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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Aug 26. 2019

18 : 12시가 지나면

연애 에세이 : 진심은 전해진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18 : 12시가 지나면            

연애 에세이 : 진심은 전해진다. 



        

 진심. 사람의 진심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 이외의 사람들은 내가 아니기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속 마음을 알길이 없다. 모든 것을 의심하며 살지 않는 이상 속을 때도 있고 사기를 당할 때도 있는 것처럼 우리는 초능력자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진실은 사실이 인정이 되면 알 수 있지만, 진심은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비가 투둑투둑 떨어지는 날이었다. 밤부터 오기 시작한 비는 조금씩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그는 이태원 근처 빵 가게에 나를 데리고 들어가 먹고 싶은 케이크를 고르라고 했다. 진열장을 훑어보다 눈에 띈 복숭아 케이크. 단숨에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렇게 내 손에 들린 케이크 상자는 그와 나를 따라 차에 올랐고 함께 대학로로 향했다. 케이크를 구매한 이유가 궁금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물어보자 그는 백일이라고 했다. 내일이.     


 서른일곱이란 나이가 무색하다. 그는 핸드폰 바탕화면에 우리가 몇 일 되었는지 기록할 수 있는 앱을 깔아 놓았다. 관계의 날짜를 여자인 나보다 그가 더 잘 챙긴다. 생일만 챙겨주면 기념일은 안 챙겨줘도 된다 했었는데. 그래도 챙겨준다. 기념일. 우리 꼭 이십 대 초반의 풋풋한 연애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를 따라 내 나이도 무색해졌다.     


 밤이 되어 대학로에 도착했다. 떨어지는 비 사이로 달려가 맥주 가게로 들어섰다. 세계 맥주 가게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듯 맥주병이 바닥 모서리부터 벽을 따라 진열되어 있었고, 맥주 브랜드 마크가 있는 색 색깔의 액자들이 걸려있었다. 어둠 속 잔잔한 조명 아래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손님이 많지 않아, 비오는 창가의 명당자리가 남아있었다. 아니, 1층에는 사람이 있었고 2층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나를 위해 가게를 빌렸다며 흔하지만, 웃음 짓게 하는 농담을 던졌다. 월넛색의 나뭇결무늬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가 케이크 상자를 올려놓는다. 꺼내지는 않는다. 케이크는 언제 꺼내냐는 내 물음에 그의 손이 케이크를 꺼낸다. 촛불을 켜자고 하니 그는 안된다고 했다.      


 “아직, 12시 안지났어.”     


 백일은 내일. 그는 내일이 되기 바로 전에 촛불을 켜려고 했다. 난 그냥 기념만 하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는 시간까지 챙긴다. 12시가 1분도 안 남았을 때 그가 초에 불을 붙였다. 분주하게 지나간 초들이 모여 12시가 되었다. 나는 촛불을 불었다.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렌즈에 담아내던 그.     


 “나 이런 거 처음 해봐.”

 “나도.”     


 백일이라고 기념을 한다는 자체가 처음이라며 부끄러워했다. 나도 그렇다니 그는 내 말이 거짓말 같다고 했다. 진짠데. 우리는 둘 다 처음으로 기념일이란 것을 챙겼나 보다. 자정 12시 2분. 그 사람이 챙겨준 날짜 위에 있었다. 창밖은 불투명해도 그는 선명했다. 그가 마련하고 내가 고른 케이크를 먹었다. 케이크 보다 그의 진실된 마음이 더 달았다. 남자 서른일곱, 이러기 쉽지 않다. 사람의 진심은 바라지 않아도 전하는 마음에서 번져온다. 바라지 않아도 해주고 싶은 그 마음에서.     


 백일이 지나고, 이백일 때도 그는 케이크와 초를 준비했다. 삼백일 때도 준비했다. 생일 때도 그랬다. 기념일만 되면 케이크와 초를 준비해준 그 사람. 그러고 보니 신기하다. 케이크와 초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가 내 옆에 있었다. 어떤 날이든. 그와 함께한 행복한 날이 많았구나 하고 생각해 본다.               



상대의 진심을 알고 싶은가요 ? 그렇다면 연인이 나에게 해주는 모습을 관찰해보세요. 말보다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 사소한 모습 하나하나에서 알 수 있을 거에요.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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