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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May 09. 2019

06 : 점 같은 존재

연애 에세이 : 나의 존재에 대한 의문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점 같은 존재        




       

  ‘동주’를 보았다. 보는 내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에 울컥했다. 마음이 아파서 울컥한 것이 아니라 이해가 안 가서 울컥했다. 그를 보고 있는 순간에는 그랬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작업을 좋아하지만, 더 빨리 커리어를 쌓고 싶었다. 특히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강하게 하고 싶었다. 마음이 밉게도 급했다. 성장하는 친구와 나를 비교하며 채찍질했다. 여유가 없어진 마음이 점차 황폐해져 갔다. 몸도 망가지고 마음도 망가지고 있었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타인에게 기대니 더 초라해졌다. 마침표 없이 길어지는 발걸음에 쉼표를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한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일인으로서 여운이 남는 영화를 보고 나면 집까지 걸어간다. 생각에 잠겨서. 40분. 그 시간을 참 좋아한다. 나의 생각과 내가 함께 걸어가는 고요의 시간이니까. 한국의 대표적 시인 윤동주. 그의 삶을 그린 영화를 보았다. 흑백으로 만들어졌고, 잔잔하게 흐르는 영화였다. 흑백이라 단조롭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천천히 그의 마음을 읽느라 그럴 틈이 없었다. ‘동주’도 여운이 있었고, 관람이 끝나자 남은 여운을 길거리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그냥 같이 걸었다.     


 보통은 다 걷고 나면 바로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동주’는 나를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집 앞 오르막길에 다다르는 순간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헛헛할 때, 답답할 때, 힘들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갈 곳이 없어 동네를 한 바퀴 돈다. 너무 멀지 않은 곳까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들어가고 싶지 않으니 동네를 돌기로 했다. 입김이 자욱해지는 차가운 날이었고, 밤이었고, 길은 반짝이는 하얀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도는데 한 바퀴가 두 바퀴가 되고 세 바퀴가 되었다. 한 바퀴를 돌았을 때는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다. 두 바퀴가 되어서는 약간 알 것 같았다. 분명하진 않았지만, 속에서 올라오는 분노, 울분, 노여움 같은 것이었다. 세 바퀴째 되어서는 눈에서 비가 내렸다. 어깨가 조금씩 떨렸고 계속 흐르는 비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길은 차디찬데 몸은 열대야였다. 그 어두운 밤. 고요히 ‘동주’와 함께 울었다. 가만히 조용하게 울려 퍼지는 그의 시처럼 눈길을 밟았고, 가만히 조용하게 깊고 아득한 어둠에서 허우적거렸다.     


 영화를 볼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의 마음이 조금씩 다가왔다. 참회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지난 시간에 대한 과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두 점 부끄러운 내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나는 내 자아에 대해 고뇌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쯤 존재에 대한 물음을 품는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모여 있는 지구에는 사람이라는 존재들이 생겨나 살아간다. 지구가 멸망하면 허망하게 없어질 존재들이 무엇을 위해 이 작은 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나라는 점 같은 존재가 살아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나는 이대로 괜찮은지. 모든 의문들이 은하의 별처럼 쏟아졌다.     


 자연히 흐르도록 두면 차근히 쌓일 것을 기다리지 못해 달려가 잡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비참해진 모습에 어둠 속 괴로움은 더 커져만 갔고 나의 마음까지 갉아 먹었다. 나는 자격지심과 열등감 시기심 질투심에 의해 뭉개지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동주’를 보아서. ‘동주’가 거기서 나를 꺼내주고 있었다. 이제는 그 마음, 놓아주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인간의 인생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사춘기에만 발생 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일생을 통해서 자아를 찾아가야 진정한 인간이 된다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은 죽을 때가 되어야 진정한 인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춘기 이후 두 번째 성장통을 겪는 것 같았다. 그리 울고 그리 고뇌하고 참회하니 눈을 가리고 있던 막이 한 꺼풀씩 사라지는 듯했다. 자욱했던 안개가 걷어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잠이 들고 눈을 뜬 아침은 유난히도 밝았던 것 같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모여 형태를 이루듯이, 형태가 모여 변형이 되듯이, 먼 훗날 언젠가 지구가 허망하게 멸망할지라도, 내가 75억 명 중에 점 같은 존재이더라도 중요하지 않은 존재는 아니었다. 나의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는 영향을 받을 것이고 그가 또 다른 누군가에 영향을 전해 줄 것이다. 그러니 그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었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존재일 수 있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인식이 바뀌고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 사람은 변화한다. 내가 아주 선한 사람이 되었다거나 성인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면 깊은 곳부터 자라난 괴로움이 잠재워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감사함을 느끼니 새로운 생각이 차올랐다. 이제 나는 나만의 페이스로 내 길을 가기로 결정 할 수 있었다.     

 

 지독히도 어두웠던 밤. 홀로 밝게 빛나던 달빛 아래. 비참했던 나는 나를 위로했다. 누구도 해줄 수 없던 그 위로를 내가 나에게 해주었다. 받아 보니, 그게 진짜 위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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