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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Nov 01. 2022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

평창 5


번뇌가 사라지는 길


중대 사자암을 오른다. 상원사에서 오대천을 따라 15분 정도 걸으니 돌계단이 시작된다. '번뇌가 사라지는 길'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길이다.

중대 사자암 가는 길

탐방로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어 걷기가 어려운 길은 아닌데, 이어지는 계단이 마음에 부담을 느끼게 한다. 돌계단 옆에 숫자가 쓰여 있다. 1부터 50개 단위로 50, 100, 150 ㆍㆍㆍㆍㆍ 이어진다. ​

언제부턴가 마음속으로 계단수를 세기 시작한다. 집중력이 흐트러져 세던 숫자를 놓치고 다시 센다. 한 구간 50개씩인 계단 수가 적힌 것 하고는 한두 개씩 차이가 난다. 같은 경우도 있지만.

가래터골의 물소리

가래터골의 녹음 사이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와 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우렁차게 들린다. 산기슭에 주목나무가 모여 자라고 있고, 다람쥐가 재빠르게 숲 속을 누비고 다닌다.

주목나무

주목나무. 원산지가 한국의 백두대간의 고산지대,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며 주목과의 상록 침엽 교목이다. 꽃말은 '비애', '죽음'이다.

중대 사자암. 497 개의 계단을 오르면 중대 사자암에 도착한다. 오대산은 자장율사가 중국의 청량산과 산세가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화엄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찾은 곳이다.

중대 사자암

오대(五臺)란 관세음보살을 관음암(동대), 대세지보살을 모신 수정암(서대), 미륵보살을 모신 미륵암(북대),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암(남대), 비로자나불을 모신 사자암(중대)의 다섯 사찰에서 유래되었다.

중대 사자암 전경 / 사진 출처 : 성보 박물관

중대 사자암과 태종. 피바람을 일으키며 정권을 잡은 태종은 그 과정이 마음에 걸렸던지 1401년(태종 1) 봄 권근(權近)에게 중대에 사자암을 중건하게 하고, 그 해 겨울 성대한 법요식과 낙성식을 베풀었다. 태종은 “죽은 이의 명복을 빌고 후세에까지 그 이로움이 미치게 하여, 남과 내가 고르게 불은(佛恩)에 젖고 함께 의지하기 위함이라"라며 중대 사자암을 원찰로 삼았다.

비로전

중대 사자암은 경사가 심한 비탈에 계단식으로 지어진 절이다. 본전인 비로전에는 1만 분의 문수보살과 비로자나불이 사방 벽면에 조각되어 있다.

비로전 벽화

또 외벽에는 1.4 후퇴 시 상원사를 불태우려는 군인들을 (불보의 수호를 위해) 설득하는 한암 스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



적멸보궁 가는 길

사자암 종무소에 들러 기와 불사하고 적멸보궁으로 향한다. 비로봉을 향하여 15분 정도 오르면 적멸보궁이 있다. 계단의 숫자는 다시 1번부터 매겨져 있다. 이번에는 정신 바짝 차리고 카운트한다. 숫자 세기에 몰입한다. 같은 경우가 더 많지만 역시 한두 개씩 다른 경우가 나타난다. 내가 잘 못 헤아린 것인지 애초에 잘 못 적힌 건지 모르겠다.


뒤따라 오르는 스님을 기다려, 어떤 심오한 뜻이 있는가 하고 우문을 한다.

"스님 계단에 씐 숫자가 계단 수와 다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계단 수를 세면 힘들지 않고 금방 오릅니다. 적멸보궁까지"


돌계단을 따라 석등들이 설치되어 있고 개구쟁이 모습의 동자승 인형들이 늘어서 있다. 돌계단 옆의 석등 안에서는 적멸보궁을 오르는 내내 스님의 염불소리가 울려 퍼진다.

적멸보궁 가는 길에 만난 까마귀

비로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눠지는 삼거리에 쉼터가 있다. 계단에 매겨진 숫자는 610번이 마지막이다. 요즘 들어 부쩍 체력에 자신감을 가지는 아내도 천 개가 넘는 계단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헐떡거리며 뒤처져 오면서 까마귀와 대화를 한다.

적멸보궁 가는 길에 만난 까마귀는 사람을 겁내지 않는 것을 넘어 아예 동행을 한다. 아마 탐방객들이 주는 먹이에 맛을 들인 모양이다.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


또다시 백여 개의 계단을 올라 드디어 중대 적멸보궁에 들어선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모셔온 진신사리 오대 봉안처의 한 곳이다.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 전경 / 사진 출처 : 성보 박물관

적멸보궁(寂滅寶宮, 궁은 전이나 각보다 위계가 높음)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러운 궁전이란 뜻이다. 적멸보궁 전각의 불상이 놓이는 자리에는 큰 방석만이 놓여 있다. 조금 전 함께 올라온 스님이 불경을 외고 있다.

적멸보궁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의 겹처마 집이다. 보물 제1995호로 지정된 이 전각의 가장 큰 건축사적 특징은 내·외부가 이중으로 된 불전이란 점이다.

건물 내부에 또 다른 정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이 있다. 이것은 국내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구조로, 내부와 외부의 건물이 시대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적멸보궁 마애석탑

적멸보궁 뒤편으로 돌아간다. 신도가 배흘림기둥 옆에 매트를 깔고 앉아 스님의 불경 소리를 들으며 기도하고 있다. 비로봉 자락이 흘러내려 봉긋하게 언덕처럼 솟아오른 진신사리 봉안처 앞에 이를 알리는 작은 마애 석탑이 서 있다. ​



상원사로 통하는 다른 길


올라갈 때 못 본 길이 내려올 땐 보인다. 상원사로 통하는 다른 길이 있다. 등고선을 따라 산허리를 돌아내려 가는 흙길이라 걷기가 훨씬 편하다. 비탈의 경사도가 심해지는 상원사 가까이는 나무 계단으로 된 덱 이 깔려있다. 들꽃을 살펴보는 여유도 생긴다.


오리방풀. 줄기 끝과 잎겨드랑이로부터 자라난 꽃대에 보라색의 작은 꽃이 모여 달려 있다. 마디마다 2장의 잎이 마주나기 하며, 모양은 계란형으로 가장자리에 거친 톱니가 있다.

오리방풀의 원산지는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다. 꿀풀과 / 산박하 속으로 분류되는 여러해살이풀로 꽃말은 '추억'이다.

이고들빼기. 매채나물, 반아초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고, 한국, 중국, 일본 등지가 원산지이다. 국화과 / 고들빼기 속의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이며 꽃말은 번화함, 북적임, 활기참 등이다.

이고들빼기. 매채나물, 반아초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나무 계단을 내려서면 다시 목우당이다.




월정사, 상원사,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 오대산 사고와 의궤·실록 박물관 등에 대한 유홍준의 답사기가 없다는 점이 의아하다. 여러 권의 책으로 나와 있으니 내가 못 본 것인지, '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는 답사 일정표만 부록에 실려있고 답사기는 없다.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다고 평가하는 것인지, 다른 말 못 할 이유가 있는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애독자로서 궁금하다. (2022.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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