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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Oct 31. 2023

한국에서 내향인으로 산다는 건

  나는 엄청나게 내향적인 사람이다. MBTI로 따지면 극 I형이고 MMPI-2로 검사를 해보았을 때도 내향적인 사람으로 나왔다. 검사 결과를 본 의사 선생님은 이건 절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 바꾸려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었다. 그만큼 나는 내향인의 극에 달한 사람이다.


제 결과는 아니고 예시입니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전혀 나를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업무적으로만 만나서 사이가 어색한 사람이라던가, 한두 번만 보고 말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에 앞서서 적당히 거리감을 느끼곤 하지만, 나랑 같이 놀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거나 회식자리에서 나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나는 노는 데는 진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 스스로 놀 때는 체력이 무한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놀 때만큼은 전혀 지치지 않고 미친 듯이 논다. 요새는 다음날을 위해 일부러 자제하고는 있지만 예전에는 밤이 새도록 놀고 아침 해가 뜰 때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래서 늘 나 스스로 극 I 또는 내향형 인간이라고 말하고 다님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보다 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꽤 많은 내향인들이 이런 생활을 하는 듯하다. 인터넷을 보다 보면 가끔은 나와 같은 사람을 표현한 그림이나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내향인일지라도 밖에서 놀 때는 영혼 한 줌까지 짜내어 최대한 놀고, 볼일이 있다면 한 번의 외출로 모든 볼일을 다 볼 수 있도록 동선과 일정을 짜서 돌아다니는 타입이 있는데, 이 때문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 놀기도 하고 휴일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외향인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글이나 그림을 볼 때마다 나 또한 그런 종류의 사람임을 확신하곤 했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내향인은 사회적인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다. 방구석에 처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히키코모리 같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고, 기분 나쁜 오타쿠 같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나이 드신 분들께서는 사람이 그렇게 소심해서야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며 혀를 끌끌 차거나 사람들하고 어울리며 사교적으로 성격을 바꿔보라는 얘기를 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왜 내향인은 나쁜 것이라고들 생각할까? 그리고 왜 이토록 내향인은 살기가 힘든 것일까?


이래서는 아닐 거야…


  가장 큰 이유로는 내향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내향인 그 자체를 존중해주지 않는 분위기를 들 수 있겠다. 왜 내향적인 게 좋지 않은 것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흔하게는 다 같이 무언가를 하자며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 거나 즐거운 분위기일 때 혼자 빠지거나 하는 식으로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든다는 이유를 말하곤 한다. 또는 너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도, 심지어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도 내향인을 좋지 않게 보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비단 내향인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집단과 단체를 중히 여기는 문화를 가져왔다. 그래서 나, 개인보다는 전체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팽배했고, 그러다 보니 암묵적으로 개개인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집단이 가려는 방향이면 다 같이 따라야 한다는 분위기를 형성해 왔다. 그리고 이런 집단의 방향을 주도하는 것은 대부분 외향적인 사람들이었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이에 맞춰가곤 했다. 그래서 종종 집단의 방향과 상관없이 자신의 주관을 드러내는 사람은 대체로 내향인일 확률이 높았고, 그러다 보니 내향인이 곱게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 단지 내향인은 본인의 의사를 피력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물론 사회성이 결여되어서 무조건 마이웨이인 사람들도 종종 있긴 하지만 그건 그들이 내향인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이기적이라서인데 사람들은 이를 잘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서 생각을 하다 보니 그런 부정적인 시선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대화가 잘 되지 않는 것도 딱히 내향인은 좋지 않은 이유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보통 대화를 하다 보면 공통의 관심사가 없고 각자가 좋아하는 관심사에 대해서 얘기를 꺼냈을 때 대화가 단절되고는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내향인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관심사들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곤 한다. 반대로 외향인들이 좋아하는 관심사는 건강하고 좋은 것이라며 칭송하기들 바쁘다. 딱히 도덕적으로 나쁜 것만 아니라면 어떤 것을 좋아하든 우열은 없는 것이고,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서로서로 맞춰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 내가 당신이 좋아하는 서핑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잘 들어주었으면 당신도 내가 좋아하는 만화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잘 들어줘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런 관용을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런 인식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다. 가까운 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인싸'문화=한국 문화, '아싸'문화 = 일본 문화라고 자조적인 글들이 올라오긴 하니까. 아마도 가까운 나라라 서로 문화적인 교류가 너무 많다 보니 사회적인 인식도 비슷하게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일본은 한국을 35년간 침략했던 이력도 있으니까.

  이런 여러 가지 인식들로 인해 내향인을 보는 시선이 그렇게 곱지만은 않다는 것을 종종 느끼며, 그런 인식 때문에 자꾸 내향인에게 모종의 압박이 들어오는 것을 많이 느끼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들과 압박감들이 알게 모르게 내향인을 힘들게 만든다는 것도. 하지만 거기에 더해 한국에서 내향인으로 살면 힘든 여러 이유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을 사귀는 게 너무나도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양호하지 (더 좋을지도?)


 내향인들은 사람을 사귀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든다. 옆에 있는 이 사람이 나와 어느 정도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고, 어떤 성격을 가졌으며,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는 게 꽤나 힘든 일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굉장한 페널티가 하나 있다. 일정 나이를 지나기 시작하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야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매년 새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대학에서도 학과나 동아리에 계속 신입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내가 동아리를 이곳저곳 옮겨다니기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회사에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하지만 30대에 들어서기 시작하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스스로 어떠한 모임이나 동호회를 찾아다니지 않으면 일상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친구들을 통해 다른 모임에 가보거나 다른 사람들을 소개받을 때도 있었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각자의 가정을 갖기 시작하면서 뜸해졌다. 그리고 어느덧 모임이나 동호회에는 나이제한에 걸려있어서 새로운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공통의 관심사로 모이기 위한 동호회인데 대체 나이제한이 왜 있나 싶기도 하지만,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이성을 만나는 게 주 목적인 동호회들인가 보다 하며 넘어가다 보면, 어느샌가 내가 참석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수는 손의 꼽을 정도만 남아있는 것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가 운 좋게 새로운 모임을 가게 되면 내향인에게는 굉장히 괴로운 자리가 된다. 예전처럼 다양한 모임을 가지며 나와 맞는 모임이나 사람들을 찾기에는 기회가 너무 줄었기 때문에, 일단 여기에서 잘해봐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사람들은 재빠르게 사람들과 친해지며 좋은 시간을 갖게 되지만, 내향인은 압박감에 지쳐 얌전히 지내다 결국 발길을 끊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외국의 파티 문화가 너무 부러울 때가 있다. 물론 극도로 내향적이면 파티 자체를 가지 않을 것이고 가더라도 한 구석에서 망부석처럼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원한다면 그런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이 매우 부러웠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더라도 파티 주최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하는 모습이 많이 부러웠다. 그래서 종종 내가 서양식으로 파티를 주최하려 나름 힘써보기는 하는데, 일단 기혼자들의 참석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고, 아무나 더 데리고 와도 된다고 한들 다들 그런 식의 파티는 꺼리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한계를 느끼곤 한다. (개인적으로 기혼자들이 참석하지 못하는 데는 결혼하는 순간부터 오롯이 가정이라는 커뮤니티에 가두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소원하게 만들거나 거의 단절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한국 특유의 문화도 한몫하는 것 같다.)


덕분에 혼자 노는데 달인이 되어간다


실제로는 약간 이런 기분

 

 그러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지도 모른다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이 사회는 혼자인 사람에게 굉장히 매섭고 차갑다'고 느껴진다. 종종 사람들이 혼자서도 잘 살면 굳이 결혼을 할 필요가 없다거나 요즘 세상에는 결혼은 선택이니 자유를 즐기라고들 하는데, 내가 생각할 때 그거는 극히 일부의 얘기고 대다수의 나이 든 독신들에게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라는 것 자체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 그렇게 사는 것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주변사람들은 당사자의 속도 모르고 옆에서 '너는 결혼하지 마라'라던가 '네가 제일 부럽다'라고 말하며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덤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만나면 진짜 미친 듯이 외향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외향적인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을 더 만날 수 있을지, 오래 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원래 잘 알고 지내는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다들 일찍 들어가야 하고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 때문에. 정작 나는 조용한 곳에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거나, 책이나 영화를 놓고 토론을 하기도 하고, 카페에 갔다가 볼링도 치러 가고, 보드게임도 해보고, 클라이밍이나 패러글라이딩, 서핑 같은 것들도 같이 해보길 바라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단시간 내에 빠르게 술을 마시고 흥에 겨워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며 밀도 있게 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이렇게 즐겁게 놀았다 하더라도 정작 집에 가서 혹은 다음날 밀려드는 공허함이 점점 커져만 간다. 정작 사람들과 서로 속을 터놓고 얘기하거나 고민거리를 공유하고 서로를 위로해 주는 그런 시간은 거의 다 사라져 버렸으니까.



덧. 좀 전에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와 커피 한잔 하면서 이 얘기를 해봤더니, 역시 외향형 인간이라 그런지 내 고민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그저 웃으며 나에게 "너 빨리 연애해야겠다ㅎㅎ"라고만 할 뿐.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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