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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May 13. 2019

07 : 열번 만나도 모른다.

연애 에세이 : 한국인의 삼세판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열 번 만나도 모른다 


              

 선택의 기준. 판단의 기준. 한국인은 삼세판. 3이라는 숫자의 위엄. 한국에서는 3이라는 숫자를 여기저기 많이 사용한다. 딱 세 번만 참아봐. 딱 세 번만 해봐. 가위바위보도 세판. 우연이 세 번이면 운명. 그래서 나도 세 번이면 되는 줄 알았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뭄에 단비가 내렸다. 갈라진 틈 사이로 물줄기가 흘러내렸고 말라있던 뿌리에 조금씩 젖어들었다. 그러니 타인의 말을 수용할 귀도 열렸다. 나에겐 위로 오빠 한 명이 있다. 오빠가 결혼을 했으니 우리 가족은 4명에서 5명이 되었다. 우리 다섯 가족이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내가 남자친구도 없는 30대 초반의 여성인지라 우리 가족들은 걱정했다. 철없는 딸이, 동생이 결혼은 할 수 있을는지. 오빠는 나에게 물었다. 만나는 남자가 있는지. 나는 없다고 했다. 오빠는 다시 물었다. 저번에 만나던 남자는 어떻게 되었냐고 했다. 나는 마음이 안 간다고 답했다. 그 저번에 만나던 남자가 그 사람이다.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머릿속에서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3주 전 만남이 다시 생각났다. 유쾌했던 대화가 불현듯 스쳤다. 이번엔 내가 오빠에게 물었다. 이성을 만날 때는 3번이면 된다던데 3번 정도면 웬만큼 안 거 아니냐고. 연애 경험이 많은 오빠는 단번에 말했다. 열 번을 만나도 모른다고. 나는 단순하게 그 대상을 더 만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세 번의 만남으로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고 하니 오빠는 그 결정도 세 번으로는 부족하다 했다. 그와의 만남이 세 번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더 만나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연락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지난 후였다. 가능성을 남겨두고 연락을 끊기는 했지만, 그 가능성을 내가 다시 열었다고 해도 그 사람이 닫으면 끝이었다. ‘될 대로 되라지’ 라는 생각으로 문자 한 줄을 보냈다.    

  

 “저번에 만나기로 했는데 언제 가능하세요?”     


 확실히 그날의 대화는 특별하게 기억되어 있었다. 단지 그의 모습이 내 눈에 익숙하지 않다는 단편적인 이유로 특별함을 놓치진 않을까 싶었다. 보낸 문자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의문을 품었다. 만일 다시 만난다면 그 사람이 좋아질까? 불안한 생각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두고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만나보면 알 테니까.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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