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름은 '열운이' '열룬이'로 불렀다. 옛 지명의 유래를 제주도 개벽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탐라의 시조 '고ㆍ양ㆍ 부' 3 신인이 벽량국(금관국)의 세 공주를 처음 만난 곳이 이곳 온평리(열운이) 바닷가인 활로알이다. 혼인지에서 세 공주와 혼례를 올리고 수렵과 농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제주 개벽신화를 형상화 한 조형물이 온평포구에 세워져 있다.
'연 곳' 또는 '맺은 곳(결혼한 곳)'이란 의미를 지닌 '열운이'로 미루어 보아 온평리는 '개벽신화'와 연관된 탐라인의 고향이다. 이 유서 깊은 마을 온평리가 요즘 '제2공항' 건설 문제로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다. 일주서로 도로가에 '제2공항 건설 반대' 깃발이 나붓 낀다. 온평초등학교 담장에 펼침막이 걸려 있다.
온평초등학교 담장에 걸린 제2공항 반대 펼침막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우리 고향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제2공항 추진을 결사반대한다"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 불편한 주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꽃과 나무가 있다. 온평포구 가는 길에 올해도 어김없이 수국이 피었다. 마을 한가운데 퐁낭도 잎이 점차 풍성해지며 시원한 그늘을 제공한다.
수국과 팽나무
제주올레는 27개 코스로 운영되고 있다. 그중에는 내륙을 관통하는 A코스와 해안으로 이어지는 B코스로 나누어져 선택하여 걸을 수 있는 구간이 있다. 3코스와 15코스의 경우다. A, B 둘 중 하나만 걸으면 완주로 인증한다.
2015년에 개장된 3-B 코스는 온평포구에서 시작한다. 성산읍의 온평리·신산리·삼달리·신풍리·신천리를 거쳐, 남원읍의 하천리·표선리 당케포구까지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다. 14.6km로 3-A코스 20.9km 보다6.3 km 짧다.
온평 동포구에서 출발하여 10분 정도 걸으면 A · B코스가 나누어지는 서포구다.
온평 서포구
환해장성
서포구에서 35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온평환해장성이 남아 있다. 아마 올레3-B길이 생기는 데는 환해장성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환해장성은 제주도 해안선 300여 리,120km에 쌓은 돌성을 말한다. 고려 원종 11년(1270) 몽고와의 굴욕적인 강화에 저항한 삼별초군이 탐라에 근거지를 구축할 것에 대비하여 고려 조정에서 쌓은 돌담이 그 시초이다. 곧이어 조정이 우려한 대로 삼별초군이 제주도를 점령한다. 그리고는 고려조정에서 쌓은 돌성을 보완하여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돌성을 구축한다. 비로소 환해장성의 모습을 갖춘다.
환해장성이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가 떠 있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후 삼별초 항쟁이 진압되고 유명무실해졌던 장성을 조선시대에 보수ㆍ증축하여 왜구 침입을 방어하는데 사용하였다. 현재 온평, 신산 등 10개소가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고,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9- 9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온평환해장성
올레는 환해장성을 넘어 해안 돌무더기 길로 이어진다. 자연적으로 생긴 돌무더기가 아니다. 제주 사람들의 피땀으로 쌓은 돌담이 성의 형태로 남은 것도 있고 허물어져 돌무더기로 남은 것도 있다.
용머리동산
올레는 작은 돌더미 동산을 넘어 해안으로 이어지다. 돈나무, 까마귀쪽나무, 둥근잎다정큼나무 등의 활엽 관목들이 뿌리를 내리고 돌무더기를 뒤덮고 있다. 용머리동산이다.
용머리 동산에는 '용머리 일뤠당’이 있다. 이 당은 '돌개'에서 갈라져 모신 당으로 당신은 '허물할망' 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의 부스럼, 피부병을 낳게 한다고 믿고 있다.
용머리 일뤠당
돌 틈 사이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식물들이 있다. 모두 갯가에서 사는 관목과 풀들이다.
암대극. 갯대극이라고도 불리는 대극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노란빛이 도는 녹색 꽃이 술 잔 모양의 꽃차례를 이루며 달렸다. '붙잡고 싶은 사랑'이 있는가 보다. 줄기를 곧게 세우고 주변의 관심을 유도한다.
갯메꽃. 나팔꽃처럼 깔때기 모양을 한 메꽃과의 여러해살이풀, 갯메꽃이 '수줍음'을 타듯 분홍색 꽃을 작은 가지에 한 개씩만 달고 있다. 꽃잎 안쪽으로 5갈래의 흰색 줄이 선명하게 나 있다.
암대극, 갯메꽃, 갯완두, 돌가시나무(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침 도는 방향으로)
갯완두. 나비 모양의 붉은 자주색 꽃이 녹색 줄기 속에 피어 있다. 콩과 여러해살이풀인 갯완두다. 꽃말은 '미래의 기쁨'이고.
돌가시나무. 가시가 많이 난 잔가지를 여러 번 친 돌가시나무가 돌더미 위를 긴다. 그래서 땅찔레라고도 하는 장미과의 반상록 포복성 관목이다. 자신은 가시를 이용하여 이리저리 영역을 넓히면서 꽃말은 '희망'이고, '평화'며, '순진'이다.
갯까치수염(위 왼쪽), 갯강활(위 오른쪽), 온평환해장성 돌길(아래)
돌무더기로 만들어진 환해장성 돌길은 발걸음 옮기기가 불편하다. 조심조심 아래를 바라보며 걷다가 올레 리본을 놓친다. 올레는 돌을 쌓아 만든 해경 초소에서 장성을 내려와 잠시 내륙으로 들어가는데 우리는 계속 들꽃을 살피며 장성을 따라간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해경 초소
길을 놓친 덕분에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본다. 떠 있는 테왁의 숫자는 많은데, 숨비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또 짧고 어색하다. 물장구치며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유연하지 못하다. 아마 해녀 수업을 받는 수련생들인가 보다.
예비 해녀들의 물질 수련 모습
연듸모르숲길
카카오 맵을 보면서 다시 돌아온다. 해경 초소 앞에서 도로를 건넌다. 연듸모르숲길로 들어선다. 소나무, 까마귀쪽나무, 참식나무, 참나무, 홍가시나무, 후박나무, 돈나무가 울창하다.
참식나무, 까마귀쪽나무, 홍가시나무 (아래 왼쪽부터)
키 큰 나무 아래로 예덕나무, 청미래덩굴, 송악, 담쟁이덩굴이 차지하고 있다. 그 아래로 관중, 풀고사리, 천남성이 자란다. 숲을 벗어나니 무 장다리 밭이다.
예덕나무(위), 천남성과 풀고사리
신산환해장성
연듸모르숲길은 온평리와 신산리의 경계선을 따라 나온다. 온평환해장성의 제4지점과 신산환해장성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2021년 가을에 올레3-B길을 역방향으로 걸을 때도 연듸모르 가는 길을 여기서 놓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환해장성에 신경을 쓰다가 한 실수다. 그만큼 올레3-B길은 환해장성이 가지는 비중이 크다고 하겠다.
왼쪽이 온평환해장성이고 오른쪽이 신산환해장성이다.
온평 환해장성이 신산환해장성으로 바뀌어 장성은 계속 뻗어 있다. 신산화해장성의 전체 길이가 600여 미터이며 보존상태도 아주 좋다. 나는 장성 위를 걷는다.
신산환해장성
신산리 해안도 작은 돌무더기가 넓게 펼쳐져 있다.
갯강활이 보초를 서고, 토끼풀이 융단처럼 깔려 있다.
갯강활(위), 토끼풀(아래)
넓게 펼쳐진 검은 응회암에 희끄무레한 지의류가 덮여있다. 세월이 지나면 이끼가 생기고 풀씨가 싹을 틔울 것으로 보인다. 대기오염지표종인 지의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은 대기 청정지역이다.
지의류가 덮은 응회암
바닷바람에 오징어를 말리고 있다. 제주 해변에서 자주보는 풍경이다.
쉬어간다.
오징어 피데기를 구워 맥주 한잔 하는 맛이 그저 그만이다.
오징어 말리는 풍경
커다란 계란 위에 수탉이 올라서 있고,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그 밑에 신산리 지형과 지세를 자랑하는 글이 쓰여 있다. 신산리 해안가는 지형이 아주 낮아 제주 어디에서나 보이는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금계포란형 명당 지형이라고 한다.
천연 담수욕장 만물
만물. 해안은 코지와 코지 사이에 작은 포구처럼 만을 이루고 있다. 원담처럼 생긴 만물에는 양질의 용천수가 솟는다. 천연적으로 생성된 담수욕장이다. 여름에도 5분 이상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물이 차다.
만물 앞의 바다는 다금바리와 민물장어, 우럭 등 어종이 풍부한 마을어장이다.
농개(농어개)는 농어가 많이 들어오는 어장이다. 목을 막아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는다. 또한 이곳에서 솟아나는 산에서 내려온 시원한 담수는 여름철 더위를 식혀 주어 피서객과 낚시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농개
대포라 부르는 삼달 2리 주어동 포구에 통나무를 엮어서 만든 테우가 있다. 미역, 톳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를 태우거나 자리돔을 뜨고 고기를 낚을 때 사용하는 배다. 본래는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베어다 만들었는데 삼나무로 만들기도 한다.
테우
삼달리 테우.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21호 삼달리 어업요 보유자 강성태 님의 '테우 노 젓는 소리'와 '갈치 나끄는 소리'를 보존하고자 노래의 발상지인 이곳에 맞춤 수공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주어동 포구 등대
주어동포구. 등대에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삼달리 주어코지에 해녀들의 쉼터인 불턱이 있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물질 후 목욕을 하는 장소로, 이곳에서 물질 작업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주어코지 불턱
해안도로변 바위 위에 불상 두 개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사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산회사 앞에 웬 불상인지 궁금하지만 의문을 풀 방법이 없다.
의문의 불상
올레3-B길은 신풍리 어촌계 식당 앞에서 마치고, 올레3-A길과 만나 표선해수욕장까지 6.6km를 함께 간다. 우리는 여기서 일정을 마친다. (2023.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