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거리'에서 증산(甑山)으로

동구 골목투어 1 (범일동, 좌천동)

by 정순동


부산 원도심 골목투어를 시작하며


랜드마크. 한 도시를 대표하는 표상이 되는 대규모 건축물을 보통 랜드마크라 부른다. 부산은 부산타워, 영화의 전당, 광안대교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대규모 건축물은 지역 주민의 일상적인 삶과 다소 거리가 있다.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살아온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골목길은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정직하게 기억하고 있다. 낡고 오래된 골목길에서 부산의 표상을 찾아볼 생각이다.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건축적 공간으로 낡고 작은 규모의 건물이 밀집한 원도심을 주목하게 된다. 첫 번째 걸음으로 길 친구인 아내와 내가 자란 동구를 잡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친구의 거리'를 찾아서


새해 첫날, 도시철도 1호선 범내골역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이 지역은 부산진구 범천동이지만 범(汎) 범일동(凡一洞)이라 할 만큼 '범일'이라는 지명이 혼재한 곳이다. 나의 기억으로는 이곳을 범일동이라 하면서 자랐다. 1959년 동구 범일4동을 부산진구에 편입시키면서 범천 1동·범천 2동·범천 3동으로 개칭(한국 향토문화대전 참조)하였기 때문이리라. 내가 부산진초등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이 길을 걸어서 등하교했다.

옛 범일역

폐역이 된 동해남부선 범일역으로 연결되는 범일지하도를 들어선다.

그냥 '굴다리'라고 불렀다. 그 위로 철로를 건너는 범일과선교가 지나간다. 5,60년대 굴다리 안과 앞뒤의 길가에 장이 섰다. 좌판을 펼쳐 놓은 상인과 고객, 범일역 승객으로 항상 붐볐다. 이 길을 거쳐야 학교를 간다. 굴다리시장을 지나다가 실과 시간에 사용할 주판을 도둑맞은 적이 있다. 도시락을 사기 당하기도 했다. 살기가 각박하여 배 고픈 사람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굴다리시장 입구는 아파트로 변했다. 이곳에서 경부선과 동해남부선이 갈라진다. 서쪽으로 철로, 동쪽으로 범일로를 두고 사이에 낀 마을로 도심지지만 개발에서 소외된 곳이다.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우리는 이 길을 용케도 잘 찾아다닌다.


철길을 오른쪽에 두고 나란히 난 길을 걷는다. 지금의 현대백화점 부산점 쪽으로 조금 걸으면, 밀양상회를 만난다. 60년 전에도 있던 가게다. 건물은 완전히 바꿨다. 주변의 위치로 볼 때 아침마다 동생을 업고 과자를 사러 다니던 그 구멍가게가 틀림없다. 밀양상회를 감아 돈다. 범일로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또다시 미로의 연속이다. 이 즈음에 친구 무근이의 집이 있었다.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포기한다. 동네는 그대로인데 집은 옛 모습이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4.19가 일어났다. 수건으로 이마를 질끈 동여맨 시위대와 함께 마산 시위에 참가한 땅콩의 집도 이 근처에 있었다. 나보다 한두 살 위인데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고 별명만 생각난다. 아무튼 그날 동네가 발칵 뒤집어졌다.

나는 땅콩이 신암로 서면지구대 근처에서 시위대가 탄 신흥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땅콩 엄마는 밤늦게까지 아이를 찾으려 다녔다. 나는 '마산 가는 버스를 타는 땅콩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왠지 내가 야단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땅콩은 다음 날 어른들의 보호 아래 무사히 돌아왔다.

내가 살던 골목

골목골목을 헤매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때 살던 집을 겨우 찾았다. 골목의 왼쪽, 뒤에서 세 번째 집이다. 집은 달라졌지만 골목은 그대로다. 골목의 끝에 있던 메리야스 공장(지금은 빌라가 들어섰다)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던 곳이다. 여기서 살던 때를 회상한다. 추석날 아침 엄청난 피해를 안겨줬던 사라호 태풍이 닥쳤다. 4.19 혁명도 5.16 쿠데타도 대문 옥상에 올라가서 지켜봤다. 이 동네는 도시재생보다는 재개발 쪽으로 방향을 잡은 모양이다. 곳곳에 붉은 페인트로 '철거'를 써 놓았다.

다시 돌아 나온다. 밀양상회 앞에서 남쪽으로 가던 길을 조금 더 간다. 태극기를 제작하던 화랑 염직(지금의 현대백화점) 뒤쪽 사거리다. 왼쪽 길은 옛 조선 방직으로 가는 길이고, 바로 가면 국제고무공장 노동자들이 출퇴근하던 길이다. 오른쪽은 육교 가는 길이고.

경부선 철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구름다리'라고 불렀다. 부산에서 처음 생긴 육교다. 근처에 조방 앞의 평화시장ㆍ자유시장ㆍ부산진시장이 있고, 국제고무ㆍ삼화고무와 크고 작은 섬유공장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았던 곳이다. 육교가 생기기 전에는 철로 밑의 개천 가장자리로 허리를 굽히고 지나다녔다. 찹쌀 도넛을 파는 빵집과 삼겹살집 사이에 우리가 할뱃집이라 부르던 분식집이 있었다. 영화 <맨발의 청춘> (1964년)에 '아가리'역으로 출연하여 인기를 모았던 트위스트 김과의 개인적 인연을 자랑하던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집이다. 냄비우동과 유부초밥이 맛있었다.

부산에서 처음 생긴 육교, 구름다리

이 길을 '친구의 거리'라 한다. 2001년 영화 <친구>를 촬영한 장소다. 계단에 유오성, 장동건, 정운택, 서태화가 교복을 입고 골목을 누비며 뛰어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영화의 장면과 나의 학창 시절 구름다리가 오버랩된다. 삼일극장, 구름다리, 조방 앞을 영화의 주무대로 삼았다. 곽경택 감독이 동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동기가 되지 않았겠는가.

구름다리에 올라서면 철길가에 빽빽하게 들어선 작은 집들이 보인다. 친구의 거리는 영화 촬영지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점점 사라져 가는 산업화 과정의 부산 모습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장소로 남아 향수를 불러온다.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기찻길

기찻길은 놀거리가 빈약했던 시절의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였다. 철로 위에 큰 못이나 병뚜껑을 올려놓고 담벼락에 걸터앉아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튕겨 나가지 않고 납작하게 눌러지도록 기대하면서. 기차가 지나간 후, 재빨리 담장을 내려가 확인한다. 칼날같이 날카로워진 못을 들고 나올 때의 뿌듯함이란 형용하기 어렵다. 아이들은 이를 이용하여 썰매 날을 만들었다.

그러다 미군 군용 열차가 지나가면 주먹으로, 다리로, 머리로 연신 감자를 먹인다. 아이들 눈에도 점령자의 오만함이 보였는지, 아니면 막연한 이방인에 대한 조롱인지 유독 미군에게만 감자를 먹였다.

범곡교차로 쪽으로 구름다리를 내려선다. 에어컨 실외기를 빼면 50년의 세월이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춰 섰다. '산성 얼음 막걸리 대포 한잔 + 삼색나물 = 1,000원'이라고 적힌 간판이 이색적이다. 이색적인 간판이 그것만 아니다. 그 옆집은 '책방 보살'이라는 신점, 사주, 궁합을 보는 집이다. 또 그 옆집은 골동품 가게다. 은수저, 금이빨도 산단다. 가게 앞은 골동품 전시장이다. 얼마 전까지 사용하다 버린 물건들을 다 모아 놓았다. 요즘 아이들은 안경을 잃어버려도 찾지 않는다. 다시 사면되니까. 그런데 누가 이런 물건을 사는지 궁금하다. 아예 '옛날이야기'라는 간판을 걸어 놓았다. 제법 흥정하는 손님이 있다.


범곡교차로. 이 일대를 교통부라 불렀다. 지금의 한성 기린아파트 자리에 한국전쟁 임시수도 시절 피란 정부의 교통부가 있었다. 그 인근에 삼일극장과 삼성극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도로 확장으로 사라졌다. 범곡 교차로 근처에 있었던 보림극장도 철거되어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선다. <그 하늘에도 슬픔이>, <울고 넘는 박달재>를 보기 위해 줄을 섰던 영화의 거리는 철거된 극장 벽면에 게시된 '동구 영화 촬영지' 사진과 포스터로 그 흔적만 유지하고 있다.



함 팔러 가던 길


범일골목시장을 지나면 산복도로가 시작된다. 망양로다. 이름 그대로 부산항을 바라보며 사는 동네가 좌천동, 수정동, 초량동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발걸음은 보림극장 터 옆의 골목으로 들어선다. 할매국밥집은 코로나로 외식을 꺼려하는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동구의 대표적인 맛집인 할매국밥집은 점심때가 늦었음에도 늘어선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할매국밥집

국밥집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선다. 무덕관이 있던 길이다. 도장에서 수련하는 모습을 구경하려 자주 갔던 곳이다. 검도였는지 합기도였는지 아니면 유도였는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심도라고 했던 것 같다. 무덕관 마당 한편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도장 바닥에는 다다미가 깔려있었고, 기와가 올려진 건물은 천장이 높았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본다. 근처에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데 정확한 장소를 찾질 못하겠다.

도장 옆에 D소주공장 사장 집으로 알려진 대 저택이 있었다. 건물의 크기로 봐서 지금의 옛 고을 아파트쯤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범곡로인 이 길은 당시에는 부촌이었다. 범일교회는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무슨 회사 사장 집이라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교회 대각선 맞은편 집도 그대로 남아 있다.


비탈길을 올라간다. 개천을 복개하고 개천 위에 있던 집들은 철거되어 길이 넓어졌다. 성탄절, 부활절이 되면 빵을 얻어먹으러 가곤 했던 부일감리교회도 개축하여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교회 주변의 집들이 철거되고, 운동기구가 설치된 쉼터가 생겼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간다.

아내가 결혼전까지 살던 집터.

아내가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 산 집터다. 내가 범일동, 수정동의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유소년기를 보냈다면, 아내는 이곳에서만 28년을 살았다. 내가 장가들 때 친구들이 함을 팔러 갔던 아내가 살던 옛집은 헐리고 이층집으로 바뀌었다.

함이 가던 날, 이 골목은 떠들썩했다. 함을 팔러 온 친구들이 구경꾼을 불러낸다.


"함 사세요, 하암"


함잡이는 신부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골목을 어슬렁거린다. 이집저집 기웃거리며 골목 안까지 들어간다.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구경한다. 신부집에선 애가 탄다.


"함 살 집은 이 집인데 어디 갑니꺼?"


능글맞은 함잡이는 객쩍은 소리를 하며 능청을 떤다.


"어데 함 살 집이 그 집뿐이요."


장가들던 날의 추억이 서린 길이다. 아내와 나의 새 출발을 지켜보았던 골목을 이곳저곳 살핀다, 혹시 기억에 남은 것이 있는가 하고. 운동기구가 놓여 있는 골목입구는 경사진 언덕배기였다. 아이들이 미끄럼 타고 숨바꼭질도 하던 놀이터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6개월 정도 살다 간 집도 이쯤에 있었다. (아내를 중매로 만났는데 만나고 보니 잠깐이지만 한 동네에 살았던 이웃 사람이었다. 물론 서로 기억은 못했다.) 뒤편의 친구 용준이 집은 옛날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앞의 빈터에 우물이 있었는데 메워졌다.



등굣길을 따라 증산을 오른다


교회 앞부터 윗동네는 집들이 철거되었다. 좁았던 골목이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어져 망양로로 이어진다. 옛 길의 정경을 기억 속에서 그려 본다.

동네 사람들은 교회를 경계로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구분하였다. 우리 동네도 고지대이면서 그 윗동네를 산동네라 불렀다. 아이들은 윗동네, 아랫동네로 패를 나누어 동네 싸움을 벌였다.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고 연탄재를 던지며 전쟁은 격렬해진다. 동네 싸움은 놀이였다. 전쟁놀이다.

싸운 다음날 함께 손잡고 학교 가던 길이다. 골목은 거미줄 같이 엉켜 있어 미로다. 오늘은 새로 난 길을 놓아두고 학교 가던 좁은 옛길을 선택한다. 요즘 이 동네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가 보다. '국제 무료법률상담' 안내 쪽지가 담벼락에 붙어 있다.

아내의 친구 군자네 집

아내의 친구 군자네 집이다. 가겟집이었다. 아내는 하굣길에 그 앞 계단에서 군자, 옥희, 상애, 명희와 함께 놀던 기억을 되살린다. 다들 어떻게 사는지 한번 만나 보고 싶어한다.

망양로로 올라선다. 옥상을 주차장으로 이용한다.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한 집도 여러 채가 보인다. 도로가 넓어지니 지나온 좁은 골목의 동네보다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노후주택 문제와 집수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동구에 거주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비영리법인 마을 공동체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깨끗하게 리모델링된 집이 보이고, 공사가 진행 중인 집도 제법 있다.

등하굣길

매일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렸다. 길 동무인 아내는 웬만한 등산길보다 더 가파른 치받이 길로 등교하던 초등학교 시절을 잊지 못한다. 정문을 남쪽으로 옮겨서 등굣길 경사가 한결 완만해졌다.

한국전쟁으로 거의 산 정상까지 피란민들이 몰려들어 학생수가 증가하였다. 좌성초등학교는 1953년 성남초등학교와 수정초등학교에서 분리되어 개교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생수 부족으로 2021학년도부터 인근 범일초등학교로 병합될 예정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에 마지막 기념촬영을 한다. 높은 곳에 위치해 등교할 땐 힘들었지만, 부산항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일품이었던 학교다.

'동녘 빛 누리는 구봉 산성 터 / 뭍바람 바닷바람 조화 이루어 / 드높은 삶의 보람 샘이 솟는 곳'

좌성초등학교는 이제 67년 역사를 뒤로 하고 이름을 내린다.

폐교된 좌성초등학교(위), 동물원을 짓다만 곳에 들어선 도서관과 공원(아래)

좌성초등학교 뒤의 산 정상에 증산공원과 동구 도서관이 있다. 그 밑 언덕에는 동물의 조형물이 보인다. 한때 여기에 동물원을 짓다만 건축물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언덕배기의 동물 조형물이 이와 같은 사실과 연관이 있을 법하다. 우여곡절 끝에 1986년 12월 건설부에서 증산공원으로 지정하였고, 각종 체육시설과 둘레길, 도서관을 갖추고 있다.

증산공원으로 가보자. '경사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쉽게 올라간다.

증산(甑山)은 좌천동을 형성하고 있는 (수정산에서 떨어져 나온) 해발 130미터의 독립된 야트막한 산이다. 증산을 시루같이 생겼다 하여 시루(甑) 대(臺)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 증산을 깎아 부산포 앞바다를 매립하는 바람에 산의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의 첫 전투가 벌어졌던 부산진성이 있던 곳이다. 성이 함락되자 왜군은 기존 성축을 허물고 석재를 이용하여 왜성을 축조하였다. 이를 증산왜성이라 한다.

증산왜성과 전망대(위), 전망대에서 본 부산항(아래)

전망대에 올라 부산항을 바라본다.

사진은 실제 보는 것보다 못하다. 확 트인 전망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동구 산복도로의 마을은 재개발하면 안 되겠다. 조망권을 살려 도시재생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정답일 것 같다.


동구 골목투어 2에서 부산포 개항 가도를 따라 좌천동 정공단길를 지나서 매축지로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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