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의 터로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오대산 중대의 적멸보궁이 제일이며, 낮은 산지에서는 통도사의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이 제일이다.'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사리를 봉안하고 월정사 적멸보궁을 창건하였고, 상원사는 705년(성덕왕 4년)에 보천과 효명 왕자가 지은 절로 처음에는 진여원이라 하였다. 상원사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불렸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황폐화되었던 절터에 1376년(우왕 2년)에 가람을 새로 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시대 억불정책의 구조 속에서 왕조의 보호를 받으며 이 절은 더욱 발전한다.
상원사 가는 길
관대걸이. 들머리부터 세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관대걸이는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대천 계곡에서 목욕을 하면서 의관을 걸어 두었던 곳을 기념하여 후대에 만들었다고 한다.
관대걸이(좌) / 수령 250여 년, 수고 14 m, 가슴 높이 지름이 4 m인 잎갈나무(우)
태종과 세조는 조선 초기 피비린 나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점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조카, 동복형제, 충신 등을 죽이고 집권한 두 사람은 많은 괴로움에 시달렸던가 보다.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려 불교에 의지하고 상원사를 태종과 세조의 원찰로 삼는다. 원찰(願刹)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던 법당'이다. 죽이고 명복을 비는 것은 '병 주고 약 주는' 격이지만, 아예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못하거나 괴로움을 술과 무속에 의지하는 사람보다는 나은 것 같다.
상원사 가는 길에는 전나무, 소나무 외에도 잎갈나무, 가래나무, 단풍나무, 들메나무, 주목 등의 상록 교목, 활엽 교목과 관목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잎갈나무. 관대걸이 옆에 250년 된 잎갈나무 보호수가 서 있다. 대부분의 침엽수와는 달리 낙엽 침엽 교목이다. 강원도 백두대간(금강산 이북)이 원산지로 추운 곳에서 자라 남쪽 지방에서 보기 힘든 나무다. 소나무과에 속하며 , 꽃말은 용감, 대담, 호탕, 방약무인(傍若無人) 등이다.
가래나무. 소백산, 속리산 이북에서 자라며, 가래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꽃말은 '지성'인 가래나무는 윤기가 나고 회갈색 빛을 띤 나무껍질은 세로로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기 하고 깃꼴겹잎이다.
가을의 단풍. 녹색의 싱그러움이 눈을 시원하게 하는 상원사 가는 길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아직 철이 이른다. 붉은 단풍나무와 초록의 나무가 어우러진 '번뇌가 사라지는 길'은 다가올 적멸보궁 오르는 길을 예고하는 듯하다
숲길을 지나면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예술적 감각이 없는 필자가 봐도 범상치 않은 필치로 쓴 '상원사' 현판 아래,
천고(千古)의 지혜(智慧), 깨어 있는 마음
또 그 아래로 들어서니,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이 뭣고? (나는 누구인가?)
상원사는 난치병으로 고통받던 세조의 쾌차를 기원하는 신미대사의 발의로, 제자 학열에 의해 1465년 중건되었다. 억불정책을 펴온 조선왕조의 보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이 절은 1946년 실화(失火)로 건물이 전소된다.
문수전. 1947년 당시 월정사 주지가 전면 8칸, 측면 4칸의 ‘ㄱ’ 자형 전각을 새로 짓는다. 한국전쟁 때 후퇴하던 아군들이 절을 불태우려 하는 것을 당대의 고승 한암이 절을 지켜내어 전화를 면하고 오늘에 이른다.
상원사는 문수보살상을 주불로 모시는 절로, 문수동자와 세조 사이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세조가 오대천 계곡에서 목욕을 하다가, 숲 속에서 놀고 있는 동자승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하고는, "임금의 옥체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러자 동자승은 "임금께서도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줬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는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또, 세조가 잠자던 중 고양이에 의해 자객의 습격을 피했다는 일화도 서려 있는 절이라 문수전 계단 밑에 고양이 석상이 서 있다.
문화재의 보고, 상원사
상원사는 문화재의 보고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 목조문수동자좌상, 상원사 중창권선문, 상원사 동종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 유물 23점은 보물로 일괄 지정되어 있다. 그중 상원사 중창권선문과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목조문수동자좌상. 세조 12년(1466)에 의숙공주가 세조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만든 목조문수동자좌상은 문수전에 모셔져 있다.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국보 제221호),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탈
계곡에서 만난 동자의 모습을 한 문수보살을 형상화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상원사 동종. 국사 교과서에도 올라있던 상원사 동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 현존하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은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보물) 그리고 이곳의 동종 3구뿐이다. 그중 상원사 동종이 가장 오래되었는데, 조선 초기 안동 누문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 상원사로 옮겼다고 알려져 있다.
상원사 동종 / 통일신라 / 국보 제36호
종을 매다는 위 부분은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모양의 고리가 만들어져 있다. 음통(音筒)은 연꽃과 덩굴무늬로,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는 구슬과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다.
종 몸체의 아래위에 있는 연곽(蓮廓)에는 구름 위에서 무릎 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을 새겼다.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이 잘 갖추어져 있고, 뛰어난 주조기술과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우수한 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리 칸막이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 국보인 진품이고, 오른쪽은 복제품, 왼쪽은 범종에 새겨진 비천상을 양각한 조각상이다.
영산전. 영산전은 1946년 상원사 화재 시, 화마를 면한 유일한 건물로 오대산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영산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4호)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며, 법당에는 석가 삼존상과 십육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영산전에는 해인사의 '고려대장경' 39함이 봉안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존하고 있다.
전각 앞의 소박한 석탑은 천년 세월의 풍파를 당당하게 견뎌내고 있다.
정갈하기 이를 데 없는 요사채 목우당을 지나서 중대 사자암으로 올라간다. (2022.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