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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May 04. 2019

01 : 그런아이

연애 에세이 : 불안함에 머뭇거리던 시절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01 : 그런 아이           

연애 에세이 : 불안함에 머뭇거리던 시절



     

 사각사각. 연필이 그어지는 소리만이 유유히 흐르는 공간. 소복이 쌓인 눈처럼 하얀 도화지 위에 여러 방향의 선들이 교차한다. 손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눈동자와 빨려 들어갈 듯 한 곳만 응시하는 무심한 표정. 따뜻한 공기의 무게가 아이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듯 스쳐 내려간다. 아이는 무엇도 느끼지 않는다. 도화지 위 그어지는 선들 이외엔 무엇도. 그리는 것이 세상에 전부인 아이. 그런 아이가 있었다.


 모든 것을 표현해주는 그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음이 어떤지 입술을 다문 채 그저 그리는 것만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시선도 거들어진다. 시선들이 흩어지면 그들만의 방식으로 해석되어 가슴 깊이 새겨지겠지. 나를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무언의 길.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받아내는 가장 정적인 예술. 그 끝없이 무한한 창조 작업에 나는 늘 매료된다.      


 미술을 전공하면 먹고살기 힘들 거란 생각들을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실제로 그렇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직장을 다닌다 해도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생활비와 전시회 비용, 재료비를 치르고 나면 계좌잔고는 깨끗하게 빈다. 거기에 그림 그릴 시간까지 없다. 늦은 새벽에서야 잠이 들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축 늘어진 몸을 겨우 일으켜 아침을 맞이한다. 이런 현실이란 굴레는 막막하기만 했고, 갑갑함이 꾸역꾸역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삼켜왔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행복한 사람이니까.     


 미술은 나의 일부이다. 신체의 일부분 인생의 일부분. 동반자, 반려자와 같은. 심지어 중학교 1학년 때 엄마가 미술학원에 보내주지 않자 미술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러기에 그림으로 돈을 벌어야 된다는 생각을 못 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일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돈이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기도 했고 회화를 선택하는 길은 생계가 어려워진다는 엄마의 말에 발목을 잡혔을 수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회사라는 조직에는 속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간 회사를 다녀보긴 했지만,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일을 찾아다녔다.     


 돌고 돌아왔다. 그림으로 오는 길. 8년을 방황했다. 한번 어긋난 길을 돌아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그동안에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만 매달려 있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는 나의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꿈을 안고 달려왔다. 대학 이후 8년이 지나서야 다시 연필을 들었고 붓을 들었다. 드디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로 뉴욕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여할 기회도 얻었고 서울에서 몇 번의 그룹 전시회도 열었다. 그러나 전시는 사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먹고도 살아야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시작한 것이 미술 심리였다.      


 8년의 방황 끝에 만난 미술 심리. 상담사 일을 시작하고 일반인 대상으로 개방한 미술 심리상담 워크숍이 있던 날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애초에 작게 시작하려 했던 것이 꾸준한 강의로 참가자들의 긍정적인 입소문을 타면서 일이 커져 버렸고, 일반인이 아닌 직장인 대상의 워크숍을 연결해주는 에이전시와 연이 닿았다.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은 후 워크숍 검증을 위해 첫 시연회를 열었다. 참가자는 여자 넷, 남자 둘.  


 거기서 그 사람을 처음 만났다.            




돌고 돌아 오더라도 본인의 길을 어떻게 갈 것인가는 스스로의 선택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이 이끄는대로 올바른 선택을 하면 좋겠습니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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