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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허락하는 섬_추자도

올레18-1길(상), 추자항에서 돈대산 정상까지

by 정순동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가 모여 추자군도를 이루고 있는 추자도. 원래 후풍도(候風島)였는데,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섬에 추자나무가 많아서 추자도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 체주관광공사 <제주 속의 섬, 걷고 즐기는 섬>

7.05k㎡의 추자면은 6 개리 9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상추자도·하추자도·횡간도·추포도에 939세대 1,574명(외국인 제외, 2022.12.31 기준)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 다리로 이어진 상추자와 하추자에 거주한다, 면사무소는 상추자에, 섬 내 최상급 학교인 추자중학교는 하추자에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전라도 영암군, 제주목, 다시 영암군, 완도군으로 여러 차례 행정구역이 바뀌다가, 1946년 북제주군에 귀속되어 현재는 제주시 추자면이다.

추자항 일원

2010년 6월에 열린 추자도 올레길 18-1코스는 개장된 지 12년이 지난 2022년 6월 18-1, 18-2로 나누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제주항과 추자항을 오가던 퀸스타호가 엔진 고장으로 작년 가을 한동안 결항되었다. 올레 완주를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지만 바람이 허락하는 섬, 추자도 올레는 우리에게 숙제거리로 남아 있었다.


부담이 된 만큼 기대도 크다. 날씨 걱정, 멀미 걱정은 모두 기우고 한 시간여 만에 추자항에 도착한다.

퀸스타2호와 추자항 여객선 터미널


봉글레산을 넘어 민박집으로


상추자항에서 올레 시작점이자 종착지인 제주올레 18-1코스 공식 안내소까지 280여 m 이동한다. 전날 전화로 선박 운행 여부와 현지 사정을 문의한 터라, 안내사와 오래전부터 알던 지인처럼 반갑게 인사한다. 챙겨주는 자료를 받고 본격적인 걷기를 시작한다.

제주올레 18-1코스 공식 안내소

면사무소 뒤에 있는 파출소 오른쪽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추자초등학교 정문이다. 98회 졸업생을 배출한 추자초등학교는 신양분교와 합쳐서 현재 30여 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98년 전통의 추자초등학교

뒤편 언덕에 최영 장군 사당이 있다.

고려 말 목호의난을 진압하려 제주도로 가던 최영 장군이 풍랑을 만나 추자도로 대피하였다. 장군은 추자도에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그물로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이를 고맙게 여긴 추자도 주민이 사당을 짓고 '최영 장군 사당제'를 지내고 있다.

최영 장군 사당

사당의 뒤를 돌아 봉글레산 능선으로 붙으면 괭이밥과 찔레꽃이 올레꾼을 반기고 발아래로 추자항이 내려다보인다. 수령섬, 악생이, 횡간도, 추포도, 염섬, 예도, 흑검도가 눈앞에 늘어선다.


수령섬을 바라보는 곳에 제단이 놓여 있다.

매년 음력 섣달그믐날 오후에 걸궁 풍물놀이 패들이 바다의 용왕님께 제를 올린다. '마을 주민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만선'을 기원한다.

수령섬을 바라보며 놓인 제단

수령섬은 돌돔을 낚는 갯바위 낚시꾼들이 선호하는 낚시터다. 후박나무 군락 등 다양한 상록활엽수의 식생이 우수하고, 멸종 위기 야생동물인 섬개개비가 서식하고 있다.


봉글레산 정상

사방나무, 소나무, 보리수, 까마귀쪽나무가 번갈아 나타난다. 능선을 따라 헬기 착륙장을 지나서 봉글레산(해발 86m) 정상에 오른다. 방사탑이 세워져 있고 산불감시초소와 정자가 있다. 정자 앞에 조성한 화단에는 수레국화가 밝은 파란색, 짙은 노란색의 꽃을 피우고 있다.

봉글레산 정상

추자섬 민박집

올레는 다시 추자항으로 내려선다. 추자 천주교회 못 미쳐서 후포 쪽으로 돌아보면 우리가 묵을 '추자섬 민박'집이 보인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운영하는 민박집이다. 추자항 근처에서 영업을 하다가 3년 전에 집을 지어 이곳으로 이사 왔단다. 대지가 천이백 평이란 데 놀라고, 민박집주인이 나보다 두 살 아래라는데 놀란다.

봉글레산을 내려서면서 본 추자항 일대(위), 추자섬 민박(아래)


추자등대 가는 길


민박집에서 점심을 먹고, 추자 천주교회에서 다시 올레길을 이어 걷는다. 대서리 벽화골목을 지나면 추자한의원 앞에서 해안도로를 만난다.

대서리 벽화 골목

추자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이지만 문화권과 생활방식은 제주도보다는 전라남도 쪽에 가깝다. 억양 역시 호남 억양이 강하고, 풍토와 정서도 제주권과는 다르다. 골목길에 육지 남새가 난다. 돌담보다는 블록담이 많고, 돌담도 쌓는 양식과 돌이 다르다.


민박집주인은 생활권도 목포와 더 밀접한 편이었으나 요즘 들어서는 제주시와의 교류가 더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전남으로 편입되었더라면 지원이 더 많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순효각

영흥리로 넘어서는 삼거리 모퉁이에 비각이 세워져 있다. '효성이 지극한 박명래의 행실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순효비 비각이다. 길을 지나다가 세워진 비석들을 보면 너도나도 '처사○○○'으로 시작된다. '학생박명래순효지비'라는 비명이 이채롭다.

순효각

영흥리 벽화 골목은 오르막이다. 산 중턱에 보이는 기와집이 추자 처사각이다. 처사각 오르는 길 옆은 식물원(?)이다. 분홍색 덩이괭이밥, 뒤로 머귀, 그 뒤로 흰 꽃 사상자, 그리고 대나무 숲 ㆍㆍㆍㆍㆍ

처사각 가는 길, 영흥리 벽화골목

추자 처사각

추자 처사각은 추자도에 유배 와서 터를 잡은 선조 박인택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사당이다. 처사 박인택은 추자도에 사는 태인 박 씨의 입도 선조다. 조선 중기에 추자도로 유배 와서 주민들에게 불교 교리를 가르치며 살면서 병을 치료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처사각에서 내려다본 풍경

영흥리 마을의 알록달록한 지붕, 조용한 느낌의 추자항, 항구 밖에 떠 있는 추자 군도의 풍경을 내려다본다. 아름다운 포구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한참 기다린다.

추자 처사각(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9호)

숲 속으로 들어선다.

청미래덩굴, 담쟁이덩굴이 까마귀쪽나무, 소나무, 사방오리나무를 타고 오른다.


능선에 오르니 검노린재나무가 연녹색 꽃을 가지 끝에 달고 있다.

꽃 뭉치를 단 가지는 무거운 듯 아래로 쳐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은 흰색인데 꽃받침 잎에 녹색 털이 있어 꽃송이가 연녹색으로 보인다.


나무 아래는 사상자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사상자, 청미래덩굴, 검노린재나무

추자도 등대는 제주도의 최북단에 있다.

제주해협을 항해하는 선박들과 남해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상추자도의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 추자 군도의 비경이 한눈에 보인다.

추자도 등대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연결하는 추자교와 하추자도 일대의 추자 군도
상추자도 대서리, 영흥리 일대

추자등대에서 안부로 내려선다.

바람케 쉼터로 가는 길과 추자도등대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에서 바람케 쉼터 공사로 더 이상 앞으로 못 간다. 여기서부터 추자도등대 주차장으로 돌아 추자교 앞까지 (513m, 20분가량) 우회한다.


돈대산을 오르다.


추자교. 1972년 10월에 완공하여 전국 최초로 섬과 섬을 잇는 다리가 된다. 1995년 4월 지금의 다리가 새로 건설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추자교

다리를 건너니 참조기 조형물과 시인 허영선의 시비가 하추자에 온 것을 환영한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아들 앞에
어머니 참굴비 한 마리 밥상에 내놓으셨네
내 어릴 적 캄캄 새벽 바다 길 떠나는 아버지에게
금빛 조기 한 점 구워 놓으셨듯이

법성포 칠산바다 흑산도까지 조기잡이 다니던 시절
겨울이면 처마밑에 대롱대롱 한 두름 꿰어
추자섬 북서풍에 시들시들 말리던 그것
자르르 베지근한 그 감칠맛 오래도록 입안 감돌아
갔다 오마 기별 알린 배가 떠나고
다시 어머니 그 늙은 손에 굴비 한 마리 닿을 때까지
그 자르르 입안 터지던 맛 떠나지 않았네
.....(후략)

허영선, <금빛 조기 한 점>
참조기 조형물

은달산길

올레는 추자교에서 담수장까지, 예초포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오지박길과 나란히 간다. 사방오리나무가 우거진 은달산길이다. 은달산 전망터에서 '사자와 공룡'이라고 이름 지어진 염섬과 예도가 수평선 위를 헤엄친다.

은달산길(위), 은달산 전망터에서 본 염섬과 예도(아래)

담수장길

잠시 해안도로 오지박길로 내려와서 희망공원을 지난다. 다시 담수장 옆으로 난 숲길로 들어선다. 추자도에는 물이 귀하다. 해수담수화 시설을 활용하여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식수는 지방정부의 보조를 받아 삼다수를 사용한다고 민박집 사장은 설명한다.

담수장길

상추자 대서리의 뒷산 자락에는 일제강점기에 파놓은 제1저수지, 해방 후 만든 영흥리 뒷산 자락 제2저수지, 70년대에 건설한 하추자 묵리 지경인 엥벤길 위 제3수지, 90년대 초에 완공한 제4저수지다. 그리고 2000년에 묵리 제3저수지 밑에 해수담수화시설을 준공하여 물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담수장

묵리 대창재를 지난다.

올레는 돈대산 오르는 능선으로 이어진다.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섬이 아니라 깊은 산중의 운해 속에 겹겹이 싸인 봉우리를 내려다보는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돈대산에서 본 추자 군도

돈대산

고도차 50~100여 m를 여러 차례 오르내린 끝에 '드디어' 올레18-1코스의 중간 기착지인 돈대산 정상에 오른다. 해발 164m에 불과하나 굴곡이 심해 걷기 호락호락한 길이 아니다.

중간 기착지인 돈대산 정상

정상에는 바람이 세차게 분다.

개민들레라고 불리는 서양금혼초가 정상 쉼터를 뒤덮고 있다.

약 40㎝의 가느다란 꽃대 위, 수개로 갈라진 줄기 끝에 노란색 머리모양꽃을 1개씩 달고 바람에 흔들린다. '나의 사랑을 드릴게요'하며 애교를 떨지만, 돌려받는 사랑은 덜하다. 유럽 원산의 귀화식물로 강한 생명력 때문에 토종 생물 서식지를 파괴한다 하여 환경부에서 생태교란종으로 지정했다.

서양금혼초가 정상 쉼터를 뒤덮고 있다.
서양금혼초

'올레18-1(하), 갯바위에서 울던 아기'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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