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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Oct 20. 2023

왼손잡이는 정말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날까?

  어느 날 동생과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내 동생은 가족 중 유일한 왼손잡이인지라 그날도 동생은 식탁 왼쪽 편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왼손잡이는 창의력도 뛰어나고 예술적 감각도 뛰어나다던데 내 동생도 그럴까?'



  흔히들 천재 예술가중에는 왼손잡이가 많다고 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에도 레이건, 클린턴, 오바마 등 왼손잡이가 은근히 있는 편이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왼손잡이가 어떤 부분에서는 오른손잡이보다 더 뛰어난 부분을 갖고 있으며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들 말한다.


1.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 : 

    세상의 모든 도구들이 오른손잡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왼손잡이는 어릴 때부터 불편함을 느끼며 살게 되고 그로 인해 문제 해결 능력이 발달한다.

2. 주변의 편견을 견뎌왔다 : 

    왼손잡이로 살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좋지 않은 시선을 받으면서 견뎌오다 보니 

    강인한 멘탈을 갖게 되었다.

3. 뇌의 발달이 다르다 : 

    왼손잡이는 우뇌가 더 발달했기 때문에 

    창의력과 예술감각이 뛰어나다.


  하지만 실제로는 위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다 틀린 이야기다.


0.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도 왼손잡이가 많다?

  -> 왼손잡이는 전체 인구의 15%가량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은 무려 46명이므로 

      단순 계산으로도 왼손잡이가 7명은 있는 셈이다.

1.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

  -> 오른손으로 써야만 하는 도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운전할 때의 기어위치도 나라마다 쓰는 손이 다르다.

2. 주변의 편견을 견뎌왔다?

  -> 반대로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바라볼 것을 알더라도 

      굳이 자녀를 오른손잡이로 교정하지 않는 부모님의 성향 덕에

      자유로운 환경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서 

      멘탈이 강하고 창의력이 길러진 것일 수도 있다.

3. 뇌의 발달이 다르다?

  -> 실제로는 뇌의 발달에 차이가 없으며, 

      과학자들도 아직 뇌의 어느 부분이 

      창의력과 예술적 감각을 관장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했다.

  

  이처럼 사회학적인 문제는 한 가지 각도에서만 봐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는 저러한 속설들이 널리 퍼져있으며 사람들은 이를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이고 믿곤 한다. 만약 저 속설들이 진짜였다면 내 동생을 포함한 세상의 왼손잡이들은 누가 봐도 알정도로 두드러진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와야겠지만 동생만 봐도 딱히 오른손잡이와 그렇게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속설들이 널리 퍼지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사람의 뇌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인과관계를 찾으려 한다거나 어떤 현상에 대해 단순화하려 하는 등의 이유들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가장 크면서도 불쾌한 이유로 '인과관계와 통계의 누락 또는 왜곡'을 들 수 있겠다. 

  사람들은 종종 의도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인과관계와 통계를 누락하거나 왜곡할 때가 많다. 사회학적인 내용에서 특히 더 그런 모습을 보인다. 왜냐하면 수학공식처럼 명확하게 풀이과정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를 정해놓고 그 결과에 끼워 맞추기 쉽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마시멜로 이야기를 들 수 있겠다.



  예전에 한창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이 붐을 탄 적이 있다. 한 회사 대표가 자기 운전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쓰인 책인데, 그 책에서 대표는 운전수에게 마시멜로를 통한 실험 내용을 들려준다. 실험은 간단하다. 아이들을 방 안으로 불러서 마시멜로를 꺼내놓은 다음 이 마시멜로를 10분간 먹지 않고 있으면 2개를 더 주겠다고 말한 후, 아이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실험이었다. 당연히 10분을 기다리는 아이도 있고 바로 먹어버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선 약 20년 뒤 그때 그 아이들을 찾아서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10분간 먹지 않고 기다린 아이들의 소득이, 곧바로 마시멜로를 먹어버린 아이들보다 매우 높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는 기다림과 인내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 학자들은 저 실험에 대해서 다르게 분석한다. 10분간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집안의 소득 수준이 높았으며, 그로 인해 마시멜로쯤은 언제든 먹을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굳이 마시멜로를 당장 먹을 필요가 없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아이들은 집안의 소득 수준이 낮아서 마시멜로를 맘껏 먹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지금 그 아이들에게는 보장되지도 않은 10분 뒤의 마시멜로를 먹기보다는 (우리 입장에서야 보장되어 보이지만) 지금 당장 마시멜로를 먹는 게 중요했던 것이었다. 결국 그들의 20년 뒤 소득 수준의 차이는 단순히 개인의 인내심이나 능력에 따른것이 아니라, 원래 집이 잘 살고 못 살고에 따른 차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는 아버지의 교육 수준과 소득이 자녀의 수능 점수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좀 더 현실적인 예시를 들어보자면, 당신이 일용직 노동자인데 집에 당장 쌀도 물도 없는 상황이라고 해보자. 그런데 현장 감독이 당신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이다. "오늘 돈을 받아갈 거면 10만 원을 줄게. 하지만 10일만 기다렸다가 받아간다면 그때는 일당을 12만 원으로 쳐서 120만 원을 줄게." 여유가 있다면야 10일 뒤에 받아가면 되지만 당장 쌀도 물도 없는 사람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당장 오늘 10만 원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저 마시멜로 실험은 아이들의 환경과 배경을 무시한 채 모든 아이들의 상황과 사고가 똑같다는 가정을 깔고 실험을 단순화시키는 바람에 잘못된 결과를 도출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왼손잡이의 얘기로 돌아가봐도 비슷하다. 만약 당신에게 누군가가 왼손잡이에 천재가 많다며 그 예시로 나폴레옹, 빌 게이츠, 레오나르도 다빈치, 베토벤, 아인슈타인 등을 들었다고 해보자. 그럼 대부분은 '와, 정말 그렇네?'라고 쉽게 믿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 얘기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엄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천재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 기준에 따르면 인류역사에서 천재가 몇 명이나 나온 것이지, 그리고 그중에 왼손잡이는 몇 명인지. 하지만 바쁜 현대인들은 이런 것들을 검증하기는 쉽지도 않을뿐더러, 이런 얘기를 꺼내는 순간 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기 십상이기에 보통은 저런 얘기들이 조금 그럴싸하기만 하면 그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무비판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이 말과 언론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장 흔한 그래프를 통한 왜곡


  따라서 최소한 본인 스스로 생각을 하고 판단을 내릴 때는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현상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게 조금이라도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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