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관문, 부산역과 북항

중구 골목투어 1 (중앙동, 초량동)

by 정순동


매축으로 생긴 새마당


구 한말, 부산항은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일본은 북항을 근대적인 항만으로 조성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매축사업을 벌인다.

제1기는 '북빈매축공사'(1902 ~1908)다. 북항을 일본식 표현으로 북빈(北濱)이라 하였다. 일본인 전관 거류지 동쪽 용미산(현 롯데백화점 광복점)에서 왜관 앞의 해안(지금의 중앙동 일대)에 이르는 얕은 바다를 매축하여 새 땅이 생긴다. 이른바 '새마당' 이다. 부산우체국에서 부산대학병원으로 가는 대청로도 이때 생겼다.

제2기는 영주동 일대에 있던 해발 40미터의 쌍산(雙山, 영선산과 영국영사관산)을 밀어 바다를 메운 '부산착평공사'(1909~1912)다. 착평공사로 평지가 생긴다. 아울러 산을 깎은 흙과 자갈로 해안을 매축한다. 부산도시철도 중앙역에서 초량역 사이에 이르는 새 땅이 생긴다.

두 차례에 걸친 매축사업이 끝나자, 새마당에 항만시설과 부산역·부산세관·부산우체국 등이 들어선다. 이 시설이 부산항의 중추적인 관리기능을 담당한다. 중앙동 일대는 부산의 새로운 중심지가 된다.

새마당 매축 기념비


부산본역의 흔적을 따라가며


IBK기업은행 부산지점 정문 앞에 새마당 매축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마주 보고 '옛 부산역 터'를 알리는 안내판도 서 있다. 중앙동에서 시작하는 부산 원도심 걷기는 우선 부산역의 역사에 대해 정리해 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부산 사람들은 경부선 시·종착역을 부산본역이라 부른다.


초량역 시대

1905년 개통된 경부선은 초량역이 본역이었다. 일제강점기 도쿄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시모노세키까지 기차를 탄 다음 부관연락선으로 환승한다. 부산항에 내린 승객은 초량역까지 이동하여 서울역까지 다시 기차를 타야 했다. 일본은 일본 동경을 기준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노선을 하행선이라 하였다.

일본은 부관연락선에서 내린 승객이 기차로 빠르게 환승하기 위해서 본역을 부산항제1부두와 가까운 중앙동으로 옮기려 했다. 일본인 전관 거류지와도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의 중앙동 옛 부산역 전경 (출처: 부산 동구청 홈페이지)

옛 부산역(중앙동) 시대

경부선 개통 3년 후인 1908. 4. 1. 북빈매축공사로 생긴 중앙동까지 경부선 선로를 연장한다. 중앙동 4가에 임시역사를 마련하여 본역을 이전하고 '부산역'이라 하였다. 하나은행 빌딩과 기업은행 빌딩이 자리한 블록에서 세관 앞의 무역회관까지가 부산역 철도부지였다.

1910년 부산역 역사(驛舍)와 제1부두가 완공된다. 무역회관 근처에 신축된 '부산역'은 1943년부터 '부산부두역'이라고 역명을 개명하였다. 해방되면서 다시 '부산역'이란 이름을 되찾는다. 하지만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역사(驛舍) 전소된다. 이후 1965년까지 가건물을 지어 역사(驛舍)로 사용하였다.

우리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 중앙역 12번 출구로 나온다. '옛 부산역 터'를 알리는 안내판에서부터 부산본역의 흔적을 따라간다. 북항 재개발이 한창인 부두길을 걷는다.

기업은행(좌)부터 무역회관(우)까지의 옛 부산역 부지

부산잔교역(부관연락선 환승역)

충장대로를 따라 세관 건너편 쪽으로 이동한다. 세관 삼거리 무역회관 옆에 폐역이 된 '부산잔교역 터'의 일부가 남아 있다. 제1부두로 들어가던 철로는 여기서 끊어졌다. 담장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다리를 들고 있는 영도다리 에서 보트를 젓고 있는 아버지와 아이의 모습이다.

담장 너머 철로가 보인다. 지금의 철로는 (중앙로를 따라오다가 충장대로로 비스듬히 꺾어져 부산항 제1부두로 들어가던) 예전과는 다르다. 부두길을 따라 설치되어 있다.

본역을 중앙동으로 옮겨왔지만 부관연락선에서 기차로 환승하기에는 여전히 불편함이 남아있었다. 1913년 경부선 종착역인 (중앙동) 부산역에서 선로를 잔교까지 연장한다. 제1부두에 '부산잔교역'을 부설한다. 부산본역 다음 역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운항하던 부관연락선의 환승역으로 경부선의 일부 열차가 이 역에서 출발하였다. 왼쪽 방조제 너머 바다가 보인다. 경부선 - 경의선 - 만주철도로 이어지는 급행열차의 기점으로 이용되다가 1945년 해방과 함께 폐역 되었다. 최근 북항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부산항 제1부두에 '부산잔교역' 역사(驛舍)를 복원하고 있다.

<1910년대 부산 잔교역>, 한국자작권위원회, 출처: 2018년 공유저작물 DB수집


연안여객터미널과 부산본부세관


연안여객터미널이 있는 부산항 제1부두 입구다. 세관, 출입국청, 검역소가 모여 있다. 먼저 만나는 곳이 부산본부세관(이하 부산세관)이다.

부산세관은 1883년 현재의 부산 중구 동광동 2가에서 개업했다. 당시에는 부산해관이라고 했다. 이후 두 차례 이전하여 일본인 건축가 이시다(石田)가 설계한 르네상스 양식의 근대 건축물을 지어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는다. 1908년에 착공하여 1911년에 준공한 옛 부산세관 건물은 러시아산 붉은 벽돌과 함석지붕, 화강암 등의 최고급 건축자재와 당대 최고의 건축 공법을 사용하였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 군사 시설로 사용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부산역전 대화재'의 참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1973년 부산시 지방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된다. 부산세관 새 청사가 완공된 후에도 보존되던 옛 세관 건물은 도로 확장 공사로 철거된다. 1979년 6월 2일, 첨탑만이 남겨놓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북항 재개발사업으로 위치를 옮겨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2026년쯤에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부산 중구 중앙동 부산세관>, 한국자작권위원회, 출처: 2018년 공유저작물 DB수집
공사중인 부산항 제1부두 입구 모습. 가운데 멀리 부산 출입국청이 보이고, 오른쪽 앞 건물은 부산본부세관이다.

부산항여객터미널에 국제여객터미널과 연안여객터미널이 함께 있었다. 2015년 8월 국제여객터미널은 북항으로 옮겨가고 연안여객터미널만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제주를 오가는 카페리 블루스타 1척만 운항 중이다. 부산역과 부산항여객터미널, 북항 국제여객터미널 사이를 10 ~ 20분 간격으로 다니는 순환버스 3대가 있다.

부두길 왼쪽의 부산역 철도부지에 중부산 경찰서가 옮겨올 예정이다. 부두 쪽은 북항 재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제2부두 버스 정류소를 지나간다. 2부두가 있던 곳은 콘도, 리조트 등 휴양시설인 부산 북항 마리나가, 중앙부두가 있던 자리는 힐링 야영장 등 친수공원과 오페라 하우스가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제2부두 재개발공사 현장


부산본역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간다


부산진역 시대

영주터널과 연결된 영주고가교가 위로 지나간다.

1960년대 중반에 '부산항 부두지구 구획정리사업'을 하게 된다. 이 사업의 사전 조치 일환으로 1965년 7월 23일 초량역과 11월 1일 가건물 중앙동 부산역의 영업을 정지한다. 부산진역으로 통합 운영된다. '부산진역'은 그 후 4년간 부산본역의 역할을 한다.

현재의 (초량동) 부산역 역사 주변은 당시엔 다 메우지 못한 바닷가였다. 중앙부두 뒤편의 영주고가교 근처 지역은 물 웅덩이 였다. 1963년 주변 판자촌을 철거하여 연산동으로 이주시키고 매립하였다. 매립지인 현재의 위치에 부산역 건물을 신축하여 1969년 6월 10일 부산본역의 역무를 시작한다.

'부산항 부두 지구 구획정리사업'으로 매립되어 생겨난 부산역 부지
부산역과 국제여객터미널 사이를 연결한 고가교.

부산항 제3부두

부산역에서 국제여객터미널로 연결되는 고가교로 올라간다. 뷰 존에서 부산항 제3부두를 바라본다. 제3부두는 월남전에 파병되는 군인들을 실어 나르는 미군 대형 수송선이 오가던 곳이다. 배가 떠나는 날, 파월장병 환송식에 여러 번 참가하였다.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 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한결같은 겨레 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라며 '맹호는 간다'를 목청 높여 불렀던 제3부두다.

그 후 이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월남전이 미국이 일으킨 부도덕한 전쟁이었다'는 글을 읽고 충격을 받는다. 그런 내가 입대하여 하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월남 철수 부대인 맹호사단에 배치된다. 위병소 앞에 도열한 군악대가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를 연주한다. 어처구니없는 환영을 받고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오른쪽, 배가 정박해 있는 곳이 제3부두이고, 왼쪽 건물이 국제여객터미널이다.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은 부산역 뒤편 제3부두와 제4부두 사이에 새 청사를 마련하여 옮겨 왔다. 3부두의 왼쪽 건물이 국제여객터미널이다. 터미널은 지상 5층, 지하 1층으로 출입국장과 컨벤션센터를 갖추고 있다. 깨끗하고 널찍하게 지어 놓았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탑승객이 없다. 직원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입국장에는 우리처럼 터미널 구경 온 사람만 몇 명 보인다.

그동안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은 정부의 항만정책에 따라 부산 ~ 일본 노선만 운영해 왔다. 총 7개 선사가 대마도, 후쿠오카, 오사카, 시모노세키 노선을 운항했다. 현재는 코로나 확산으로 글로벌 크루즈선사는 크루즈 운항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전광판에 여행 가방 끌고 가는 사람이 나오고, '#배타고 #일본여행 #설렘'이라는 해시태그가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의 노선은 결항이다. 21:00 시모노세키행 하마유 결항, 22:30 후쿠오카행 뉴카델리아는 결항이다.

좋은 날 오면 일본 한번 가자. 배 타고.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출국장

부산역(초량동) 시대

다시 부산역으로 돌아간다.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선상주차장,부산역 대합실, 부산도시철도 1호선로 연결된다. 찻길을 건너지 않고 연결 고가로를 이용하여 바로 연결된다. 아직은 완공된 상태가 아니라, 협성 마리나 G7 아파트의 통로를 이용한다.

1969년 본역은 역사를 신축하여 초량동 부산역 시대를 다시 연다. 한국철도공사 부산경남본부 관리역이기도 하다. 국제여객터미널이 제3부두로 옮겨와 부산역 일대는 명실상부한 부산의 관문이 된다. 부산역 건물은 2004년 경부고속철도 개통에 맞추어 증개축되었다. 최근 북항 재개발 사업과 맞물려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부산역, 도시철도 1호선, 선상 주차장까지의 동선도 에스컬레이트를 이용해 평면으로 연결된다. 그동안 부산역에서 도시철도 1호선의 접근성이 매우 불편했다.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넓은 광장을 통과해야 하였다.

광장도 효율적으로 정비하였다. 부산역 광장은 역사의 고비마다 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하던 민주화의 성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그것이 못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시장이 들어서면 집회를 못 하도록 광장에 주차장을 크게 만들고 분수대와 화단을 만드는 등으로 구조를 변경해 왔다.

국제여객터미널 쪽에서 본 부산역(위), 부산역 전경(아래)

보수산 정상 일대에 충혼탑이 보인다. 충혼탑이 세워져 있는 이 일대의 공원은 대청공원이라 불리던 곳이다. 6월 항쟁 후 부산민주항쟁기념관이 들어섰다. 왜색이 짙은 '대청공원'이란 이름을 '민주공원'으로 변경한다.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공원 명칭 재변경운동이 일어난다. '대청공원'으로의 환원을 끈질기게 주장한다. '대청'이란 이름의 부적절성에 밀려 충혼탑 쪽은 '중앙공원', 민주항쟁기념관 쪽은 '민주공원'으로 분리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있다.


도시철도 부산역을 건너면 청관(상해)거리와 텍사스 거리가 있다. 초량시장과 초량 산복도로 이바구길이 연결된다. 근현대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부산도시철도1호선 부산역이 지하통로로 연결된다(왼쪽), 청관거리(오른쪽)

부산역의 변천을 한번 정리해 보자.
_ 부산본역은 초량역에서 시작하여
_ 중앙동 부산역(이름을 바꾸어 부산부두역, 다시 부산역으로 이름을 바꾸고) 시대를 거쳐,
_ 부산진역으로 통합되었다가,
_ 지금의 초량동 부산역 시대를 열었다.

_ 부산잔교역은 부산본역과는 별개의 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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