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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May 05. 2019

03 : 흘려보낸

연애 에세이 : 그의 페로몬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흘려보낸             



  

 용기는 어디서 나오고 이끌림은 언제 시작되는지. 잠잠했던 호수에 물결이 일렁이는 순간은 언제부터인지. 순식간에 찾아온 감정은 주체하지 못해 흘리기 마련이다.     


 시연회가 끝나면 수강생들은 강사에게 피드백을 준다. 피드백으로 이어진 자리는 즐거움의 흐름을 타고 한바탕 맥주파티로 이어졌다. 적당히 술이 오르자 자연스레 이성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고, 내 차례가 되어 질문이 들어왔지만 지난 연애의 흑역사는 얘기 하고 싶지 않았다. 깨져버린 기억의 파편들을 적당히 얼버무려대니 뜻하지 않게 소개팅 제안을 받았다.


 “그런 남자는 만나지 말고, 소개팅시켜 줄게요. 이상형이 뭐에요?”

 “음…, 이상형은 크게 없는데 키가 너무 크지 않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경험상 나는 처음 만난 상대가 키가 너무 크거나 건장하면 위화감을 느낀다. 원래 말수가 적어 너무 조용한 사람도 힘들다. 거기에 나이까지 많으면 최악이다. 성숙하기까지 하니까. 나의 정신은 아직 철이 없는데.     


 “그럼 나는 안 되겠네.”     


 불쑥 튀어나온 말이라 주워 담기엔 어쩔 줄 몰랐나 보다. 말을 뱉은 당사자는 민망한 듯 자신의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옆에 앉아 있던 에이전시 대표님은 그 말의 의미가 먼지가 되어 흩어질세라 서두르듯 주워 담았다. 그는 슬며시 일어나더니 천천히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이 차이 많은 게 왜 싫어요?”

 “저와 정신연령이 맞았으면 좋겠어요.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성숙해서 제가 맞추기 힘들어요.”

질문과 답변보다 느리게 걷던 그는 문을 열며 말했다.

 “난 정신연령이 좀 어리지?”     


 말은 남겨지고 문은 닫혔다. 그는 나에게 관심을 주체없이 흘려보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했다. 처음엔 이 남자가 왜 이럴까 싶기도 했다. 딱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어떤 모습이 좋게 보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흘려보낸 관심은 이미 내 발밑까지 와있었다. 자리가 마무리되어 테이블을 정리했다. 다 함께 불을 끄고, 문을 닫고, 계단을 밟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대표님은 아까 주워 담은 말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그에게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라고 했다.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민폐를 끼칠 수 없었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그러겠다고 하는 그에게 거리가 멀어서 힘들 거라고 하였으나 전혀 문제 되어 보이지 않았다. 결국엔 걱정과 미안함을 안고 그의 차에 올랐다.     


 그렇게 처음으로 그 사람 옆에 앉았다. 그가 흘린 마음이 데려온 옆자리였다. 후에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민망함에 황급히 화장실로 들어갔고 창피함에 고개를 들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단지 나에게서 노랑을 보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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