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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May 04. 2019

prologue

연애 에세이 : 나 자신이 소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prologue

나 자신이 소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미술 심리에서는 나무를 자아라 부른다. 투사검사 중에 H.T.P 검사법이 있는데 이 이름은 home, tree, people을 줄여서 지어진 것이다. 그중의 tree test는 나무를 그려 내담자가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검사이다. 존 벅(John Buck)에 의해 개발된 투사검사로 연구에 의해 검증받아 자리 잡은 검사겠지만 개인적으로 투사검사에 나무가 이용되었다는 것은 나무의 삶이 사람의 삶과 비슷해서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과학자이자 ‘랩걸’의 저자 호프 자런(Hope Jahren)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나무를 포함한 모든 식물의 첫 뿌리가 터를 잡게 되는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첫 뿌리의 첫 임무는 닻을 내리는 것이다. 닻을 내려 떡잎을 한 곳에 고정 시키는 순간부터 그때까지 누리던 수동적인 이동 생활에 영원히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일단 첫 뿌리를 뻗고 나면 그 식물은 덜 추운 곳으로, 덜 건조한 곳으로, 덜 위험한 곳으로 옮길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 서리와 가뭄과 굶주린 입이 찾아와도 그로부터 도망갈 가능성이 없이 모든 것을 직면해야 한다.’

.......(중략)

 ‘뿌리가 필요한 것을 찾게 되면 부피가 커져서 주근이라고 부르는 곧은 뿌리로 자란다.

.......(중략)

 주근은 곁뿌리를 내보내 옆에 서 있는 다른 식물들의 뿌리와 얽혀서 위험 신호를 주고받는다.’     


 그녀가 묘사한 글을 인용하면 나무의 첫 뿌리가 닻을 내리는 과정은 인간이 탄생해서 성장하는 과정과 비슷해 보인다. 사람은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 되어져 태어난다. 씨앗이 자신의 뿌리를 내릴 장소를 찾아 이동하듯이 정자와 난소가 만나 태아를 잉태하듯이 말이다. 태어난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 아기는 스스로 자신의 환경을 바꿀 수 없다.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뿌리가 모든 환경에 직면해 살아남아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라난 아이는 성인이 되고 성인이 되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이것은 마치 주근으로 자라나기 위해 100만분의 1도 되지 않는 도박을 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기 위해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의 자아에 고뇌하고 삶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들. 거기에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주근이 곁뿌리를 내보내 다른 식물들과 위험 신호를 주고받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나무는 인간과 참 많이 닮았다.     


 내가 주근을 내리기 위해 해야 했던 많은 경험 중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세 가지는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과 미술 심리를 배운 것과 그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미술 심리를 배우게 되었고 미술 심리를 배웠기 때문에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결혼에 대해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결혼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나를 결혼하게 만든 사람.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준 사람. 그로 인해 알게 되고 느끼게 된 것들이 많다. 주변에서 결혼 생활은 어떤지 결혼하니 좋은지 묻는다. 사실 연애 때랑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살기 때문에 같이 맞춰가야 할 것들이 조금 늘었다는 것 정도.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피곤할 때도 있다. 우린 평범하게 살아간다.      


 미술 심리상담을 하면서 사랑에 힘들어하는 내담자들을 꽤 많이 만나왔다. “이 남자 정말 왜 이럴까요?” “선생님 이럴 땐 어떻게 해줘야 해요?”,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헤어져야 할까요?”와 같은 질문들. 이런 질문을 하는 내담자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자기중심이 없다는 것. 시선은 오로지 남자만을 향하고 있었고 그녀의 세상은 남자의 상태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뿌리가 깊지 못해 흔들리는 나무와 같았다. 나무와 사람의 성장에 다른 점이 있다면, 나무는 결정된 상태로 자라지만 사람은 어떻게 자라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계기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깨달을 계기. 그것이 크고 작은 건 중요하지 않다. 단지 전환점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그 전환점은 자신이 만들어가야 한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온다고 하지 않던가. 과거, 나도 그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상처에 흔들리지 않으려 무던히도 견뎌냈다. 그런 상처에 익숙해질 즈음 ‘그’라는 어감만큼의 거리를 둔 남자를 만났다. 나는 ‘그’라는 남자와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결국 결혼까지 했다. 서로 간의 오해, 충돌, 용서, 이해가 뒤섞여가는 중에 우리는 조금씩 받아들였고 이것이 인생의 성숙이란 것을 최근에야 조금씩 느끼고 있다.   


  앞으로의 쓰게 될 글에는 내가 그 사람을 만나기 직전부터 결혼을 한 후까지 순간순간 깨닫고 성장해온 장면들을 담았다. 글을 읽음으로써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가능하다면 그 생각으로 자신을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기를.     

 사람의 인생에서 사랑이란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다. 사랑에는 답이 없다. 나의 경험과 감정들이 미세하게라도 사랑의 관계에 힘들어하는 모든이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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