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조금이나마 엄마의 교육 방침을 얘기한 적이 있다. 자식에게 헌신적이긴 하지만 칭찬에 인색하고 성과를 중요시 여기며 목표를 달성해야만 보상이 주어지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지적질을 하는 그런 교육방침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의 자존감을 바닥부터 갉아먹는 참 좋지 않은 교육 방침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나와 동생은 어릴 때부터 자존감도 낮고 늘 열등감에 시달리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다 크고 나서야 엄마의 교육방침이 매우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지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 중이긴 하다. 그럼에도 잘 되지는 않는 것 같지만.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엄마의 교육 방침은 잘못된 것이 틀림없으나, 엄마도 나와 동생을 잘못 키우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 텐데'라는. 그렇다면 대체 왜 엄마는 그런 식으로 우리를 키운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어릴 적에 엄마의 책장에서 본 '우리 아이 착하고 똑똑하게 키우는 법'이라는 책에 그렇게 하라고 나온 것일까? 궁금하긴 하지만 그 진위여부는 이제와서는 알 수가 없다. 그저 그 시대는 그렇게 아이를 키우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던 시대였으니 그 책에 그렇게 쓰여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엄마 스스로 생각한 방법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잘못된 교육방침에 박차를 가한 건 아마 내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와 동생은 무려 8살이나 차이가 난다. 따라서 엄마는 나를 통해 엄마의 교육 방침에 대해 충분히 검증하고 검토할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검증과 검토가 제대로 됐다면 아마 교육방침을 더 좋게 수정해서 동생에게 적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엄마의 교육방침을 너무 잘 따라버렸고, 엄마는 본인의 교육방침이 옳다고 더더욱 확신을 가지고 동생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와 같은 행운은 두 번 일어나지 않았고, 동생은 엄마의 교육방침을 잘 따라가기는커녕 많이 엇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미 성공을 한번 맛본 엄마는 본인의 교육방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넌 잘했는데, 쟤는 애가 모자라서 그런가 잘 안돼"라며 동생을 탓했다. 그리고 구태여 묻지는 않지만 지금도 엄마가 동생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저런 마음가짐이 여전히 묻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한때는 그런 엄마를 무던히도 원망했다. 불안장애, 수면장애, 우울증으로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휴직했을 때에는 특히나 더 원망스러웠다. 사랑과 애정으로 조금만 더 보살펴 주었더라면 나도 동생도 좀 더 마음이 튼튼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으니 결국에는 체념하고 그 상태를 극복하는데 힘썼고 그렇게 어찌어찌 마음을 추스르고 직장에 복직했다. 그리고 아쉬울지언정 원망하지는 말아야겠다며 스스로를 타이르며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엄마와 같은 말투 엄마와 같은 행동을 하며 사람들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칭찬에 매우 인색하고, 사람들의 단점을 잘 찾아내어 지적하며, 잘 웃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다는 것을. 그러자 굉장히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평생 엄마의 교육방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해왔으면서 나도 어느샌가 엄마와 같은 사람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학교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신 적이 있다. 자신의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많이 때리셨다고. 그런데 어느 날 집에 갔을 때 아버지가 울고 계셨다 했다. 왜 우시냐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때리는 것이 너무 싫었는데 정신이 들고 보니 아버지도 어머니를 때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어서 슬프다고 하셨다 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아버지가 본인도 모르게 할아버지를 닮은 것을 보고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죽어도 아버지처럼 아내를 때리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중이라고 했다. 이처럼 사람은 본인도 모르게 부모를 닮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것이었다.
내가 엄마를 닮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자, 내가 만약 자식을 낳으면 불행이 대물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에도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 사실을 깨달으니 더더욱 자식을 낳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스로를 잘 경계하고 잘 행동하면 그러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그럴 자신이 없다. 그러니 최소한 불행의 대물림은 여기서 끊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태어나지도 않은 내 미래의 자식을 위하는 길이 아닐까 싶어서.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나에게 그런 교육을 한 것도 그리고 나를 이렇게 만든 것도 당연히 당신의 자식인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심지어 종종 "너는 화목한 가정의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처갓집에서 이쁨 받으며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것도 당신 스스로가 온전히 잘했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동안은 이 불행의 대물림에 대해 나는 온전히 책임이 엄마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엄마도 이러한 불행을 물려주고 싶어서 물려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 너무 서글퍼졌다. 심지어 그 모든 말과 행동들이 사랑으로 가득 차서 한 것들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불행의 대물림이 정말로 서글픈 건
그 과정이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는 것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