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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Aug 23. 2019

13 : 5월의 바다

연애 에세이 : 진실을 알고 싶다면 말보다 행동을 보면 된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13 : 5월의 바다         

연애 에세이 : 진실을 알고 싶다면 말보다 행동을 보면 된다.


      

 사랑받는다는 진실, 사실이 아닌 진실, 말이 아닌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은 간혹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라는 순간을 피하기 위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기도 하고, 상처를 받을지언정 ‘사랑해’라는 달콤한 속삭임에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에. 아니라는 걸 알면서 지독히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미련함이리라. 새빨간 입술 사이로 흐르는 거짓들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행동을 보면 된다. 행동은 말보다 강하다.     


 음악을 즐겨 듣는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에. 음악을 특별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색을 좋아한다. 조용히, 홀로, 잔잔하게 흐르는 공간 속에서. 음악은 하나 남은 퍼즐 조각을 맞춰 넣은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신혼집으로 몸을 옮긴 후로는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그는 회사를 다니고 나는 프리랜서이니까 일이 없는 날은 공간 안에 여유로이 남겨진다. 


 시간이 흐르면 저녁이 오고, 그 사람이 온다. 이젠 나도 그를 위해 요리를 하는 어엿한 주부라 저녁준비를 했다. 현관문의 비밀번호 알림음이 그가 왔다고 알려주었다. 그와 함께 있는 저녁에는 음악을 잘 틀지 않는데, 그날따라 듣고 싶었던 노래를 들으며 요리를 하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음악 듣는 거야?”

 “응.”

 “스피커 하나 사줘야 하는데.”     


 핸드폰의 음질이 아닌 좋은 음질로 음악을 들으라며 스피커를 사주겠다고 하는 그. 나는 스피커가 한두 푼의 가격은 아닌지라 ‘스피커 좋지~’ 라는 말만 남기고 사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어도 나름 괜찮으니까. 어차피, 그는 내가 스피커를 사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몇 주가 지나고 부모님을 모시는 집들이를 했다. 집들이를 위해 우리는 이마트에 들렀고, 이마트에는 전자기계를 파는 큰 코너가 있었다. 스피커가 다양하게 종류별로 있었다. 그는 나에게 스피커를 고르라고 했다.     


 우리 집에 스피커가 생겼다. 핸드폰 음질로만 듣던 음악을 스피커로 들으니 귀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음악은 나를 춤추게 했다. 깨끗한 음질과 적당한 베이스가 리듬감을 살려주어 저절로 흥이 났다. 그는 이미 춤을 추고 있었다. 나를 위해 샀다지만 그도 좋아하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다음날 저녁, 현관문 알림음이 귓전에 들렸고 어김없이 그가 왔다. 이번엔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요리를 하고 있었다. 항상 집에 오면 티브이를 켜고 밥을 먹던 그는 티브이를 켜지 않았다. 나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식사를 했다. 요리하며 음악을 듣던 그 다음 날 저녁, 이번에도 그는 티브이를 켜지 않았다. 항상 티브이로 보던 유튜브 동영상을 말없이 핸드폰으로 틀더니 이어폰을 이어 귀에 꽂았다. 나는 요리를 하고 저녁을 먹는 순간까지 음악과 함께했다. 그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알고 있으니까. 배려라는걸.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노래 꺼줄까?”

 “아니, 내가 왜 이어폰을 꽂았는데.”

 “그치.”

 그의 마음 고이고이 알기에 말없이 식사하는 저녁이 참, 따뜻했다.     


 그와 만나기 시작한 2달이 되던 즈음에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금전적 문제로 속앓이를 했고, 모아두는 돈도 없이 버는 족족 작업에 투자하고 있었다. 미래 따윈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알 수 없는 미래에 힘들어하자 불안정감이 몰려왔었다. 갑갑함이 넘쳤는지 그에게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흘렸다. 단지, 바램이었다. 진짜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럴 물질적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는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방 예약까지 끝내놓고, 강원도에 가자고 했다. 우리는 그 주말 강원도로 향했다.    

 

 강원도 경포대 옆 사근진 해변. 해거름에 도착해 바다 앞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5월의 바다는 아직 거칠었다. 파도의 울부짖음은 강렬했다. 조여왔던 감정이 씻겨나가는 듯했다. 우리는 바다를 잠시 남겨두고 강릉 시장에서 회와 소주를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다시 바다를 향해 걸었다. 발밑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모래 위에서 이미 저문 해를 배웅하고, 달빛을 맞이하며 밤바다를 거닐었다. 나는 파도 소리에 위로받았고, 아득한 어둠 아래, 그날의 풍경을 눈동자에 깊이 담았다. 사근진의 밤바다, 그는 내 마음의 약을 처방해주었다. 숙소로 돌아와 그와 준비해둔 술 한잔을 기울였다. 형광등 불을 끄고, 베란다 문을 열었다. 달빛에 의지한 채 파도 소리를 들었다. 눈앞에 놓인 소주보다 무겁고 짙게 깔리는 파도 소리가 더 달콤했다. 파도는 ‘쏴아-’를 반복하며 귓전을 맴돌아 그와 나 사이의 공간을 채워 주었다. 분위기에 취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리라.    

 

 그래,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도. 말이 행동으로 가는 사람.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서 찾아주는 사람. 무엇이 가치 있는지 아는 사람. 진정함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표현도 잘하면서 행동도 백 점 만점. 그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라는 사람을 만나 감사했다.           


일러스트 @jeheera.illust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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