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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Sep 12. 2023

밥 한번 먹자 / 언제요?

  우리는 으레 인사말로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곤 한다. 그런데 나는 순진하게도 그런 얘기를 들으면 늘 "언제요?"라고 물어왔다. 나는 빈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니까 상대도 그럴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 질문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조금 강박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만약 밥을 먹자 했으면 그건 진짜로 식사를 같이 하잔 얘기고 언제 한번 커피를 하자 했으면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당신과 함께 커피를 마시겠다는 의미다. 아무리 피곤하고 지쳤더라도 오늘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면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들이 밥 한번 먹자고 하는 게 단순한 인사말일지라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밥을 같이 먹을 의사는 있다.'정도로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건 나만의 착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예전에 비해서 사람들과의 약속이 많이 줄어들었다. 각자 사는 게 바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종 친한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이번주에 술 한잔 어떠냐고 묻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늘 뭔가 다른 일정들이 있는 편이라 약속을 잡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늘 약속이 많은데 그 많은 약속 중에 나와의 약속은 없구나. 혹시 나랑 만나고 싶지 않은 건데 내가 너무 눈치 없이 굴었나?'

  그래서 그 뒤로는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들에게서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이 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먼저 만나자는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갑자기 술이나 한잔 하자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는데, 그 자리에 그들이 나온 걸 본 적도 있다. 이상하게도 내가 연락하면 일정이 꽉 차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럴 때는 또 나올 시간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사실 그전에도 어렴풋이 짐작은 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만나고자 한다면 어지간하면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애써 이런 사실들을 외면하고 모른 척 지내고 싶었는데 막상 그런 모습을 실제로 목격하니 스스로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그 사람들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모임에서 만나 술을 마시고 잘 놀기는 하지만 더 이상은 예전처럼 그들을 대할 수가 없게 되었다. 


  개인적인 연락뿐만 아니라 이제는 모임을 주최하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원래는 친한 친구들끼리 월에 1번 정도는 만나왔었는데 이것도 그냥 손을 놔버리기로 했다. 그랬더니 그 뒤로 다 같이 모이지는 않게 되고 그냥 가까이 사는 친구들끼리만 소소하게 만나는 것으로 바뀌었다. 역시나 다 모여서 놀고 싶은 건 나 혼자 뿐이었나 하는 생각에 이마저도 씁쓸해지며, 구태여 그들을 만나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갔던 지난날의 내가 안쓰러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그런 말들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믿기보다는 그들이 으레 인사말로 쓰는 것처럼 나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도 그렇게 변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아닌가 싶었다. 또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람들과 거리를 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제는 누군가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하면 그냥 웃으며 "그래요."라고 대답하고 내 갈길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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