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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Aug 26. 2019

19 : 닫힌 방

연애 에세이 : 변화하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19 : 닫힌 방          

연애 에세이 : 변화하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불이 꺼진 공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발은 더듬더듬 팔은 휘휘 손은 까닥까닥 움직인다. 눈을 감고 잠시 서서 기다리다 감았던 눈을 지그시 뜬다. 눈동자를 움직여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 보이는 물체들을 하나씩 찾아낸다. 책상과 의자, 종이 한 장과 연필. 천천히 발을 한 발자국씩 옮기고 허공을 젓던 손으로 의자를 잡고 끌어내 앉는다. 의자에 앉아 책상 앞으로 몸과 의자를 바짝 붙인다. 손이 살짝살짝 책상을 만지다 종이를 확인하고 연필을 찾는다. 찾은 연필을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으로 위치를 조정한다. 종이의 크기를 손끝으로 가늠하고 선을 긋고 모양 하나를 그려낸다. 시간이 흘러도 켜지지 않는 불을 내버려 두고 그렇게 익숙해져 간다.     


 옷은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어떤 스타일로 입느냐에 따라 단순히 멋지고 예쁘고가 아니라 어떤 분위기의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나는 자연스러움을 선호했다. 한껏 치장한 것보다 단순한 것들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민낯 얼굴이 그리 예쁘진 않으니 화장을 하더라도 옅게 했고, 옷은 입더라도 흰 티와 청바지를 자주 입었다.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흰 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멋진 사람이 진정 멋지다’라는 말을 머릿속에 새기며. 치마보다는 바지를 많이 입었고, 기본적인 옷들을 더 많이 사서 입었다. 가끔 눈으로 보기에 예쁜 옷들을 입어 봤지만 나와 맞지 않는 옷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은 고정되어 갔다. 흰 티와 청바지는 거의 나의 전용 의상이 되어갔다. 덤으로 가격도 저렴하고 어디에나 입고 다닐 수 있으니 무적의 옷이였다.     


 “유니폼이네.”     


 내가 입고 다니는 옷들을 보며 그는 유니폼이라고 말했다. 발끈한 나는 다르다며 색깔만 같지 이 티셔츠는 브이넥 저 티셔츠는 라운드라고, 청바지도 저건 반바지고 저건 일자, 저건 스키니 라고 대꾸했다. 구두랑 신을 때랑 운동화 신을 때랑도 느낌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말하면 뭐하나. 그의 눈엔 그거나 저거나 다 같았다. 청바지는 청바지로만 보이고, 티셔츠는 그냥 티셔츠로만 보였다.     


 “오빠가 원피스 사줄게.”     


 거의 바지만 입는 내가 답답했는지 집에 치마 없냐며 물었다. 한 개밖에 없다고 했다. 원피스도 없냐고 묻길래 결혼식 갈 때 입었던 거 하나 빼고는 없다고 했다. 어이없어하더니 치마 입는 모습이 보고 싶다며 그는 나를 백화점에 데리고 갔다. 잘 사보지 않은 원피스를 머릿속에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어떤 스타일을 사야 하는지 기준도 없이 막연하게 원피스라는 이름만 생각하고 따라갔다. 두 세 군데 정도에서 옷을 살펴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곳으로 정해 들어갔다. 내가 마음에 드는 옷 세 벌을 골랐다. 그중에 하나는 제외되었고, 두 벌 중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와 나의 선택이 갈렸다. 내가 마음에 드는 옷과 그가 마음에 드는 옷 둘 중에 무엇을 살까 하다가 결국 두벌을 다 샀다. 원피스도 치마도 딱히 없는 나를 위해 다양하게 입어보라는 의미에서였다.     


 나는 그가 사준 옷을 안 어울린다 생각해도 입었다. 비슷한 종류로만 가득 있던 옷장에 색다른 옷이 끼어들었다. 두 개의 원피스에 함께 걸칠만한 옷은 없었다. 그래도 입었다. 그랬더니 그는 원피스를 입은 날은 티 내지 않게 웃었고 이쁘다며 칭찬해주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쇼핑하다 하나씩 옷을 선물 받았다. 가끔 맛있는 만찬을 사주는 것 같이.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쇼핑 대화는 이랬다.     


 “안 어울려.”

 “아니야. 어울려 입어봐.”

 “모르겠는데.”

 “오빠 말 들어, 내가 더 잘 알겠다.”     


 “다리 짧아 보여.”

 “안 짧아 보여.”

 “아닌데 짧아 보이는데.”

 “착각이야.”     


 나의 패션센스를 믿지 못하는 그는 나를 스타일링 하기 시작했다. 점차 그가 제안해주는 옷들에 적응해 나갔다. 가끔 나만의 스타일이 사라지는 것 같아 내가 원하는 대로 입었을 때 그의 마음에 안 들면 ‘너는 옷을 못 입어’라는 말을 들었다. 간섭받는 것도 별로였고, 놀림 받는 건 더 별로였지만 그 덕분에 여러 가지의 옷을 입어볼 기회는 가질 수 있었다. 적응해 나가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옷들이 점차 눈에 익어갔고 어울려 보였다. 새로운 옷들을 시도해가며 직접 사 입어보고 도전하기도 했다. 그 덕에 다양한 옷을 입어 보게 된 만큼 다양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을 체감할 수 있었고, 어느 순간 옷이라는 고정관념 속에 갇혀있던 나는 옷을 따라 생각의 시야도 한층 더 넓어져 있었다.     


 익숙함에 취하면 새로움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막을 때가 있다. 익숙해진 편안함에서 벗어나 적응하는 어려움을 겪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 생각한 것만이 옳다는 그릇된 관념에 갇혀서. 나는 고작 옷 몇벌 입어보는 걸로 생각의 변화가 생길거라고는 예상도 못했었다.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잃는 건 없지만, 얻는 것도 없다. 변화하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당신의 삶이 지금 무료한가요 ? 누군가 나에게 진심으로 예쁘다고 칭찬해주는데 민망하고 아닌 것 같나요 ? 그렇다면 혹시 나의 주관적 시선에 갇혀서 좁아진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요 ?
시도하세요. 무엇이든 해보세요. 그리고 성장하세요.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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