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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Sep 04. 2023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어떤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는 여러 가지 척도가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의 능력이나 그동안의 행실, 성품, 주변의 평판 등. 그중에 하나로 나는 책임감을 꼽는다. 자기가 맡은, 혹은 주어진 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갖고 어떻게 완수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신뢰해도 될는지 대강의 기준이 세워진다. 그리고 그 뒤로도 그 사람은 그 기준을 벗어나는 일이 잘 없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책임감에 대해 깊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일이 잘 없었으나, 최근에 이를 생각해 볼 만한 두 가지 사건이 생겼다.


  최근에 나는 두 종류의 운동을 병행해서 하는 중이다. 하나는 PT, 하나는 클라이밍이다. 그중 하나인 PT는 1년 4개월 정도 계속해서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2주 전쯤, 트레이너 선생님이 수업 전에 잠시 얘기할 게 있다고 하셨다.

  "제호님, 죄송스럽게도 제가 몇 달 내에 다른 센터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왜요??"

  "여기서 저랑 같이 일 하시던 다른 쌤들 아시죠?"

  "아 네, 민XX선생님이랑 여자쌤이요."

  "네, 원래 그분들 하고 여기를 같이 운영하다가 그분들이 다른 샵을 인수해서 그쪽에 가있고 저는 여기 남아서 계속 운영하기로 했었는데, 그쪽에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옮기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언제 옮기시는 건가요?"

  "당장 옮기는 건 아니고 이제 여기를 매물로 내놓을 거라 미리 말씀드린 거고요, 당장에 팔리지는 않을 테니까 여기가 팔릴 때까지는 계속 여기 있을 겁니다."

  "아…. 그럼 수업은요?"

  "수업은 걱정 마세요. 옵션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지금처럼 몇 개월치씩 한 번에 등록하셔도 되구요, 아니면 한 달씩 등록하셔도 됩니다. 당연히 한 달씩 등록하셔도 몇 개월치를 한 번에 등록하실 때처럼 계속 할인해 드릴 거예요. 그리고 수업 도중에 여기가 팔리게 될 수도 있는데, 계약 조건에 여기가 팔리더라도 제가 일주일에 몇 번씩 여기 와서 프리랜서로 회원분들 수업은 다 끝내고 가는 걸 걸어놨기 때문에, 수업은 반드시 다 해드릴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마음 같아서는 제호님도 제가 옮기는 곳으로 같이 옮기시면 좋겠지만, 거기가 차 없이 가기에는 위치가 애매한 곳이라서 아쉽네요."

  이렇게 대화를 하고 나니, 1년 넘게 같이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게 마음속으로 많이 아쉬웠지만, 미리 말씀을 주신 게 참 고마웠고 앞으로 남은 시간 더 열심히 수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저번 클라이밍 수업 때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일이 있었다.

  "공지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공지사항인가요?"

  "제가 다음 주부터는 사당점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다른 쌤이 수업을 해주실 거예요."

  "갑자기 왜 옮기시는 건가요?"

  "강남점보다 사당점이 출퇴근이 가까워서 옮기게 됐습니다."

  이게 대화의 끝이었다. 대화가 끝나자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퇴근 때문에 옮길 예정이었으면 미리 귀띔을 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냥 갑자기 통보하고 즉각 옮기려는 것을 보니 참 책임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같은 프랜차이즈의 다른 지점일 뿐이라 하려고만 한다면 수업이 있는 날만이라도 강남점에 출근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음에도 그러한 옵션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보였다. 거기에 더해, 지금 수업은 상급자 과정으로, 초급자 과정에서 지금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고 그대로 이어서 같은 선생님께 더 배우려고 수강을 한 사람들인데도 수강생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날 수업을 진행하는 내내 수업이 귀에 들어오기보다는, '참 무책임한 사람인 걸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네. 이 사람한테 더 배우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어떤 일이든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얼마나 내가 그 일에 책임감을 갖고 임하는지에 따라 같은 일이나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그에 대한 대처가 달라지고, 그 대처에 따라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진다는 걸 최근 저 두 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혹여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비치지 않도록, 조금 더 신뢰를 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늘 자기 일에 책임감을 갖고 일하라고 하면, 예전에는 '받은 만큼만 하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었지만 요새는 '어른들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네'라는 생각이 든다.



왕관의 무게는 책임감의 무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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