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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Aug 22. 2023

강요된 행복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구는 맛있는 걸 먹어야 행복하고 누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야 행복하고 누구는 빚만 없어도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요즘 전혀 행복하지 않다. 


  남들이 보기에 요즘의 나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다. 그들이 보기에 내가 가진 걱정이라고는 이번주 주말에는 뭐 하고 놀지, 오늘 저녁에는 뭘 먹을지 정도고 남는 시간에는 클라이밍도 다니고 사람들과 술도 먹고 헬스장에서 PT도 받고 있으며 주말에는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며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내 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뭐든 열심히 하며 달려왔고, 그 덕분에 나름 괜찮은 성과들을 이루어 내었다. 주변 사람들도 어려운 환경에서 너무 잘 자라주었다는 칭찬도 많이 해주었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는 이루어낸 성과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요즘에 와서는 더 좋은 성과를 내거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꼭두각시 서커스"라는 만화에서 주인공 마사루가 말하길, "진화의 반대는 퇴화가 아니라 무변화가 아닐까?"라고 했는데, 요즘은 내가 바로 딱 그 예시가 아닌가 싶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너무나도 루틴한 삶을 살며 아무런 변화가 없다. 회사에서도 더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더욱이 주변 사람들도 이제 각자 가정을 꾸리고 그들의 삶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만나기는커녕 연락 한번 하기조차 쉽지가 않기에 외로움까지 더해져 영 마음이 좋지가 않은 요즘이다.



  하지만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이런 얘기를 꺼내기조차 쉽지도 않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조금이라도 꺼낼라치면 '너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는 얘기가 돌아온다. 그들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회사에서 치이고 육아에 치이고 배우자와도 싸우고 양쪽 집안의 갈등도 중재해야 하는 등 그들의 삶이 다사다난한 상태인 게 나에게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거의 완벽하게 자유를 누리며 걱정거리나 근심거리가 별로 없어 보이는 나의 삶을 동경하고 부러워한다. 그래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나도 그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건, 당신들이 싱글의 삶을 당신들이 결혼하기 이전의 삶으로만 기억해서다. 당신들 인생의 절정기인 바로 그때로만 기억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처럼 나이 든 싱글은 그때처럼 화려하게 살 수도 없고 늘 외로우며 극히 미미한 변화만을 겪으며 루틴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말 그대로 이건 살아 있기만 한 상태라,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행복하지 않다."라고. 하지만 그들은 이제 이런 얘기를 들으면 위로하는 척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가 지금 누리는 행복을 너무 자연스럽게 누리기 때문에 못 느낄 뿐, 나중에 가서야 네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나는 나날이 외로워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만나기가 더 꺼려진다. 만나서 술이라도 한잔 할라치면 나도 모르게 저런 응어리들이 밖으로 튀어나오곤 하는데, 이젠 그런 응어리들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도 그저 적당히 좋은 얘기만 하고 그들의 자식 자랑을 듣고 요즘 취미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오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마음속에 쌓이는 것만 늘어가는 것 같아서 그냥 발길을 끊었다. 



  그러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은데, 왜 그들은 나에게 행복을 강요할까.



  이동진 평론가가 말하길 행복은 반복적이어야 한다 했다. 나도 이전부터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그 말에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여행은 일시적인 쾌락일 뿐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행복은 빈도가 중요하다고. 그런 점에서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 루틴한 일상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니까 말이다. 



  나도 지금 내 처지나 환경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러니 이제 숨이 턱 막히도록 행복을 강요당하는 건 그만하고 싶다. 그리고 겪어보니 이제는 알겠다. '그래도 너는 행복하잖아', '그래도 너는 남는 게 있잖아'라며 상대의 고민과 생각을 한마디로 축약해 버리는 것이 얼마나 상대를 숨 막히게 하는지를. 그리고 그 말은 상대를 알려하지 않고 깊게 들여다보지 않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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