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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Nov 10. 2023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컨택트>,<테넷>의 스포일러 포함

  요즘 계속 봐야지, 봐야지 라며 벼르고만 있다가 며칠 전에 겨우 본 영화가 있다.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다.

  사실 이 영화는 내 개인적 견해로는 영화로써의 만듦새가 딱히 좋은 편은 아니다. <원령공주>나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명확한 메시지를 전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이웃집 토토로>, <붉은 돼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오락성을 잡지도 못했다. 더욱이 영화가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기반으로 해서 그런지 너무 많은 은유와 비유가 넘쳐났고, 생략된 부분도 많아서 맥거핀으로 남겨지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거기에 더해 일정 부분 프레임을 높여 제작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프레임이 낮은 부분의 동작이 어색해 보이는 단점을 가졌다.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이 이 영화에 대해 혹평을 하고 별로라고 얘기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많은 생각들을 했고, 개인적으로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아마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영화를 봤거나, 영화를 볼 생각이 없는 사람일 텐데 한번 내 얘기를 조금만 들어봐 주기를 바란다.



  일단은 왜 이 영화가 이런 식으로 구성되었고 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를 생각해 보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주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이 영화는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 영화라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겪거나 자신이 생각한 바를 남에게 얘기할 때 꽤나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무의식 중에 내가 아는 부분을 상대도 이미 알 거라고 가정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처음 만난 사람은 당신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와 똑같은 오류를 범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옆에서 누군가가 일반 관객들은 당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해줬다면 조금은 영화의 구성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으나, 감히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리라 본다. 그리고 설령 들었다 한들 방향이 바뀌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별점을 박하게 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동안 만든 수많은 작품들 중 정말 감독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영화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두 가지 영화가 떠올랐다. 바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이었다.



  영화 <컨택트>의 주인공인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아담스)는 결국에는 외계인들의 언어를 배워 시간을 초월하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동시에 바라보며 알 수 있게 되었고, 미래에 자신이 이안 도널리(제레미 레너)와 결혼하여 딸을 낳고, 그 딸이 어린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영화 마지막에 이안 도널리와 사랑을 하고 이미 너무 사랑스러운 미래의 딸을 만나기로 결정한다. 비록 그 딸이 자신의 곁을 떠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영화 <테넷>에서는 주인공인 주도자를 미래에서 온 닐(로버트 패틴슨)이 계속해서 이끌어준다. 그렇게 주도자와 닐은 안드레이 사토르(케네스 브레너)의 야욕을 막아낸다. 그리고 마지막 작전에서 죽을뻔한 주도자를 누군가가 구해주고 사망한다. 그리고 작전이 모두 끝난 후, 주도자를 구해준 것이 바로 미래에서 온 닐임을 주도자와 닐 모두 알아챈다. 그러자 닐은 자신이 주도자를 구하고 사망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미련 없이 주도자를 구하러 떠난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인공의 어머니의 히미(히사코)는, 결국 이세계에서 자신이 미래에 마히토를 낳을 것이며, 화재로 죽을 것이고, 결국 자신의 남편은 동생인 나츠코와 재혼할 것을 모두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히토에게 "널 낳은 건 정말 멋진 일이었어"라며 웃으며 본인의 세계로 돌아간다.


  우리는 이미 정해진 길을
운명이라 부른다.
그리고 저 셋 모두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만약 당신의 인생을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있다면, 그걸 바꾸겠어요?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다.' 세상에 대한 믿음을 뜻하는 거지, 방관하려는 핑계가 아냐


  미야자키 하야오는 영화에서의 마히토처럼 군수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정작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버지를 전쟁 부역자라며 비난하다 싸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마도 끊임없이 자기모순에 괴로워했으리라 본다. 반전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전쟁덕에 풍요로운 삶을 영위해 왔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아마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에 대해 자기 나름의 답을 내렸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 답은 아마 그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영화에서 마히토의 엄마를 통해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표현하고, 마히토가 이모인 나츠코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자신도 그 운명을 받아들였음을 표현한 듯싶었다.

  결국 이 영화는,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듯 보였다.




나는 내 운명을
거부하지도, 체념하지도 않고
그저 받아들여 살아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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