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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Nov 16. 2023

회사를 다닐 때 잊으면 안 되는 것

1)

  대략 4년 전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휴직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 당시 같은 프로젝트에 있던 선배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면서, 혼자 가기 심심했던지 나를 포함한 후배 몇 명을 데리고 나갔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비흡연자들은 간식을 오물거리면서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누군가 말을 꺼냈다.

  "근데, 아침 8시 출근 저녁 9시 퇴근은 미친 거 아니에요?"

  그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한 지 만 5년을 지나고 있었다. 예정된 일정보다 이미 한참 지연된 상태였고, 그럼에도 언제 끝날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에선 특단의 조치로 프로젝트 총괄 자리에 새로운 인력을 임명했다. 그 사람은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지연되는 프로젝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끝나게 만들었던 경력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썼던 지연된 프로젝트를 빨리 끝내는 방식이란 게 바로 프로젝트가 끝낼 때까지 무기한 야근과 무기한 주말 출근을 시키는 것이었다. 

  우리가 제조업에 종사를 하고 있다면 저 방법이 어떤 면에서는 유효할 수도 있었다. 야근과 주말출근을 해야 한다는 말은 곧 밤에도 주말에도 제품을 계속 생산한다는 얘기니까. 그러면 생산량이 올라가고 생산량이 올라가야 일정 내에 정해진 목표수량만큼 생산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IT 업계에서는 진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IT에서는 사람들의 업무가 유기적이면서도 복잡하게 연계가 되어있어서, 제조업처럼 정해진 일만 딱 수행하기는 어렵다. 나만해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할 때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또는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할 때가 아니라면 회사에 아무리 오래 있는다 한들, 그 시간 내내 놀면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아니더라도 IT업의 특성상,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일을 시킨다 한들 그에 비례해서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휴식도 못하고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다 보면 오히려 생산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저 방법은 정말 일을 잘 끝내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고객에게 우리가 이만큼 힘들여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어필하기 위한 방법,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당연히 사람들 사이에서는 미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흡연자 선배는 오히려 이런 방식을 나쁘지 않게 생각했다.

  "근데, 야근비랑 주말출근비는 일하는 대로 다 주잖아? 돈도 벌고 좋지 뭐."

  "아니 돈 주는 거야 당연한 건데, 너무 회사에만 살아야 되잖아요. 하도 회사에서만 살아서 와이프는 뭐 그런 회사가 있냐고 맨날 욕하고 애들은 제 얼굴을 거의 까먹을 지경이라고요."

  그러자 선배가 말했다.

  "우리 가족은 이제 내가 집에 있으면 불편해해."




2)

  현재 나는 강남 쪽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리더 격으로는 처음 나온 셈이라 처음에는 약간 부담을 느꼈었다. 그래서 프로젝트 인력들, 고객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대부분의 회식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회식이 주 3회 혹은 주 4회 정도였던 데다가 2차, 3차는 기본이고 심지어 4차를 가기도 했다. 그래서 몸이 굉장히 고되었지만, 그럼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총괄 리더급 회식이 잡혔다. 고객사의 팀장과 그 휘하 3명이 오기로 되어있었고, 우리 프로젝트에서는 프로젝트 매니저(PM)와 스탭(PMO) 한 분까지 해서 총 6명이 참석하기로 했다. 하지만 PM님은 나와 내 후배도 같이 가자며 술자리에 초대했고, 결국 총 8명이서 회식을 했다. 

  금요일 저녁에 시작된 술자리는, 다음날이 쉬는 날이어서 그런지 초반부터 매우 빠르게 달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활발한 성격의 고객사 직원 하나가 신나게 술을 따르고 건배를 외치며 자리를 주도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너무 빠르게 취했다. 그렇게 한창 술에 취해있다 보니 PM님이 나에게 자리를 바꾸자 했고, 내가 가서 앉게 된 자리는 고객사 팀장 바로 앞자리였다. 

  회식 시작 전, 업무가 끝나고 회식자리로 이동하던 도중 PM님에 나에게 귓속말로 '사실 김제호 프로는 팀장 상대로 술상무하라고 부른 건 긴 한데 큰 부담은 갖지 마'라고 하셨던 게 있어서 텐션을 한껏 끌어올려서 고객사 팀장과 얘기를 나눴다. MBTI얘기부터 시작해서 '요즘 애들은…'이라고 하며 한껏 꼰대 같은 얘기를 나누었으니, 남들의 눈에는 꽤나 죽이 잘 맞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속으로는 '아 집에 가고 싶다.'를 연신 외치며 비위를 맞추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거하게 술을 먹고 가게를 나오니, 고객사 팀장이 말했다. 너무 즐거웠다고. 그리고 2차는 미안하지만 자기네 직원들만 데리고 가겠다고. 그래서 PM님과 PMO, 나와 후배는 팀장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때 고객사 팀장이 말했다.


하지만, 김제호 프로는
2차를 꼭 같이 같으면 좋겠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2차 장소를 향해 따라갔다. 이미 1차에서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을 본 후배가 고맙게도 나를 챙기기 위해 같이 따라와 주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2차 장소에 도착해서 맥주를 주문하고서는 그대로 필름 이 끊겨버렸다. 그리고 그다음 기억은 2차 장소에서 나와 팀장이 3차에 가자고 외치는 장면부터 이어졌다. 이미 인사불성이 된 나는 도저히 3차를 갈 수가 없었고, 고객사 직원 한 명과 같이 따라와 준 후배를 따라 근처 편의점으로 도망쳤다. 편의점에서 각자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술을 조금이나마 깨서 나온 다음 각자 집으로 향했다.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던 터라 나는 강남에서부터 용인까지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깊은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가뜩이나 컨설팅 업무를 하는지라, 늘 프로젝트를 따라 떠돌아다녀야 해서 본사 복지도 누리지 못하고, 재택근무도 하지 못하고 항상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해왔다. 프로젝트 일정을 맞추기 위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릴 때도 많았다. 그 와중에 고객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싫더라도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근데 이제는 하다 하다 정말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가뜩이나 본사 인력들과의 다른 대우, 다른 업무 강도 때문에 불만이 가득했는데, 그 와중에 이렇게까지 내가 내 돈, 내 시간을 써가면서 고객이랑 술 마시고 비위를 맞춰주기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나는 영업사원도 아닌데. 그렇다고 이렇게 애를 써가며 고객하고 관계를 잘 유지했다 한들, 나를 평가하는 평가자는 저 멀리 본사에 있기 때문에 이런 노력을 인사고과에 반영해주지도 않을뿐더러, 어차피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이 고객과 다시 일할 일이 없기 때문에 힘들게 쌓은 관계는 프로젝트 기간인 고작 몇 개월 간만 유효할 뿐이니까.


먹고살기 힘드네 정말…


  사람들은 가끔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한다. 보통 어떤 일을 하던지 처음에는 열정도 넘치고 배우려는 자세도 강하고 뭐든 열심히 하려 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계속 유지했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회사생활에서도 종종 초심을 유지하라는 얘기를 듣곤 한다. 아마도 그들이 보기엔 내가 그다지 열정적이거나 열의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하는 듯싶다. 하지만 그들의 염려와는 다르게 나는 지금도 늘 초심을 유지 중이다. 단지 그 초심이라는 게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를 뿐.

  내가 10년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지키려 노력 중인 바로 그 초심은 딱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된다.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면 안 된다.


  내가 회사를 열심히 다니는 목적은 단 하나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그러기 위해 나름 회사생활에 힘을 쏟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며 돈을 버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 때는 잠시 시간을 갖고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는 말을 다시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는 회사생활에 너무 목매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나를 재정비한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원래는 비슷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선배들에게 왜 회사를 다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가족을 위해서"라고들 대답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은 저런 마음을 잊고 회사생활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어느새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일에 더 몰두하고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 애쓰게 된다. 수당이 더 잘 나온다며, 휴일이나 명절에 집에 있기보다는 회사에 출근하려 한다. 그러면서 "애들을 위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라고 한다. 정작 그러는 동안 그 애들은 당신과 점점 멀어지는데도.


  그렇게 한 번 멀어지면 그 사이를 다시 좁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에서의 선배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그 선배도 처음에는 가족들을 위해 회사를 열심히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회사일이 우선순위에 놓이게 되고 야근에 주말출근을 하며 돈을 벌다 보니 가족들과 점점 소원해졌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멀어진 사이가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더 불편해졌을 것이고, 그래서 이제는 선배도 선배 가족도, 선배가 집보다는 회사에 있는 게 편한 관계가 된 것이다. 



  2)에서 회의감을 느꼈던 그날 아침에 생각했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며 돈을 벌었던 것인데, 이제는 이 일이 내 생활과 행복을 갉아먹고 있다고.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그러니 더 이상 내가 이 회사에서 생활을 계속 잘 이어나갈 필요도 없고 자신도 없다고. 그리고 여기서 뭘 더 잘해봐야 더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고.




그렇게 
10년간 열심히 해왔던
회사생활은
 
그날 
내 안에서
조용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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