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 순우리말로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함
오지랖이 넓다 : 오지랖이 넓으면 그 안의 옷을 다 가리니 남들 앞에 나서서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참견하며 따지는 모양새가 이와 닮아서 나온 말
최근에 클라이밍을 하다가 잘못 착지하는 바람에 발목을 접질렸다. 바로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으니, 뼈와 인대에는 이상이 없지만 힘줄 쪽에 많은 충격이 갔다고 했다. 그래서 약을 받고 반깁스를 한 다음 다리를 절며 집으로 겨우 돌아왔다. 그게 벌써 2주 전 일이다.
2주간 다리에 깁스를 한 상태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꽤 많이 힘들었다.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출구 쪽으로 나가야 할 때는 저 멀리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횡단보도를 몇 개 건너가야만 했다. 가끔은 아무 이유도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모두 정지해 놓은 역들도 있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계단을 하나하나 천천히 오르내려야 했다. 집에서 역으로 향할 때는 내리막길이라 넘어지지 않도록 한발 한발 조심스레 걸어야만 했는데, 깁스 때문에 두 발의 높이가 맞지 않아서 조금만 걸으면 허리가 아파오곤 했다.
하지만 정말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이런 것들이 아니라, 인류애가 사라질 정도로 무정하고 무례한 사람들이었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본 직장동료들은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 주거나 도와주지 않아요?"라고 물어보곤 했다. 그러면 나는 "밀지나 않으면 다행이게요."라고 대답했다.
아침과 저녁 출퇴근길에는 사람들이 워낙 북적거리다 보니 자리가 남아있는 곳이란 있을 수 없었다.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옆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내 다리를 볼 각도도 안되었고, 각자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느라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도 사람들이 내 다리를 보고 자리를 비켜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지하철 한쪽 구석에 서서 봉을 붙잡고 되도록 다친 다리가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안쪽으로 향하고선 서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워낙 많이 밀집해있기도 하고 내 동작이 자유롭지 못해서 발을 밟히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멀쩡한쪽도 멀쩡하지 않은 쪽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밟혔다. 하지만 발을 밟은 사람들 중에 사과하는 사람은 체감상 10%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러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아프다는 어필을 해봐도 사과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사람의 발을 밟으면 "죄송합니다."라고 간단하게나마 사과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시적으로 그날만 그런 것이라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 글을 쓰는 오늘조차도 내 발을 밟은 사람들 중에 사과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세상이 참 각박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를 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세상이 되었나 싶어서 참으로 무정하고 차가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말하던 '인류애가 사라진다.'라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소에 낯선 사람이 말을 거는 것을 극히 꺼려왔던 나였지만, 다리를 다치고 나니 그렇게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의 존재가 고마웠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힘겹게 집으로 향하던 도중에, 내 뒤에서 산책 중이시던 아주머니 두 분 중 한 분께서 "아이고, 어쩌다 다리가 그렇게 됐을까~"하시길래 뒤를 돌아 웃어 보이며 "운동하다가 그렇게 됐어요." 하니, 아주머니께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아이고 좀 살살하지 그랬어~"라고 말하실 때나, 출근해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사무실에 들어서자, 청소해 주시는 분께서 나를 보며 "아이고, 그 다리를 해가지고 출근을 했네~"라고 말하실 때 조금은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어제는 지하철에 타자마자 누군가 내 옷을 잡아 끄는 것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할머니께서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보였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할머니께 귀를 기울이자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아픈 다리를 해가지고 어떻게 출근을 해~"라며 나를 잡아 끄셨다. 그리곤 노약자석에 앉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정작 노약자석은 가득 차 있어서 '어디에 앉으라는 거지.'라며 어리둥절한 나에게 "이 아주머니가 비켜준다고 하셨어."라고 하셨고, 정말로 그 아주머니는 자리를 내어 주셨다. 이렇게까지 앉고 싶지 않았던 나는 민망함에 한사코 거절하려 했으나, 이미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탑승해 있어서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가는 주변에 민폐일 것 같았기에 부득이 아주머니께서 내어준 자리에 앉았고, 덕분에 조금은 편하게 출근을 할 수 있었다.
가끔 엄마와 함께 다니다 보면 엄마도 이런 오지랖을 부릴 때가 많았다. 괜히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엄마의 모습이 부끄럽고 창피했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쓸데없는 오지랖 좀!"이라며 엄마를 말리곤 했다. 하지만 요 근래 내가 다치고 보니 그런 오지랖 또한 때로는 일종의 관심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그런 오지랖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가끔은 그런 오지랖을 좀 부려봐야겠다. …너무 아저씨 같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