나 주재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다. 티 나지 않는 덕을 베풀고 드러나지 않아 덕이 있다. 묘하고 심오한 덕으로 현덕(玄德)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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