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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Oct 30. 2023

2023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 작은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PMO(Project Management Office)라는 직책을 맡았다. PMO라 함은 말 그대로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역할로써, 프로젝트의 일정과 진척도를 관리하고 사람들이 프로젝트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불편함을 해소해 주며, PM(Project Manager)를 보좌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따라서 나는 프로젝트 전체를 관리하는데 힘써야 했는데, 그중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람들의 멘탈 케어였다.

  그 프로젝트는 유달리 프로젝트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어떻게든 수주를 해야만 했었기에, 과업 범위 대비 적은 인력을 투입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작부터 야근하기 일쑤였고, 고객이 우리에게 전달해 준 정보가 왜곡되어 있었던 바람에 사람을 추가로 3명이나 더 투입해야만 했다. 거기에 더해 고객과 우리 사이에 버티고 있는 고객사의 IT담당사의 갑질로 인해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PMO로써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즐겁게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힘썼다. 그리고 그 활동의 일환으로 프로젝트의 젊은 사람들을 모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하 GMF)에 참석했었다.

  그때는 나를 포함한 4명이서 참석하기로 되어있었으나, 그중 한 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지게 되어 최종적으로는 3명이서 참석했었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메인스테이지를 감상하면서 맥주도 마시고 음식도 먹으며 가수들의 공연을 구경했다. 중간중간 옆에 마련된 실내 스테이지에 가서 다른 가수들의 공연을 보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공연을 관람했고, 마지막 공연 때는 모든 사람들이 메인 스테이지의 스탠딩 존에 서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2019 GMF


  그때 너무 기억이 좋았던 터라, 이번에는 동기들하고 같이 가보기로 했다. 금토일, 3일이 진행되는데 그중에 보고 싶은 라인업이 많았던 일요일로 구매를 했다.

  10월 22일 아침 11시, 올림픽공원역에 내리니 사람들이 이미 한참 줄 서있는 것이 보였다. 11시에 티켓박스가 오픈되고 12시가 입장이었기에 사람들은 꽤나 일찍 와서 줄을 서 있었다. 덕분에 나도 짐을 한가득 들고선 줄을 섰다. 너무나도 좋은 날씨긴 했지만, 덕분에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서, 모자를 가져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산인해


  그렇게 50여분을 줄을 서고 나니,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신분증을 제출하고 QR코드를 스캔한 다음 손목에 팔찌를 채웠다. 그리고는 입장 대기줄을 향해 이동했다. 아직 12시가 되지 않아서 사람들은 입장하지는 않은 상태로 줄을 쭉 서있었다. 어찌나 줄이 길던지, 줄의 맨 마지막까지 이동하는데만 10여분이나 걸렸다. 티켓줄에서 이미 50여분을 기다렸다 보니 입장 대기줄도 그렇게 길게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입장은 2개의 게이트에서 각각 4개 줄로 진행되어서 그런지 약 20여 분 만에 입장할 수 있었다.


실제로 보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입장하고선 빠르게 달려 나가 돗자리를 깔 자리를 찾았다. 돗자리를 깔 수 있는 피크닉존은 왼쪽, 가운데, 오른쪽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미 가운데는 사람들이 꽉 차있었기 때문에, 내가 입장한 곳과 그나마 가까운 왼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좋은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곧이어 피크닉용 종이의자와 종이 테이블을 펼쳐놓고 먹을 것을 사러 갔다. 칠리새우와 레몬세우를 사고 맥주도 한잔 샀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먹고 마시며 공연을 감상했다.


무대가 보이기는 하는 자리


  2019년에는 많은 가수들 중에 정승환을 제일 보고 싶었었다. 그 당시 나는 정승환의 노래에 흠뻑 빠져있었기 때문에 정승환만 들을 수 있다면 다른 가수들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기대했던 정승환은 그냥 그런 느낌이었고, 관심도 없던, 정준일, N-flying, 윤하, 멜로망스의 노래에 취하다 왔다. 덕분에 그즈음에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그들의 노래가 가득 차있었다.

  그래서 이번 2023 GMF에 최대 목표는 김필의 노래를 듣는 것이긴 했지만, 2019년과 마찬가지로 기대하지 않았던, 혹은 알지 못했던 가수들이 더 좋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첫 공연은 '오월오일'이라는 밴드였다. 안타깝게도 너무 이른 시간이고 첫 공연이라서 아직 공연장은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세팅하는 사람들로 인해 많이 소란스러웠다. 나도 조금 늦게 입장한 덕분에 그들의 공연을 반절은 듣지를 못했다. 자리를 세팅하고 의자에 등을 기대앉으니 그제야 그들의 노래가 들려왔다. 재미있게도 보컬의 목소리가 평소에는 어린 고등학생의 느낌을 주는 풋풋한 목소리임에도, 노래만 시작됐다 하면 되게 멋진 목소리로 변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날 최고로 좋았던 곡은 'Last Dance'였다.

  그다음으론 '터치드'가 나왔다. 오월오일은 그래도 이름이라도 들어는 봤었는데, 터치드는 아예 처음이었다. 특이하게도 보컬만 여자고 세션들은 모두 남자인 혼성밴드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요즘 보기 힘든 강렬한 사운드의 락밴드였다. 생각이상으로 퍼포먼스와 곡들이 모두 좋았다. 2022년 GMF에서 최고의 루키로 뽑혔다고 하는데, 직접 들으니 역시 그랄만 했구나 싶었다. 'Highlight'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세 번째 순서는 Day6의 보컬 'Young K'였다. Day6의 노래는 많이 들어봤지만, 멤버 하나하나의 이름이나 얼굴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어떨지 좀 많이 궁금했다. 훤칠한 청년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데, 역시나 늘 듣던 그 목소리였던 것이 좋았다. 그날따라 공연장에 유독 여성들이 너무 많았는데, 대부분 Young K를 보러 온 듯했다. 왜냐면 여기가 GMF인지 Day6 콘서트장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응원봉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본인의 노래도, Day6의 노래도 골고루 불러주었는데, 그중에서는 '이것밖에는 없다'라는 노래가 제일 좋았다.


단독 콘서트장인줄 알았다


  네 번째 순서로 가기 전, 중간에 잠깐 빠져나와서 그 옆의 수변무대로 이동했다. HYNN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HYNN이야 워낙 노래를 잘하는 건 알기 때문에 꼭 한번 라이브로 듣고 싶었다. 수변무대는 생각보다 무대가 너무 작아서 앉기는커녕, 서서 듣는 것도 녹록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듣고 싶었기 때문에, 맨 뒤에서 까치발을 들고 공연을 감상했다. 그날 가장 좋았던 건 '너에게로'였다.



  다시 피크닉 존으로 돌아와서 다음 공연을 감상했다. 밴드 '소란'의 무대였다. 소란도 처음 들어보는 밴드였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것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재치가 넘치는 무대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무대를 시작할 때는 YoungK가 나와서 도와주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LUCY의 멤버가 나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어찌나 무대를 잘 휘어잡고 신명 나게 하는지, 그날 처음 봤음에도 콘서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흥겹게 들었지만, 기억에 남은 노래는 하나도 없었다.

  그다음 순서는 멜로망스였다. 2019년에도 멜로망스는 직접 봤었기 때문에, 이미 어떨지 대충 짐작은 되었다. 2019년과의 차이점이라면, 그대는 마지막 공연이었는데, 이번에는 마지막 바로 전 공연이라는 것뿐이었다. 보컬인 김민석은 여전히 노래를 잘했고, 피아노와 작곡을 많은 정동환의 퍼포먼스가 많이 늘었다. 덕분에 분위기야 뭐 말할 것이 없었다. 이날도 역시 '인사'가 제일 좋았다.

 

  이때쯤 이미 해는 거의 다 진 상태여서 하늘은 캄캄하고 어느새 많이 쌀쌀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담요를 꺼내 몸에 둘둘 두르고 핫팩을 여러 개 꺼냈다. 앞선 공연들을 보면서 와인과 맥주를 홀짝인 탓에 피곤함도 조금 몰려와서 나도 모르게 10분 정도 깜빡 잠이 들기도 했다. 덕분에 피크닉존의 마지막 순서인 밴드 'LUCY'의 노래 중에 '놀이'라는 곡을 듣는 것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LUCY의 노래 중에 저 곡만 알고 있기도 했고, 이미 체력도 많이 소진된 상태였다. 그래서 얼른 자리를 정리한 후, 정말로 보고 싶었던 김필의 공연을 보러 수변무대로 이동했다.


날이 짧아진게 확 체감됐다


  모든 스테이지의 마지막 공연인지라,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황급히 서둘러 자리를 옮겼는데,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사람이 별로 없었다. 물론 관객석은 꽉 차있긴 했지만, 아까 HYNN의 무대를 들을 때와 별 차이가 없어서 맨 뒤에서도 무대를 보며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약 5곡을 듣고 나니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다. 내가 아는 김필의 유명한 곡들은 하나도 불러주지 않았고, 가수 본인 취향의 음울하고 우울한 곡들만 불러주었다. 그래서 더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나중에 Setlist를 보니 맨 마지막 노래 빼고는 내가 모르는 노래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날의 마지막 공연


  집까지는 지하철로 1시간 10여분을 가야만 했다. 그리고는 다시 집까지 12~3분여를 걸어야 했다. 아침부터 계속 야외서 있었던 터라 노곤함이 계속해서 몰려왔다. 하지만 그런와중에도 너무 만족스러운 페스티벌이었어서인지, 즐겁게 플레이리스트를 바꾸면서 집에 올 수 있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2024년 5월 경에는 Beautiful Mint 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또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했다.


  아직 5월까지는 반년이 넘게 남았음에도 벌써 두근거리는 걸 보면 아마 매년 방문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정작 플레이리스트에 제일 많은건, 페스티벌에 참여하지 않고 페스티벌 전광판에 광고만 냈던 노리플라이(no reply)의 노래라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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