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말 매달 4일과 9일에 부산장이라는 5일장이 서다가, 1913년 상설시장으로 바뀐다. 부산진성 인근이라 부산진시장이 된다. 그냥 진시장 또는 범일동시장이라고 많이들 부른다. 포목, 주단, 한복, 의류 등의 혼수 도매시장으로 특화된 종합시장이다. 경남, 경북, 전남까지 상권이 미쳤다. 그후 중심가는 다극화된다. 대형 복합 쇼핑몰, 백화점이 쏙쏙 들어선다. 부산진시장의 상권은 점점 위축된다. 인터넷 쇼핑몰 등 온라인 거래로 소비 패턴이 변화하여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육교는 2021년 7월 버스전용차선 공사로 철거되었다.
아내에게 부산진시장은 되돌아볼 추억이 많은 곳이다. 한국전쟁 때 황해도 안악에서 피란 온 부모님은 이곳에 자리을 잡았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어머니가 옷가게를 운영하면서 4남매를 키운 부산진시장, 이제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기억하는 이웃도 없는 옛 가게 앞에서 지난날을 회상한다. 남다른 감회가 있을 만 한데 아무 말이 없다.
진시장로 건너편에 1947년 국제고무공장으로 출발한 국제상사가 있었다.국제고무는 '왕자표 고무신'으로 유명한 신발생산업체였다. 1960년 큰 화재가 나서 어려움을 겪지만 국제화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왕자표 운동화'를 생산하여 재기한다. 1973년 다시 사명을 국제상사로 바꾸고 주식을 상장한다. 1981년 자체 브랜드 '프로스펙스'를 개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국제상사는 재계 서열 7위의 국제그룹으로 성장한다. 승승장구하던 국제그룹이 신군부와의 불화설로 어려움을 겪다가 급속도로 사세가 기울어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국제화학 신발제조 작업장(출처: 정부기록보존소, 1965년)
옛 문현선 철길가로 한복집과 금은방이 몰려 있었다. 금은방은 대부분 자유시장 쪽으로 옮겨갔다. 한복집은 몇 집이 있지만 교차로 건너 자성대 주변에 산재해 있다.
부산의 뿌리, 부산포
부산이란 지명은 부산포에서 유래하였고 한다. 지금의 좌천동 앞바다의 포구가 부유할 부(富) 자 부산포(富山浦)였다. 성종 때부터 가마 부(釜) 부산포(釜山浦)로 바뀌었다고 본다. 그 경위는 이렇다. 원래 좌천동 일원에 있던 가마처럼 생긴 작은 산을 부산(釜山)이라고 불렀다. 부산(釜山) 아래 있는 포구, 부산포(釜山浦)란 것이다. 부산포(釜山浦)로 지명이 정착되어 가자, 혼돈을 피해 산 이름을 비슷한 뜻의 증산(甑山)으로 바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부산포가 발전하기 시작하여 영역을 넓혀 간다.
일제강점기 1914년 3월 1일 지방제도 개편이 있었다. 이때 부산부가 등장한다. 당시의 부산부는 지금의 중구, 영도구, 동구, 서구, 남구의 용당동을 포함하였다. 개항기의 일본인 전관거류지와 그 인근 지역이 부산부가 된다. _ 최해군 《부산 7000년, 그 영욕의 발자취》 2권, 160-161쪽
일제강점기 1914년 동래군과 부산부의 지도
부산진성(자성대)
부산진성 서문인 금루관로 간다. 일제강점기 시가지 정비계획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1974년 부산진성 정화사업 때 건춘문(동문), 진남대와 함께 복원되었다. 서문에는 돌기둥 2개가 서 있다. 부산시 기념물 제19호인 '부산진성 성곽 우주석'이다.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왜적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원래 서문의 위치인 성남초등학교 교정에 있던 것을 1974년 서문(금루관)을 현재의 자리에 복원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남효인후': 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하는 남쪽 국경이다.
'서문쇄약':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다.
금루관(위), 부산진성 서문 성곽우주석(아래)
아래 사진은 자성대에서 바라본 서쪽의 증산과 부산진시장 전경이다. 사진 중앙의 높은 축대 위의 가로로 긴 건물이 좌성초등학교이고, 뒤편 숲이 우거진 곳이 현재의 증산공원이다.
부산진성은 우리나라 동남해안을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로 경상좌도 수군사령부가 주둔하던 곳이다. 성종 21년(1490년) 증산 기슭인 지금의 정공단 인근에 성을 쌓았다.
임진왜란 때 성이 함락된다. 점령한 왜군은 부산진성을 파괴하고, 증산 정상에 본성인 증산왜성을 축조하고 동남쪽 해안이었던 이곳에 보조 성인 지성을 쌓았다. 임란 후 조선 수군은 진을 지성으로 옮겨 이를 부산진성으로 사용했다. 원래 부산진성에 딸린 성이라 하여 자성이라 불렀다.
부산진성은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지킨 선열들과 조선수군 5백 년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자료 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부산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하였다.
부산진성에서 본 증산과 부산진시장 전경(위), 부산진성(아래)
자성대에는 400미터의 둘레길이 있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바퀴 돌아본다.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와 관련이 깊은 영가대를 만난다. 지나온 매축지의 본터에서 소실된 영가대를 2003년 이곳에 복원하였다.
북문 쪽으로 돌아오면 최영 장군 사당이 있다. 부산 연해 각처에서 왜구를 물리친 장군의 고마움을 하나의 신앙으로 승화시켰다. 장군의 영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신다. 매년 단오에 지역 주민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북문에서 자성대 정상으로 올라간다. 정상 부분에 세워져 있는 진남대(부산진성 남문)는 장군의 지휘소, 장대였다. 1974년 부산진성을 정비하면서 2층, 정면 5칸, 측면 4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진남대 옆에 명나라 장수 천만리의 기념비가 서 있다. 임란과 정유재란 때 아들과 함께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회군할 때 명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귀화하였다. 일제강점기 철거된 것을 해방 후 1947년에 다시 세웠다.
정상에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솔가지로 만들어진 길짐승의 우리도 있다. 다시 북문으로 내려간다. 자성대 북문 근처에는 재봉털 가게인 미싱사가 집중되어 있다.
복원된 영가대(위 왼쪽), 최영 장군 사당(위 오른쪽), 진남대(아래)
옛 조방터
조방터는 조선방직공장 터를 줄인 말이다. 조선방직공장은 1917년 세워진 부산 최대의 공장으로 종업원이 3,200여 명이나 되었던 큰 기업이었다.
범일동 지역은 일제강점기부터 조선방직을 중심으로 섬유공업이 발달하였다. 범일로 건너편 현대백화점 자리의 옛 화랑염직 등크고 작은 섬유공장과 염색공장이 밀집해 있었다. 인근에 부산진시장, 국제고무공장, 삼화고무공장이 함께 있었으니 유동인구가 많았던 지역이다.
일제강점기의 조선방직 파업, 4.19 혁명, 부마항쟁, 6월 항쟁 등 역사의 고비마다 항쟁의 중심지가 되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1969년 7월 부산직할시가 법인 청산 절차를 밟아 조선방직을 공식 해산시키고 범일 지역 재개발에 나서 오늘의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아래 사진은 1965년 좌천 고가교 공사 당시 조선방직과 자성대 일대의 모습이다. 가운데가 자성대, 그 위로 부산항 5부두, 매축지, 성남초등학교, 부산진시장이 차례로 보인다. 오른쪽 아래 기다란 건물들이 조선방직 공장이다.
옛 조선방직 일대의 전경 (출처: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지금의 신한은행 근처 범일로에 금성극장이 있었다. 삼촌이 종종 나를 데리고 서부영화를 보러 갔다. 삼촌이 중학교 삼 학년, 내가 초등학교 이 학년 때였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삼촌은 나에게 먼저 집으로 가란다. 만약 자기가 잡히더라도 집에 가서 얘기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합동교외지도반이 극장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까 삼촌은 어깨를 잡는 교외지도반의 손을 떨치고 달아난다. 모자는 손에 움켜쥐고. 집에서 만난 삼촌은 "내 명찰을 잡았으면 꼼짝없이 잡히는 건데"라고 말했다. 어린 내가 보아도 이상했다. '청소년 입장 불가'인데 초등학생인 나는 그냥 통과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들어갈 땐 단속하지 않고, 나올 때 단속하는 것은 또 뭐고.
조방터는 방대했다. 남쪽 자성대 공원 건너편 KT범일타워, 공무원연금공단 부산지부에서부터 북쪽 자유시장과 평화시장이 들어선 자리까지, 동쪽 동천 옆의 시민회관에서부터 서쪽 도시철도 범일역까지의 넓은 지역이 옛 조방 터다.
땅이 넓은 만큼 조방이 부산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도 컸다. 조방을 빼고 범일동을 이야기할 수 없다. 70년대에는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 시교육청도 여기에 있었다. 현재도 시민회관, 각종 관공서, 호텔, 오피스텔, 예식장, 아파트, 자유시장, 평화시장 등이 들어서있다.
옛 조방터
최근 보도가 넓어지고, 보도블록도 깔고, 나무도 심고, 새 단장을 했다. 거리가 깨끗해졌다. 코로나 때문인지 거리에 차량과 다니는 사람은 확실히 적다.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쭉 가면 자유시장, 평화시장, 조방낙지 골목, 귀금속 상가가 나온다. 범천동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범일동, 좌천동 골목투어는 여기서 마친다.
우리가 살던 마을을 거치다 보니 동구에서 제시한 부산항 개항가도 탐방길을 역방향으로 걸었다. 참고로 자성대에서 출발하여 매축지, 증산, 웹툰 이바구길, 성북고개, 이중섭거리, 누나의 길, 친구의 거리, 조방 앞으로 걷는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