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더 나이가 들어 늙게 된다면 꼭 닮고 싶은 배우가 하나 있다. 바로 덴마크 배우 매즈 미켈슨이다. 아마 사람들에게는 미드 한니발의 한니발 역이나 닥터 스트레인지 1편의 악당인 케실리우스 혹은 007 카지노 로열의 악당인 쉬프르 역으로 유명할 듯하다.
카리스마 있는 악역이면서도 멋진 중년의 매즈 미캘슨은 사실 본국인 덴마크에서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게 허당 역할도 자주 맡는 배우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핀란드 애니메이션인 '무민, 혜성을 쫓아라'에서 스니프라는 캐릭터의 더빙을 맡기도 하고 '어나더 라운드'라는 영화에서 약간은 코믹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어나더 라운드는 4명의 고등학교 교사들의 이야기다. 이 4명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지쳐서 모든 열정도 사라지고 우울하게만 지내는 교사들이다. 그중 한 명인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을 기념해서 다 같이 모여 레스토랑에서 술을 마시는데, 이때 갑자기 마틴(매즈 미켈슨)이 울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그런 마틴을 달래던 중 필 스콜데루드의 이론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된다. 바로 사람은 늘 혈중 알콜 농도가 0.05% 부족한 상태이므로 혈중 알콜 농도를 0.05%로 유지하면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이론이다. (영화를 위해 살짝 왜곡된 것으로, 사실은 혈중 알콜 농도가 0.05% 상태인 것처럼 유쾌하게 사는 게 좋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로 그 이론에 대한 검증을 시작하고, 그러면서 발생하는 일들이 영화 속에 그려진다.
좋아하는 배우인 매즈 미켈슨이 나오는 영화인지라 예전부터 보려고 생각은 했으나 생각 외로 손이 잘 가지는 않던 영화였다. 하지만 지난달 드디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대략적인 시놉시스는 알고 있었으니까 영화에 맞춰 나도 와인을 준비해 놓고 영화를 틀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영화를 보면서 와인 한 병을 다 비웠더니 취기가 확 올라왔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음주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도 되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많이 공감되는 영화였다. 나도 평소에는 많이 예민한 편이고 늘 근엄한 표정으로 생활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본 사람들은 나에게 다가오기 어려워하고, 심지어는 늘 화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나도 술이 들어가면 세상 그 누구보다 유쾌한 사람으로 바뀌곤 한다. 심지어 나는 성격이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회사 사람들이나 업무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 혹은 술자리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만큼 혈중 알콜농도에 따라 많이 바뀌는 편이다. (물론 내향인으로서 영혼을 쥐어짜 내어 활발하게 행동하는 것도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주인공들처럼 나도 늘 혈중 알콜농도를 0.05%를 유지한 상태로 살면 꽤나 세상을 살아가는 게 수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진짜로 그랬다가는 알콜중독자가 되기 십상이겠지만.
나는 약간의 알콜이 들어가면 예민했던 감각들이 조금씩 둔해지고 의식도 살짝은 흐릿해진다. 그러면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누려왔던 것들의 좋은 점들만을 느끼게 되면서 지금의 생활에 조금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며 그제야 내 삶에 만족감을 느끼곤 한다. 그렇기에 나는 요새 가끔 집에서 영화나 만화책을 보며 혼자 와인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럴 때야 말로 진정 내 삶을 즐길 수 있는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핑계를 대곤 한다. 0.05% 정도는 나쁘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