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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Nov 09. 2023

원치 않는 호의는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

  아주 어릴 때 봤던 영화가 있다. 제목도 배우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내용도 전혀. 그런데 유독 뚜렷하게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아내가 남편 몰래 집을 팔아 다단계에 돈을 쏟아부었다가 망해서 걸린 장면이었다. 남편은 아내를 정말 무섭게 질책했다. "여펜네가 집에서 살림이나 잘할 것이지, 왜 헛지거리를 해?"라는, 요즘 말하면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난리가 날 듯한 말도 서슴없이 했다. 그렇게 한참 욕을 듣던 아내는 갑자기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원망 섞인 목소리로 남편을 탓했다. 당신이 허구한 날 야근이다 회식이다 하면서 집에 들어오지 않는 동안 애들은 누가 다 키웠는 줄 아냐, 시집오면 손에 물 안 묻게 해 준다더니 물이 안 묻기는커녕 당신 손에 물은 묻혀봤냐, 요즘 애들이 부쩍 자라서 학원이다 뭐다 돈 들어갈 일이 천진데 당신은 고작 쥐꼬리만 한 월급이나 갖다 주면서 유세냐.

  그리고 내가 다 우리 잘살아보려고 그런 건데 그걸로 왜 이렇게 뭐라고 그러냐.



  최근에 웹서핑을 하다가 어떤 웹툰의 캡처를 보았다. 아내가 남편에게 자녀 학원비와 지인 축의금이 필요하니 생활비를 더 달라고 했는데, 남편이 당신이 내 도장을 훔쳐다 투자만 안 했어도 이렇게 쪼들리지 않았을 거라며 화를 내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남편 도장 빌려가서 지맘대로 투자한 거면ㅋㅋ 그래놓고 생활비 더 달라고 ㅋㅋ"라며 그런 아내를 비꼬는 댓글이 있었는데, 그 댓글에는 반대가 무려 700개가 넘게 박혀있었다. 그러자 나는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잘못한 게 맞고 댓글에도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이는 데 왜 반대가 이렇게 많이 박혔을까? 어쨌든 캡처된 한 장면뿐이라 혹여나 내가 모르는 전후 사정이 있고, 그것 때문에 아내가 아니라 남편이 잘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웹툰 내용을 찾아보았으나, 딱히 아내를 변호할만한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그저 사람들이 이 댓글에 반대를 준 것은 '1. 아무리 투자를 하다 잃었다고는 하지만 남편의 언행이 심한데 그걸 옹호해서, 2. 그냥 남편이 싫어서, 3. 그냥 아내 편을 들고 싶어서' 중에 하나가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들의 속사정을 누가 알리오…


  그러다 갑자기 아까 말한 그 영화의 그 장면이 떠올랐다. 만약 이 웹툰의 아내도 저 영화 속의 아내처럼 좋은 의도로 투자를 했다가 잃었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저 댓글에 반대가 더 많이 박히지 않았을까 하고.

  사람들은 이상하게 공감을 잘하면서 동시에 못하기도 한다. 가족을 위해 몰래 투자를 했지만, 운이 나쁘게 다 잃었다고 하면, 가족을 위한 마음에는 깊이 공감을 하면서 가족 몰래 투자해서 돈을 날리고 가족 간의 신뢰를 깨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은 공감하지 않는다. 왜냐면 자기가 직접 당한 게 아니니까. 결국 공감이라고는 하지만 선택적 공감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가족을 위해서'라는 말이 붙었다면, 생각 이상으로 아내 편을 많이들 드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본다. 그들에게 가족 간에 신뢰를 깨어버린 아내의 모습보다는 '가족을 위한' 아내의 모습만이 공감될 테니까.

  

이은주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그러자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위해'라는 의도가 저런 행위를 정당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만약 누군가가 선의를 가지고 행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된다면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까? 아마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아마도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어떤 선의를 가진 것인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수단을 쓴 것인지, 그리고 상대에게 어느 정도 해를 입힌 것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5살짜리 아이가 엄마를 돕기 위해 스스로 설거지를 하다가 접시를 깼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아이의 마음씨를 기특하게 여겨 '그깟 접시'보다는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줘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근데 만약 '그깟 접시'가 100만 원짜리였다면? 약간은 흔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이의 편을 들 수도 있겠다. 근데 만약 좀 극단적인 예를 들어 아이가 늘 피곤해하는 엄마를 도우려, 엄마가 자는 사이 갓난아기인 동생을 목욕시키다 익사시켰다고 해보자. 그때도 이 아이가 선의로 그런 거니 용서하고 넘어가라고 할 수 있을까? 확실한 정보라며 당신의 전 재산을 특정 주식에 투자하게 만들어서 잃게 만든 친구가 '같이 잘 되고 싶어서 그랬다'라고 한다면 용서할 수 있을까? 당신의 컴퓨터에 먼지가 너무 많이 쌓였다며 물로 깨끗이 씻어놓은 할머니가 그저 고맙기만 할까? 이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아빠 컴퓨터 씻어주려고 그랬구나아~ ^_ㅠ


  우리 엄마는 종종 나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곤 한다. 그런데 항상 그 양이 꽤나 과하다. 좋게 말하면 엄마의 사랑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부담스러울 뿐이다. 혼자 사는 나에게 과일이나 채소 등 빨리 먹지 않으면 썩을 것을 잔뜩 갖다 주면, 평소 집에서 밥을 잘 먹지 못하는 나는 어떻게든 그 음식들을 빨리 먹어치우거나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해야만 한다. 그래서 제발 나에게 음식을 가져다줄 때는 먼저 물어보고 가져와달라고 말은 하지만, 우리네 엄마들이 그렇듯 그런 말은 도통 듣지 않으신다. 거기에 더해 "먹기 싫으면 남겨놔 내가 다음에 가져갈게."라는 부담스러운 말도 남기신다. 그러면 나는 기껏 엄마가 무겁게 가져온 음식을 손도 안 대고 그대로 엄마 손에 들려 보내거나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는 불효 막심한 놈이 되지 않기 위해서 다 먹어치워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이런 엄마의 마음이 부담스러움을 넘어서버려서, 급기야는 엄마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또 이내 '엄마는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가져다준 건데, 내가 너무 심했나…'하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엄마가 집에 오지 못하도록 하곤 한다. 엄마는 선의로 행하는 일일지라도 나에게는 너무 괴로운 일이며, 그렇다고 엄마에게 화를 내면 내가 나쁜 놈이 되니까.


제발 그만 줘요…


  그래서 나는 선의로 타인을 괴롭게 하는 사람이 제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우리 엄마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내가 겪어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의로 나에게 무언가를 좋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고마워하면 그만이다. 악의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그 사람을 미워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선의로 나를 괴롭게 만드는 사람은 정말 대하기가 어렵다. 고맙지도 않은데 미워하면 내가 나쁜 놈이 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니까. 가스라이팅의 기본적인 방법 중에, 상대에게 나의 룰을 강요한다음, 상대가 거부하면, 너를 위해 그런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매몰찰 수 있냐며 상대의 동정심에 호소하여 따르게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와 비슷한 맥락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이런 방식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도 어느 순간부터 남들에게 호의를 베풀 때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저 사람이 나의 이런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게 맞는지, 혹시 내가 그저 내 방식대로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어놓고 상대는 괴로울지언정 나만 만족하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지 말이다. 선물 하나를 고를 때도, 최대한 상대에게 맞춰서 선물을 주려고 한다. 취향을 타지 않으면서도 필요할만한 것으로. 정 고를 수 없으면 현물로라도. 선물 그 자체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원치도 않은 흉물스러운 장식품을 받았다고 쳐보자. 그러면 그 장식품은 선물로 받은 거라 버릴 수도 없으면서, 우리 집에 남아 끝까지 내 신경을 건드리는 그런 애물단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선물을 고를 때도 너무나도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다.


쓸데없는 선물 교환하기는 재밌기라도 하지


  다시 저 위의 얘기로 돌아가서 '만약 누군가가 선의를 가지고 행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된다면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까?'에 대해 법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있다. 법에는 '과실치사'와 '과실치상'이라는 게 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을 때의 법이다. 그리고 법으로 그에 따른 형량과 벌금을 정해놓고 있다. 다만 실제 살인 또는 상해에 비하면 가벼운 형벌이다. 따라서 법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잘못을 한건 잘못을 한 거니
처벌을 받아라.

단,
 네가 악의로 그런 것은 아니니
처벌은 약하게 해 주겠다.


2019년에는 빵집에서 70대 할머니에게 문을 열어드렸다가 할머니가 쓰러져 돌아가시는 바람에 과실치사로 잡힌 30대가 있었다.  결국 기소유예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래서 만약 내가 저 영화나 웹툰의 남편이라면 아마 아내에게 이렇게 말할 듯싶다.


가족을 위해서든 뭐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정상참작은 해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당신의 잘못이
사라지거나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심지어 수단이 나빴으니 더더욱.

억울해할 것도 없다.
당신의 판단과 의지로 행한 일이니까.

귀엽지만, 벌은 받자







  하지만 그럼에도 '운이 나빠 결과가 안 좋았을 뿐 그래도 가족을 위해서 그런 건데 너무 매몰차다.', '가족끼린데 좀 봐줘라'라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래서 더더욱
상대가 원치 않는 호의를 베푸는 게
나쁘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나빠지면,
'선의'라는 이름아래,
베푼사람은 피해자가 되고
피해를 입은 사람이 오히려 가해자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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