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참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다. 이성 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사랑,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 등. 그런데 이런 사랑들은 거저 주고 거저 주어지는 것일까? 내 대답은 '아닐 것 같은데요.'다.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설명하려면 조금은 서글픈 과거 얘기들을 꺼내야 할 듯하다.
세상의 여러 가지 사랑들 중에 그래도 비교적 거저 받을 수 있는 사랑을 꼽으라면 아마 사람들은 부모에게 받는 내리사랑을 꼽을 것이다. 연인에게 사랑받기 위해선 나를 가꾸고 좋은 모습을 보이고 상대에게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부모에게서 받는 사랑은 절대로 거저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칭찬을 듣거나 혹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선 무언가를 반드시 성취해야만 했다. 애교 같은 걸로 이쁨 받는 재주는 없는 나였기에,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아빠로부터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예를 들어 집안에서 과자를 먹고 치우지 않았다거나 학교를 다녀와서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두었다던가 하면 어김없이 매를 맞기 십상이었다. 동네 아이들과 놀더라도 너는 이제 어린애도 아닌데 왜 또래와 놀지 않고 너보다 어린애들과 노냐며 혼나기도 하고 목욕탕에서 부를 때 바로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도, 원인이 뭐가 됐든 울었다는 이유로도 매를 맞았다. 나중에는 차라리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공부를 잘 못한다고 혼을 내는 게 차라리 맞는 입장에선 더 납득이 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다 크고 나서 혼났던 일들을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아빠는 훈육이 목적이었다기보단, 그저 자기 생활에 있어서 거슬리는 짓을 하지 못하도록 때렸던 게 아닌가 싶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많이 헌신적인 사람이었지만 엄마의 훈육 방식도 아빠에 비해 그렇게 썩 좋은 건 아니었다. 칭찬이라 함은 시험에서 백점 맞았을 때 잠시 잠깐동안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목표한 점수를 달성하지 못한 나에게는 칭찬보다는 질책이 이어졌다. 수학경시대회에서 한 문제를 틀려서 은상을 받아왔을 때에도 엄마는 금상이 아니라며 나를 질책했었다. 그런 엄마에게 가끔 투덜거리면, 어김없이 엄마는 손을 들어 내 입을 때렸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느끼기에 나는 존재 자체가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느껴왔고, 내 가치는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공부에 집착했다. 정작 공부는 성미에 꽤나 안 맞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이나 미술, 음악보다는 공부에 치중해야만 했다. 덕분에 일찍부터 요즘 말하는 번아웃을 겪기도 하고 회복했다가 다시 번아웃이 오는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여전히 엄마는 나와 동생을 볼 때면 무언가를 지적하며 대화를 시작한다. 나야 이제는 그러려니 하긴 하지만 동생은 아직도 그럴 때마다 발끈하기 때문에 엄마와 동생이 같이 있으면 매번 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그래서 나에게 사랑은 늘 절대로 거저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늘 나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써왔다. 회사에서 몸과 마음이 다 썩어 들어가더라도 이걸 버티지 못하면 나에게 가치는 없다는 생각에 괴롭고 힘든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버텨왔다. 연인이 나에게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해 주었을 때도 고맙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어떤 식으로든 내가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도 열심히 하고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스스로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가 없었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나는 많이 노력해 왔고, 그런 노력이 아니더라도 나름의 가치를 지닌 사람일 것이며, 그런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머리로 아는 것과 내 마음이 느끼는 것 사이의 간극은 꽤나 좁혀지지가 않는다.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진 나는 지금도 계속해서 부작용을 지금도 계속 겪는 중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왜 나 자체를 사랑해주지 않냐는 것을 볼 때마다 상대에게 "네가 사랑하는 내 모습도 나 자체가 아니라 내가 노력하고 가꿔서 너에게 보여주는 모습인 거야. 그런데 넌 왜 아무 노력도 없이 존재만으로 너 자체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거나, 사랑받을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을 절대로 사랑하지 못하거나, 심하게는 노력 없이 사랑받는 것 같은 사람을 볼 때마다 질투와 시기심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그게 참으로 쉽지는 않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뭐가 맞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선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한 건 맞는 것도 같은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까지 해서 사랑받는다 한들, 내 진실된 내 모습, 나 그 자체가 사랑받는 건 아닐 테니 노력을 굳이 할 필요가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계속해서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요즘이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받는 게,
그리고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는 게
가능은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