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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Sep 06. 2023

혼자서도 잘 지내지 못해요.

  나는 요즘 급속도로 늘어난다는 1인 가구다. 약 2년 반 정도 전에 독립해서 지금까지 계속 혼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들 하지만, 가족들하고 살았을 때도 대부분의 집안일은 알아서 스스로 해왔기 때문에 막상 독립해 보니 불편하기는커녕 훨씬 편하기만 하다. 거기에 건조기와 로봇청소기라는 신문물을 들여오니 삶의 질이 그야말로 수직 상승했다.


  독립하면서 큰맘 먹고 인테리어도 진행했다. 예산 부족으로 크게 뜯어고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작은 방 하나는 온전히 취미생활만을 위한 방으로 고쳤다. 전등은 다운라이트와 라인조명으로 설치하고 천장, 벽지는 짙은 회색으로 골랐다. 바닥에는 비슷한 색의 타일카펫으로 깔아놓았다. 인테리어가 끝난 다음에는 작은방에 책장, 만화책장, 술장, 레고장을 넣고 반대편에는 커다란 책상을 놓아 데스크탑을 설치해서 게임용으로 쓰고 있다.

  평일에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거나 클라이밍 수업 또는 PT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말에는 작은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고, 나가서 옷을 사기도 하며, 코인노래방에 가서 좋아하는 노래들을 부르곤 한다. 때로는 위스키를 한잔 즐기거나 맛있는 안주를 만들어서 와인 한 병을 비우기도 한다. 

  

  이런 나를 보며 사람들은 '혼자서도 잘 지낸다.', '정말 부러운 인생이다.', '심심할 틈이 없겠다.'라고 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나 일뿐이고, 사실은 딱히 그렇지 않다.



  지금의 나는 매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자유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결혼을 안 하고 자유를 택한 게 아니라 결혼을 못했기 때문에 주어진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꾸 내가 선택한 자유라고들 말한다. 

  그리고 생각만큼 자유롭지도 않다. 혼자서는 멋진 레스토랑을 간다거나 소문난 맛집을 간다거나 예쁜 디저트 가게를 가는 등의 데이트 코스 느낌의 장소는 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교외 어딘가로 바람을 쐬러 나가는 것도 내 옵션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결혼한 사람들이나 가정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더 자유로운 부분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워낙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서 자꾸 간과하는 부분도 있다. 내가 외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내향형 인간이라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하고 일주일에 최소 하루는 온전히 집에서 쉬어야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누구든 만날 수 있는 건데 네가 안 만나는 거잖아?"라고들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아무나 만난다 한들 진정 외로움이 해소될까? 그냥 일시적으로 잠깐 외로움을 달래는 것일 뿐 그게 근본적인 해결도 되지 않을뿐더러 그러기 위해선 내 에너지도 많이 소비해야 하기 대문에 아니라고 본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것이지 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제 각자의 가정이 있어서 쉽게 만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니 외로움을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그들 자신의 문제만을 신경 쓰기도 바쁠 테니 나 같은 사람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너는 혼자 잘 살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아무리 나라도 마음에 스크래치 정도는 나는 법이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속마음들을 글로 정리하고 다듬어서 표현하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라도 꺼내지 않으면 내 안에서 썩어갈 테니까. 그래서인가 오늘따라 유독 얘기가 두서없이 진행된 듯하니, 신세한탄은 그만하고 내가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잘 지내야 하니까 잘 지내려고 발버둥 치는 거예요.
혼자서 잘 지내는 게 아니라구요.



아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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