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에 오래전 친구가 나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친구였다. 이 친구는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면 소위 금수저에 가까운 친구였다. 이사를 그냥 온 것이 아니라 3층짜리 빌라를 지어서 그 빌라 3층의 펜트하우스로 들어온 것이었으니까. 그만큼 그 친구는 늘 풍족하고 여유로웠다.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 내가 다른 지역으로 진학해 버리면서 연락이 끊긴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놀랍게도 어젯밤 꿈에 나왔다. 꿈에서 그 친구는 자신의 영상을 찍기 위해 고프로를 무려 2개나 샀다며 나에게 자랑했다. 그리고 그 고프로를 세워놓을 거치대까지 2개를 사서 옆의 책상 위에 고프로를 다 세워 놓았다.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당연히 고프로 2개 정도는 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있기에 딱히 부러워할 일은 아니었지만, 꿈속이라 그런지 그런 생각을 하지는 못하고 그저 그 친구가 부럽기만 했다. 부러운 마음에 더 자세히 구경하고 싶어서 다가갔다가 실수로 고프로를 건드렸는데, 고프로를 달아놓은 거치대가 생각보다 안정적이지는 않아서 고프로 2개가 다 넘어져버렸다. 나는 친구가 막 산 비싼 물건을 무려 2개나 넘어뜨렸다는 사실에 당황해서 다시 세워놓으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으나, 고프로들은 계속 잘 세워지지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친구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그 친구는 뭔가 일이 생겨서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나는 계속해서 그 고프로들을 세우려고 노력하다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깨고 나니 오랜만에 옛 친구가 꿈에 나온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여전히 나는 그 친구를 부러워하고 그 친구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심지어 지금의 나와 먼 옛날 과거의 그 친구 간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는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한번 그 친구에게 가졌던 감정들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펐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그 여자네 집'에 보면 주인공 만득 씨의 아내인 순애가 화자에게 남편인 만득 씨가 아직도 어린 시절의 연인인 곱단이를 그리워한다고 말하며 이런 얘기를 한다.
남편의 추억 속 곱단이는 아직도 꽃다운 청춘인데 그걸 어떻게 이기냐고.
이처럼 내 머릿속의 그 친구는 아직도 모자란 것 없는 동네 부잣집 막내아들로만 기억되어 있는 셈이다.
이제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나는 언제까지도 이렇게 과거에 갇혀서 살아야 할까 싶다. 그 과거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그 과거를 뒤에 놓고 앞으로 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