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웹툰을 보는데 작가가 딸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장면이 나왔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딸이 작가에게 뭔가 요구를 하거나 떼를 썼었는지, 작가가 딸을 달래고 딸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장면이었다. 그러자 같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는데, 크면 아주 지가 혼자 큰 줄 알지."라고 하셨다. 이 편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에 남지는 않았지만 그 할머니의 저 한마디가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서 종종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취직을 했을 무렵부터 종종 사람들이 엄마에게 아들을 참 잘 키우셨다며 칭찬을 해주시는 것을 보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잘 키우긴 뭘. 얘는 어릴 때부터 지가 알아서 다 했어."라고 하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하긴, 내가 좀 손이 별로 안 가는 아이였지.'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삶을 돌이켜보니 나는 혼자 잘 크기는커녕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호의 속에서 이만큼 자라왔고, 그 덕분에 그나마 한 사람 몫을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우리 엄마가 내 양육에 큰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돈을 벌고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학부모 총회에 참석 못하시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고, 학원도 그냥 친구들이 다니는 종합반 하나만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 1학년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무려 6년 동안 계속해서 같은 학원만을 다녔다. 고3이 되어서야 친한 친구들의 어머니들과 얘기해서 친구들과 같은 영어학원 하나만을 더 보내주실 뿐이었다. 대학 입시가 어떤지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냥 한 친구가 수시를 넣은 학교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서 원서를 냈고 그렇게 대학에 진학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다가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을 해야 하는 나는 남들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학점을 올리고 토익을 공부했다. 어학연수건 교환학생이건 유학이건 그런 건 나와는 먼 일처럼 보였다. 이번에도 나는 교수님이 툭 하고 던진 "우리 과 애들이 XX, OO을 많이 쓰더라."라는 한마디에 아무 생각 없이 입사지원서를 냈고, 그중 하나에 운이 좋게 합격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친구들은 중학생 때부터 좋다고 소문이 난 학원들을 옮겨 다녔고, 부족한 과목이 있으면 그 과목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을 추가로 다녔다. 고3 때는 어머니들이 입시설명회란 설명회는 다 다니면서 정보를 긁어모아 오셨고 친구들은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원서들을 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친구들은 어학연수다 교환학생이다 뭐다 꽤나 바빠 보였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런 것들의 중요성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외국에 갔다 온다 하면 그저 '돈 많이 들 텐데.' 하는 생각만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커오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나를 스스로 다 알아서 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거기에는 엄마의 말버릇인 "내가 외고니 과학고니 그런 것도 모르고 입시설명회가 뭔지도 몰라서 너에게 신경을 하나도 못썼다."도 한몫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일 때였다. 그때 사용한 술잔은 지인에게 선물로 받았던 술잔이었는데, 술기운에 조금은 감성적으로 변해서 그런지 '그 친구가 이걸 선물해 준 덕분에 지금도 잘 쓰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생각 외로 집안 곳곳, 내 삶 곳곳에 다른 사람들의 흔적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 놓인 냉장고는 엄마 친구분이 옛날에 선물해 주신 것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었고, 세탁기, 건조기, 오븐레인지는 친구들을 통해서 싸게 구입한 것들이었다. 에어컨은 큰 외삼촌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었고 살면서 선물로 받은 여러 책들이 작은 방에 꽂혀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눈앞에도 선물 받은 레고와 피규어가 눈앞에 놓여있고 회사에서 사준 모니터 받침대가 오른쪽에 놓여있으며 친구가 선물로 사다준 한정판 술이라던가 책을 출간할 때 편집자로부터 받았던 편지, 친구에게 맞추는 법을 배웠던 큐브, 집들이 선물로 받은 스타벅스 컵들, 동기가 일본을 다녀오며 선물로 사다준 퍼즐 등이 책상 위에 놓여있다. 모두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거나 그들의 도움을 통해 이곳에 놓여있는 물건들이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생각한 것과 반대로 나는 혼자 크기는커녕 생각이상으로 손이 많이 가는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도 자주 하였고, 편도선수술 한 번에 화상수술 두 번까지 병원에 참 많이도 입원을 했다. 스물이 넘어서는 어깨와 손목 수술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모든 힘들고 아픈 과정에는 옆에 엄마가 있었음이 생각이 났다. 아플 때 옆에서 병간호를 해주시고 화상수술을 한 내 발목을 어루만지며 "어쩌다 이쁜 다리가 이렇게 되었을까…"라며 눈시울을 붉히시곤 했다.
학창 시절에는 옆에 늘 친구들이 있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매우 괴롭던 나였지만,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며 견딜 수 있었고, 학원에서 친구들을 만나 같이 공부를 하는 시간은 생각이상으로 즐거웠다. 대학에 가서도 친구들의 취업 활동을 보며, 나도 얼른 그들처럼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 동기부여도 되었고, 덕분에 인턴 원서라도 써볼 수 있었다.
회사에 들어와서는 일도 너무 어렵고 멘탈도 계속 흔들려서 휴직까지 할 정도로 힘든 나날이 많았지만, 그래도 꺾이지 않고 어떻게든 버틸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선배들도 많았다. 밤늦게 전화해도 웃으며 알려주던 선배라던가 자기 일도 아닌데 야근까지 해가며 멀리서 도움을 준 선배 등 고마운 선배들이 많았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나 혼자 잘 컸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오만하고 건방지다고 느껴졌다. 그리고는 이내 부끄러워졌다. 남들의 호의 속에서, 호의 덕분에 이만큼 살게 되었는데, 그걸 모두 나 스스로의 공이라고 생각한 게 창피했다. 그래서 이제는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를 스쳐 지나갔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저런 오만한 모습을 갖지 않도록, 말조심은 물론이거니와, 생각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