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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바위에서 울던 아기

올레18-1(하), 돈대산에서 신양항까지

by 정순동

돈대산 정상에서 예초항을 내려다본다.

발밑으로 보이는 길은 돈대산과 추석산 사이의 고개를 넘는 추자로다. 상추자항에서 예초리포구까지 이어진 추자도의 주도로다.

돈대산에서 본 예초리 일대

추석산. 가까이 보이는 추석산(155m)은 예초리와 신양리 경계지역에 있다. 추석날에 명절 음식을 싸 들고 산에 올라 달맞이를 하던 산이라 추석산이다.


신양리와 예초리의 경계선을 따라 도대산을 내려선다. 흰색과 엷은 자주색이 어우러진 갯무 꽃은 산길을 부드럽게 단장한다. 추자도에코하우스 앞에서 추자로를 건넌다.

계절이 주는 풍요, 갯무

추억이 담긴 '학교 가는 샛길'

자동차 도로를 조금 따라가던 올레는 추석산 기슭으로 올라 살짝 질러간다. 도대산과 추석산이 만나는 고갯길을 넘어 신양으로 오가던 지름길이다.

추억이 담긴 학교 가는 샛길


풀도 예의를 갖추는 마을, 예초리(禮草里)


다시 추자로로 내려선다. 예초리로 가는 도로변 윗녘에 집채만 한 바위가 있다. 바로 굴러 떨어질 것 같다. 금세라도 지나가는 사람을 덮칠 듯이 서 있다. 엄바위다. 예초리 사람들은 예부터 이 거대한 바위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고 여겼다.


위험해 보인다. 불안의 대상이다. 예초리 사람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외지인들에게 마을로 들어가는 신고 의례를 알려준다면서 겁을 준다.


“여보시오! 이 길은 그냥 지나가면 큰일 납니다. ㅈ 잡고, 코 잡고 엄바위를 올려다보며 절을 하고 지나가야 합니다.”

엄바위
엄바위 근처 해변에 약 500톤이나 되는 공깃돌을 닮은 바위가 다섯 개가 있었습니다. 엄바위 밑에 살던 억발장사는 이 큰 돌(장사공돌이라 한다)로 공기놀이하며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억발장사가 횡간도로 뛰어넘다가 그만 미끄러져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들은 서로 결혼하지 않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횡간도와 연결(결혼)하려면 남자는 죽고 여자는 청상과부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이지요.

전해지는 이야기


억발장사를 상징하는 장승이 세워져 있다.

예초리 사람들은 정초 걸궁을 할 때면 이 엄바위 앞에 와서 한마당 논다. 소원을 빌면서.


엄바위의 경외감에 고개를 숙이고 하추자의 동북단에 위치한 작은 포구 마을로 들어선다.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는 어촌 마을이다. '풀도 예의를 갖추는 마을'이라 하여 "예초(禮草)"라고 한단다.

예초항

마을 들머리에 다육식물 칼잎막사국이 언덕을 뒤덮고 '잠깐 동안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마른 잎과 줄기가 주렁주렁 흘러내려 장관이다. 횡단면이 삼각형인 두툼한 잎은 초승달 모양의 칼(은월도)을 닮았다.

잠깐 동안의 휴식, 칼잎마사국

삼치, 조기, 고등어, 방어 및 참몰(모자반)이 예초마을의 주 생산물이다. 마을 곳곳에 젓갈을 발효시키는 저장통이 줄지어 있다. 하지만 민박집 밖에는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없다. 편의점이 선창에 하나 있는데 문이 닫혔다.

마을 곳곳에 젓갈을 발효시키는 저장통이 줄지어 있다.

예초포구.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사람도 보인다. 추자도 연근해는 빠른 물살과 깊은 수심,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해역으로 다양한 어종이 회유하는 황금 어장을 형성하고 있다. 예초포구는 낚싯배와 어선의 기항지로 바다낚시, 갯바위 낚시를 위해 낚시꾼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와 아아"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첫손가락으로 꼽는 것은 추자군도가 그려내는 수려한 해양경관이다.


"와 아아"

하는 감탄사 한마디 외에는 필설로 어떻게 이 아름다운 광경을 그려내겠는가. 사진으로 보는 수밖에.

추자군도가 그려내는 수려한 해양경관


아기 황경한과 눈물의 십자가


마을이 끝나고 작은산의 해안절벽을 감아도는 '예초리 기정길'로 들어선다. 군데군데 우거진 돈나무와 까마귀쪽나무 숲 터널을 드나들면서 해안절경을 감상한다. 바닷바람이 상쾌하다.

돈나무와 까마귀쪽나무 숲이 터널을 이룬 예초리 기정길

돈나무가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꿈속의 사랑'처럼 바뀌는 가지 끝에 무수히 달고 있다. 향이 만 리까지 간다 하여 만리향이라고도 불리는 돈나무 터널이 예초리 기정길 내내 이어진다.

돈나무. 갯똥나무, 섬엄나무, 섬음나무로도 불리는 상록 활엽 관목

신대산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추자군도와 전남 보길도, 소안도, 당사도, 청산도 등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파란 바탕색의 안내판이 서 있다. '아기 황경한과 눈물의 십자가'란 안내글이 적혀 있다. 황사영ㆍ정난주 부부와 그들의 아들인 황경한의 기막힌 슬픈 사연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눈물의 십자가

전망대에서 거의 45도 각도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이 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두려움을 이기려고 계단을 세면서 내려간다. 247 계단이다. '물생이 끝'이란 갯바위에 가로 3m, 높이 5.5m의 대형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물생이 끝' 갯바위 끝에 놓인 두살배기 황경한

그 앞에 아기를 안은 어머니 정난주와 바위 끝에 놓인 두 살배기 아기 황경한의 조형물을 만난다.


십자가에 맺힌 어머니의 눈물이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고, 묵주를 손에 쥐고 누운 아기 황경한은 평온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아기를 안은 정난주
1801년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정책을 펴던 정조가 승하한다. 순조가 즉위하여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천주교를 탄압하는 신유박해(辛酉迫害)가 발생한다. 산속으로 피해 있던 황사영은 중국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박해의 실상을 알리고 이를 막기 위해 조선 정부에 압력을 가해 줄 것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려다가 발각된다. 이른바 '황사영 백서'사건이다.

황경한은 백서사건의 당사자인 황사영의 아들이다. 황사영이 순교한 후 아내 정난주는 두 살 난 아들 황경한을 안고 제주도로 유배되어 가는 중, 아이를 예초마을 '물생이 끝' 갯바위에 두고 떠났다. 어머니 정난주는 아들이 평생 노비로 살게 될 것을 우려하여 극단적인 결정을 한 것이다.


마리아 정난주의 아들, 황경한의 묘역

예초마을 어부 오 씨가 거두어 키운 황경한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다가 생을 마친 후 어머니의 묘가 있는 제주섬이 가장 잘 보이는 곳(추자면 신양리 산 20번지)에 묻혔다.

황경한의 묘

'순교자 황사영, 신앙의 증인 정난주의 아들 황경한의 묘'라는 제주섬을 향해 세워져 있다. 무덤 앞을 두른 곡담에는 '마리아 정난주의 아들, 황경한의 묘역'이란 표석과 '갯바위에서 울던 두 살 아기'의 애달픈 사연이 새겨져 있다. 뒤로 아이를 안은 정난주 상이 보인다.

갯바위에서 울던 두 살 아기

천주교 성지순례 111코스로 지정되어 김수한 추기경이 다녀가기도 한 곳이다. 묘역까지 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포장이 되어 있고, 주차공간에는 '모정의 쉼터'로 불리는 정자도 마련되어 있다. 외로운 삶을 살았던 생시와는 다르게 성지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네가 황사영, 정난주의 아들이 아닌 경한 너 자신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양반도 천출도 아닌 이 땅을 살아가는 보통의 양민이 되어, 때론 주리고 고통받겠으나 강인함으로 살아남아 끝끝내 또 다른 생명을 일구어가는 그러한 사내로 말이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말거라. 태생에도, 사상에도, 신앙에도 ㆍㆍㆍㆍㆍㆍ

김소윤 <난주>, 은행나무

소설 '난주'의 한 대목이다. 정난주가 아기와 헤어지기를 결심하고 품에 안은 아기 황경한에게 부탁한 바람대로 황경한은 범부로 일생을 산다.


양아버지 밑에서 잘 자란 황경한은 아들 건섭과 태섭을 낳았으며 오늘날 그의 자손은 6 세손까지 이어진다. 한때 7∼8호까지 불었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떠나고 1 가구만 남아 있다

돈대산에서 내려다 본 신양리

신양항. 황경한이 어머가 계신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다녔을 산길을 10여 분 걸으면 모진이해변이다. 몽돌이 깔린 작은 해수욕장이다. 몽돌 해변 너머 수덕도가 가까이 다가온다. 이내 자동차 도로를 만나 신양항으로 들어간다. 터미널 대합실은 문이 닫혔다. 상추자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다. 올레18-1코스 종점에서 스탬프 찍는 2팀 외에는 사람이 없다.

올레18-1길,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마지막 2km의 기록이 빠져 아쉽다. 미완성 노선도이나마 게제한다.

여기서 오늘 일정을 마치고 대서리 민박집으로 돌아간다. 버스는 매시간 37분에 출발한다. (2023. 5. 11)


마을순환버스. 7:00부터 오후 21:25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하루 14회 왕복한다. 정기여객선이 들어오면 1회 증회 하고. 상추자항에서는 매시간 정각에, 예초포구에서는 매시간 30분에 출발한다. 단, 막차는 상추자항 8:30, 예초포구 21:00이다.




운동 시간 4시간 2분(총 시간 5시간 55분)

걸은 거리 14.2km (공식 거리 : 11.4km)

걸음 수 25,447보

소모 열량 1,585kcal

평균 속도 3.5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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